[Opinion] 현실과 엇비슷한 매력을 지닌 디스토피아 콘텐츠에 대해서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4.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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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다룬 콘텐츠가 부쩍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버드 박스>, <블랙 미러>, 미국 유명 드라마 <원 헌드레드>, <워킹 데드> 로이스 로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기억 전달자>,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콘텐츠들이 이 시국과 맞물려 더욱 부각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디스토피아란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뜻한다. 진솔하게 말하자면 대중문화의 주요 특징으로 언급되는 통속성에 집중하고 있다기보다, 절망적인 세계에 갇혀버린 인류들이 이를 헤쳐나가는 것에 탈출 서사에 더 중점을 둔 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다.


절망적인 세계에 갇힌 인류들이 이를 헤쳐나가는 것. 이 공통된 플롯과 세계관을 가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경이롭게 느껴졌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비슷한 세계관과 비판의식을 가진 작품이더라도 작품마다 새롭게 읽히는 이유는 뭘까. 특히 오늘날 왜 계속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지, 그 복합적인 이유에 관해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새롭게 느끼게 된 작품은 바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통해서였다.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제2차 세계대전, 헝가리 미완의 반사회주의 체제 혁명, 그 이후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 등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조국 헝가리의 현대사와 동일시되며, 작가는 작품에서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일상이 어느 정도로 파괴가 되는지, 국가 권력이 개인을 침범하며 국가에 예속된 개인은 어떻게 무너지는지 남다른 몰입력으로 소설을 전개한다.

 

디스토피아적 서사를 접한 관람자는 자연히 '내가 저 상황이라면?'이라는 물음을 던진다. 가령 조선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설정으로 시작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이나,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산행> 등에 몰입한다면 가장 먼저 절망적인 상황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이입하며 저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주인공의 행동이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는지를 세세히 따져가며 해당 콘텐츠의 전개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감정의 동화를 일으키는 로맨스 서사의 콘텐츠에 비해 디스토피아 콘텐츠는 상황의 이입이 필요하다.

 

따라서 주인공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위기를 극복했을 때의 짜릿함이 그간의 갈증을 해소해준다. 대개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그런 서사 구조를 가지는 듯싶다. 절망적인 상황에 내던져진 주인공이 계속해서 위기를 겪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고난을 극복하는 구조. 이 극복의 과정에서 우리는 손에 땀을 쥐고 스릴 넘치는 전개를 옆에서 지켜보다, 이를 이겨내는 결말을 보고 나서야 긴장이 탁 풀려버린다. 이 고난의 시작과 극복 과정을 함께 겪은 관람자는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이입해 위기가 고조될수록 긴장하고 있다가 이가 극복되는 순간 이완되며 위안을 얻는다.  가령 위기가 극복되지 않고 영영 디스토피아에 남아있는 결말로 끝이 난 콘텐츠는 이 디스토피아 사회가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심도 있는 질문을 던져주며 여운을 남긴다.

 

또한, 주인공과 함께 이 비극적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타인과의 연대도 눈여겨볼 만 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이 상황의 비극을 공유할 수 있다는 동질감, 더 나아가면 그 안에서 싹트는 사랑 등 '함께' 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유대감은 이 절망적인 상황 안에서도 엿볼 수 있는 인간성을 보여주며 따뜻한 분위기를 맴돌게 한다. 전쟁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함께 힘을 합쳐 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연대 의식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종종 주인공이 직면한 상황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윤리적인 질문을 마주하고는 한다. 가령 조지 오웰의 <1984>를 본다면 전체주의라는 사상 속에 개인의 일상은 침해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정당성, <원 헌드레드>에서 산소가 얼마 남지 않은 우주정거장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인구 감소 정책을 펼치려는 자들의 방식에 대한 합리성 등 인간 실존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며 콘텐츠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개인의 희생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특수적이다. 사회에 의해 억압받는 개인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아내는 연출법은 현재 사회를 예리하게 분석해 더 나아가 있을 법한 가상 현실을 그려내고, 본래 현실과 매치 시켜 이를 비교하며 비판한다.

 

환경문제로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현재와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우주 정거장 및 계급별로 분리된 기차에서 근근이 사는 가상 현실, 전체주의 사상에 물들어 개인을 억압했던 지난 근현대사와 <1984> 및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서 다루는 세계대전의 배경,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풀려난 실제 사례와 카프카 <소송>에서 억울하게 체포되는 개인. 디스토피아는 본래 현실의 문제점을 극적으로 부각한 콘텐츠이기에 현실과 아주 동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을 바로 잡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며 경고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디스토피아 콘텐츠를 보고 변화를 꾀한 사람들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는 영화 <옥자>를 보고 비건 식단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잘 만들어진, 그러나 거짓으로 판별하기엔 현실과 아주 비슷한 디스토피아 콘텐츠가 주는 교훈이 우리에게 녹아들었다면 디스토피아 콘텐츠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분석하다 보니 생각이 드는 것은, 디스토피아 콘텐츠가 실로 매력 있는 장르라는 점이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도 위기의 전개와 극복 구조가 주는 쫄깃함을 느낄 수 있고,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그 속에서 싹트는 사랑에 대해 애틋함을 느낄 수 있고, 메세지를 던지는 영화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

 

가뜩이나 팬데믹으로 인해 디스토피아가 더 잘 읽히는 이유도 있을 거라고 본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현재 다시 많이 읽히고 있는 이유처럼 말이다. 현재와 유사한 분위기를 담아낸 작품 덕분에 우리는 감동과 위안을 받기는 좀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 전세대가 이겨낸 것처럼 우리의 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 또한 앞으로도 빈번하게 발생할 환경적 문제에 대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나의 소재를 갖고 여러 요소를 가미해 더욱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디스토피아 콘텐츠. 나는 당신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디스토피아의 매력을 가늠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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