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들은 언제쯤 뛰놀수 있을까 [사람]

코로나 시대 아동들의 삶
글 입력 2021.03.1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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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현재 우리는 언택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5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명목하에 사적 모임은 '신고' 대상이지만, 백화점 및 쇼핑몰에서 몇 백 명이 모여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하는 것은 신고 대상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하루 몇 천명이 오가고, 러시아워에서는 모두의 신체 자체가 밀착하는데도 이는 그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은 그 '어쩔 수 없음'을 핑계로, 짜릿하고도 당당한 일탈을 즐길 수 있다. 자가용을 운전하여 멀리 떠나버리거나, 비행기 표를 끊고 "떠나요 제주도"를 흥얼거리거나.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라며 사람들이 붐비는 시내 식당에 옹기종기 모인다. 그리하여 최소한 '신체의' 자유라도 원 없이 누릴 수 있다.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라도 있다. 하물며 메신저로라도 생사를 확인하고, 교류할 수 있다. 이는 독립적으로 경제생활이 가능한 성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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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들은 어떤가. 본인 의지대로 바깥 생활과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아이들은? 정부가 제시한 그 숨 막히는 실제 방역 수칙에 그대로 따라야만 한다. 나의 사촌동생 중에는 9살, 12살 꼬마 아이들이 있다. 한창 학교에 가서 땀을 뻘뻘 흘리고 놀아야 할 시기인데, 작년 한 해는 1년 내내 집과 사설 학원만을 오갔다.

 

영유아 및 아동시기에는 대근육과 소근육이 발달하는 시기이기에 충분한 신체 놀이 및 야외 활동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신체가 제 속도에 맞게 발달한다. 아이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정서와 언어발달, 사회적 발달 또한 동시에 이뤄진다. 그러나 정부 지침 아래 아동 교육기관에서는 감염 예방을 위해 무조건 '실내' 활동만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직면하는 문제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발달의 적기성'을 놓치고 있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모든 발달에는 최적기가 있고, 발달적 요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영유아 및 아동 시기에는 때에 맞게 적절한 신체, 사회성, 인지, 정서, 언어 발달을 고루 도모해야 건강하고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어엿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위와 같은 발달의 최적기를 놓치고 있다. 재난 상황의 '특별 보호권'이라는 이름 하에서 놀이와 신체의 자유 그리고 발달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다양한 발달 과업 중에서도 언택트 시대에 침해되는 아동 발달은 바로 '사회성' 발달임을 느낀다. 아이들은 현시점에서 또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방법을 익히는,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는 사회성 발달을 적절히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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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발달은 자신과 타인의 여러 가지 다른 특징을 비교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직간접적으로 대면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새로운 성인과 친구들을 신뢰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공동체의 규칙에 맞는 방식에 따르며 새로운 목적을 향한 일들에 숙달되어야 한다. 갈등도 경험해보고 우정과 친애의 감정도 충분히 느껴보며 '인간관계'의 넓이와 깊이를 알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아이들은 타인과 제대로 된 방식으로 교류하는 기회를 잃었다.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만난다. 인간의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상호작용에서는 타인의 표정 속 미세한 근육을 읽어내는 것이 가장 첫 번째 단계인데, 그 첫 발걸음조차 뗄 수 없는 상황이다. 하물며 5인 이하의 사적 모임을 통해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과 교류할지라도, 우리네들 어릴 적에 해가 질 때까지 원 없이 밖에서 뛰놀았던 그 즐거움을 절대 만끽할 수 없다.

 

아이들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지금은 채 30도 쓰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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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참기' 훈련을 요구하고 있는 것만 같다. 놀고 싶은 마음을 참기,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날 희망을 참기.

 

세상은 '방역 수칙'이란 이름 아래에 아이들의 놀 권리, 자랄 권리를 앗아가고 있다. 인간(人間)이란 서로 등을 맞대고 손을 맞잡고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다. 아이들이 그냥 '존재'가 아닌 '사회적' 존재로 마음껏 이 세상을 누비고 뛰노는 날이 얼른 찾아오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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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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