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 새로운 연대의 방식 [영화]

글 입력 2021.03.0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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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느끼거나 사건 사고를 겪은 후 개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가정을 회복하는 결말, 즉 그 종착지에는 가족이 자리하는 할리우드영화 속 가족주의는 무수한 영화 속에서 반복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다.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 속 인물들이 자신의 고통을 가정 내에서 회복한다. 하지만 그 틀에 속하지 못하는 개인들 또한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종착지는 어디쯤이 될 것인가? 이 영화는 외면받는 외로운 이들이 연대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지켜본다.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첫 등장은 링 위에서 자신의 선수인 윌리를 지혈하는 장면에서다. 오랜 기간 동안 선수를 지혈하는 컷맨으로 지내다 육십을 넘어 트레이너로 전향한 프랭키는 여전히 실력 좋은 컷맨이자 트레이너다. 프랭키는 스크랩이 타이틀전을 치르다 한 쪽 눈을 잃게 된 걸 직접 본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선수인 윌리의 타이틀전 매치를 계속 미루고 결국 윌리가 떠나가게끔 한다. 자신의 선수는 떠나가고 딸의 안녕을 기도하며 보낸 편지는 매번 반송되어 돌아온다.

 

매기(힐러리 스왱크)는 복싱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서른한 살의 여성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일을 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드디어 프랭키의 체육관에 찾아온다. 프랭키와 달리 그녀에게 가족은 있지만, 그녀를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프랭키와 매기 모두 실질적으로 가족이 부재한 상황에 있다. 영화의 서사는 매기가 무턱대고 프랭키를 찾아가 자신의 코치가 되어 복싱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프랭키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매기는 매번 거절당하면서도 프랭키를 보스라 부르며 가르침을 부탁한다. 윌리가 다른 매니저와 함께 타이틀전을 치르고 새로운 챔피언이 되었을 때, 프랭키는 경기를 지켜본 뒤 씁쓸한 마음으로 체육관에 있는 스크랩을 찾아왔다가 그때까지 연습하고 있던 매기를 발견하면서 드디어 코치를 맡아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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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은 스크랩의 말에 따르면 모두 ‘거꾸로’하는 스포츠다. 왼쪽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왼발을 써야 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방식은 잊어야한다. 매기는 그동안의 움직임을 잊고 프랭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움직이는 방식을 새롭게 배운다. 매기가 그 걸음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자신의 손으로 매기의 발을 움직이면서까지 도와주는 프랭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을 뗄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의 모습을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매기는 복싱을 배우고, 프랭키가 가르쳐주는 복싱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본다. 첫 번째 삶이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되었던 냉랭한 가정에서 온 것이라면, 두 번째 삶은 자신이 선택한, 그리고 발 딛는 것부터 다시 배운 새로운 세계가 된다. 프랭키의 결핍은 매기의 결핍을만나 서로를 메꾸며 새로운 연대를 찾아간다.

 

코치는 되어도 매기의 매니저 맡기를 회피하던 프랭키가 경기 중 수세에 몰려 맞기 시작한 ‘매기’를 보며 심판에게 ‘내 선수야’라고 하는 순간부터 둘은 더 적극적으로 서로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프랭키는 매기에게 새로운 이름 ‘모쿠슈라’를 부여하고 그 이름의 의미대로 매기가 링 위에 오를 때마다 모두의 달링, 모두의 혈육이라고 따뜻하게 불리게 한다.

 

매기 또한 복싱에서뿐만 아니라 프랭키를 자신의 사적인 삶으로 끌고 온다. 프랭키의 제안대로 구매한 ‘제대로 된’ 집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매기는 프랭키가 동행하길 부탁하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마련한 그 집을 두고 그녀의 가족은 정부보조금을 못 받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며 오히려 매기를 다그친다. 프랭키에게는 가족의 부재가 결핍이지만 매기에게는 가족의 존재가 결핍을 크게 만드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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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와 프랭키는 이러한 결핍을 유사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며 채워나간다. 감정의 공유와 연대는 그 관계에 책임감을 부여한다. 특히 코치와 선수 혹은 부모와 자식 같은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이 관계에서 책임감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영화가 단순히 유사 부녀 관계를 통해 그들을 위로하는 것을 넘어 더 특별한 것은 그 관계 속에서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또한 보여주기 때문이다.

 

프랭키의 과거 트라우마와 매기의 꿈이 맞물리는 챔피언 타이틀 매치 경기에서 매기는 승리에 가까웠지만 일명 ‘푸른 곰’ 빌리의 반칙으로 크게 다쳐 전신 마비가 되어버린다. 전신 마비가 된 매기는 몸에 욕창이 생기고, 다리를 잘라낸다. 남은 생을 비참하게 사느니 매기는 프랭키에게 자신이 죽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프랭키는 물론 거절하지만 거듭해 자살 시도를 하는 매기를 보며 그녀의 죽음을 도와주기로 한다.

 

프랭키의 손으로 매기의 산소 호흡기를 떼고 편안히 죽을 수 있게 약을 주입하는 장면은 그녀에게 허락된 단 한 명의 가족으로서 프랭키로 하여금 책임감을 수행하게 만든다. 프랭키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신부가 경고했듯 프랭키가 매기에게 지녔던 책임감은 코치로서, 새로운 아버지로서의 그것이다. 그는 매기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돕는다. 복싱처럼 거꾸로다.

 

프랭키는 아마 회환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영화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태도를 지니게 한다. 그러니 프랭키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 그를 이해함으로써 구원될 것이다. 계속 스크랩의 과거 회상으로 진행되던 영화의 마지막 두 쇼트는 전에 매기와 함께 갔던 가게 안 프랭키의 뒷모습에 카메라가 점점 다가가는 것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그들의 결핍과 삶을 이해하는 과정은 결국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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