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각 잡혀 살지 않는 것 [사람]

글 입력 2021.02.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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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핸드폰을 찾는다. 오후에 깨어나는 탓, 오전에 밀려들은 연락들을 정신없이 확인한다. 택배 메시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메시지를 밀어두고 인스타그램을 켠다. 잠이 완전히 깨면 기억도 못 할 남들의 스토리를 구경한다. 그리곤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하루를 빨리 시작한 이들의 소식을 넘겨듣곤 다시 눈을 감는다.


겨우 이불을 벗어나 소파에 앉으면, 아이패드나 티비와 함께한다. 밥을 먹으며 OTT 콘텐츠를 틀어두고, 심지어 청소를 하면서는 일면식도 없는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듣는다. 책을 읽을 땐 팟캐스트나 라디오, 커피를 내리면서는 클럽하우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고요하고도 소란스러운 하루가 끝나면,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공허해진다. 온종일 집에 있는데도 바깥세상의 요란한 소식들은 창문을 두드려대고, 그들 세계에서의 사건사고에 대해 떠들기 바쁘다.


양쪽 눈에 염증이 났다. 종일 끼고 살던 핸드폰, 아이패드, 노트북, 데스크톱, 티브이를 바라보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 됐다. 피로감이 물밀듯 쏟아졌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모르고 남들은 알게 될 바깥소식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뻐근한 눈을 비비며 요즘 유행한다는 게임을 하다가, 나중엔 눈을 뜨기도 힘들어져 클럽하우스를 틀었다. 온찜질을 위해 눈에 얹어둔 팩이 열기를 내뿜었다.


고요한 방 안에 그들의 목소리가 가득 메워진다. 가끔 이용자가 많아 연결이 끊기는 소리가 나고, 와하학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모더레이터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한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겁다며, 인생의 주체가 되기 점점 힘들어진다고 한다.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간 대화를 들으면서도 집중하지 못하다가, 백그라운드에 있던 어플들을 모조리 꺼버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최근 일 년 동안 가장 긴 잠을 잤다. 열 시간, 아니면 열한 시간 정도 됐을까. 오늘은 기지개를 먼저 켰다. 한 번 앓고 난 이후로, 네모난 것에 대한 나의 집착을 버리고 싶었다. 첫 목표는 아침에 일어나서,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샤워를 하며 들었던 노래는 직접 흥얼거렸고, 커피를 내리며 떨어지는 물방울을 구경했다. 창문을 열어놓고 개어둔 이불을 팡팡 두드렸다. 그리곤 책상에 앉아 오늘 할 일을 손으로 끄적였다. 해야 하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결하며, 그에 필요한 정보들이 생길 때만 핸드폰을 들었다.


이런 생활을 고작 일주일 이어왔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든 판단과 계획에 ‘나’라는 주체가 우선이 되었다는 점이다. 남들의 판단과 인생관은 후 순위로 차츰 밀려난다. SNS를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니 조급한 마음이 덜어졌다. 다른 이들의 조언, 가십거리의 조류에서 벗어난 것이다. 시도해 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스스로와의 대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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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바깥은 소란스럽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몇만 개의 판단과 지향이 되고, 그것은 거대한 조류를 만들어 우리를 집어삼키려 한다. 적어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취향부터 가치관, 그리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배려와 관계의 최전선. 그러한 선택권을 쥐기 위해, ‘각 잡힌 것들을 멀리하기’ 운동을 한다.

 

영양가 없는 소식들을 계속해서 뿜어내는 핸드폰, 은근한 의도로 생각의 방향을 틀어 보려 애쓰는 티브이 방송들, 쉬지도 않고 말하는 각종 플랫폼. 이 모든 것들을 후 순위로 밀어내는 일은 어쩌면, 자신을 지키려는 최선의 노력이 된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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