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알페스, 암묵적인 권력의 횡포

글 입력 2021.01.1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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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문화 강국이다. 그중 최전방에서 한류를 이끌며 한국을 널리 알리는 분야는 누가 뭐래도 K-pop이라고 할 수 있다.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Dynamite'로 세계를 휩쓴 '방탄소년단'의 존재를 부모님이 알고 계실 정도이다. 한창 때는 공중파 어디를 틀어도 방탄소년단의 이야기가 나오고 인터뷰가 나오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최근에 일명 '아이돌 판'에서 '알페스'라는 단어가 화두에 올랐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의문을 가지며 이곳저곳 검색을 한 결과, 할 말을 잃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서로 애정행각을 하는 행위를 묘사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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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N번방과 최근 화두에 오른 또 다른 넷상 성희롱이었던 '이루다'사건으로, 무의식 적으로 성범죄는 남성에 의한 건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페스를 발견하고 서치를 해보니 성범죄는 성별에 국한하지 않고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최근 2년 간 여성인권은 폭풍과 같은 변화를 겪었다. 강남역으로 시작해 미투를 거쳐 N번방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던 성희롱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위들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성범죄'는 성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었다.

 

 


1. 알페스



알페스는 Real Person Slash의 약자로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여 아이돌을 동성애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변태스러운 성관계 및 강간 행위 등을 묘사하는 성범죄 문화를 일컫는다. 아니, 문화라고 말하기도 꺼림칙해지는 행위이다. 주로 아이돌 팬덤에서 '팬픽'이라는 이름으로 성행하고 있는 하나의 팬 활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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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손심바'가 SNS 게시글을 올리며 사건은 시작했다. 해당 게시글은 빠른 속도로 넷상에 퍼졌으며 여러 커뮤니티에서 알페스와 관련된 글을 쏟아냈다. 손심바는 본인이 알페스의 피해자라 주장하며 호소를 했다. 웹상에서 본인과 다른 동료가 동성애적 행위를 하는 소설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먹었으며 본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이돌들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는 동성애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일명 '음지'에서는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알페스, 권력의 악순환


 

알페스의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

 

1. 실존인물에 대한 성범죄

2. 소속사와 팬의 관계에서 행해지는 암묵적인 권력형 성범죄


학생 시절 같은 반 친구가 전자사전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텍스트를 읽고 있었는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쉬는 시간마다 읽고 있는 것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뭘 읽고 있느냐 물어보았다. 팬픽이라는 대답과 함께 일부를 읽게 해 주었다. 당시 유명한 아이돌 그룹 멤버 둘이 연애를 하는 묘사가 있었다. 학생임에도 수위가 있었고 불쾌함을 느끼고 밀어내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있다.

 

이처럼 알페스는 아이돌이라는 실존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며 과거 HOT, 젝스키스 시절부터 팬픽이라는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는 행위이다. 물론 과거에는 소속사에서 직접 나서 팬픽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당시의 인식으로는 문제라 여기지 않고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팬들은 좋아하는 멤버들로 그들의 사심을, 소속사는 수익을 챙기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인권에 대한 인식이 한층 높아졌으며 성별에 의해 존재하던 불균형도 인지하고 개선해나가는 과도기에 있다. 그 증거가 앞서 언급했던 여성과 관련된 인식과 제도 개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알페스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가상의 소설이라는 점이다. 당사자는 원하지 않았음에도 동성애자가 되었고, 함께 동고동락했을 동료와 로맨스를 형성한다. 혹은 전혀 일면식 없는 인물과 엮여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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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당사자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아마 인지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본인을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를 뿐이다.

 

하나의 근거로 그들이 말하는 '암묵적인 동의'이다.


소속사는 아이돌 멤버를 동성애자로 연출하는 '비게퍼(비즈니스 게이 퍼포먼스)'를 통해 팬들에게 떡밥을 던지고 그들은 그대로 받아서 창작물을 만든다. 팬들은 각자가 미는 커플링으로 '알페스 연성'을 하며 지속적인 팬 활동을 하고 소속사는 이를 통해 수입을 가져간다고 주장한다. 서로 윈윈 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당사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당사자 동의 하에 자신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어떠한 행위를 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단지 소속사라는 거대한 권력에 억압된 아이돌이 권력형 성범죄를 당해 아무런 발언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회사는 아이돌을 육성하고 관리하여 얻은 수입으로 운영한다. 때문에 팬들은 '암묵적인 갑'이 되어 회사에 압력을 넣을 수 있고, 회사에 소속된 을인 아이돌 개개인은 이에 반항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실상이다.


알페스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2차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소속사의 을의 입장으로서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다. 이는 곧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권력형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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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의해 묵살되는 약자의 권리는 너무나도 하찮아진다. 미투운동의 경우에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다니던 직장과 주변의 평판 등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가해자는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은 채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피해자는 일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니 어쩌면 이후의 삶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피해사실을 주장하고 입증해야 한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권력에 의한 범죄, 갑에 의한 범죄에서 을은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다. 집단은 사건을 인지해도 '권력'에 소속된 또 하나의 약자이기 때문에 권력에 대항하지 않는다. 막말로 내 일도 아닌데 손에 쥐고 있는 득을 내버리고 약자를 위해 행동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권력에 굴복하는 약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 권력을 주도하는 집단도, 집단에 숨어 간접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도, 모두 당연하게 처벌하고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암묵적'이라는 말은 '동의하지 않음'이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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