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미술 포장을 풀어드립니다. - 방구석 미술관 2

글 입력 2020.12.24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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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는 데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크기변환]유영국 작품 1957 캔버스유채.jpg

유영국, <작품(Work)>, 1957, 캔버스에 유채, 101x101cm

 

 

‘관찰자 존재 여부’를 독립변수로 한 ‘이중슬릿 실험’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각각 알고 있을 때에 그 결과가 놀랍게 다가온다. 뒤르켐을 공부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회 구조에 관해 더 많은 특징을 발견해낼 것이다.

 

뒤르켐과 마르크스 그리고 베버를 공부한 후 사회를 관찰하는 사람은, 뒤르켐만을 공부하고 사회를 관찰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부수를 알고 한자를 공부하는 사람은, 무작정 한자를 외우려는 사람보다 한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물리학 및 양자역학에 관심이 없다면 첫 번째 예시는 어려운 단어들로만 여겨질 것이다. 사회 구조 연구에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두 번째 예시에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 예시 역시, 한문 공부에 큰 흥미가 없다면 부수 이해의 필요성에 동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미술 분야의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려 하는 것인가 싶을 수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미술 역시 이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미술도 과학과, 사회학과, 언어와, 세상을 다루는 다른 모든 것들과 다를 바가 없다. 모든 분야의 모든 현상은 상황적, 시대적 맥락을 알 때와 모를 때, 배경 지식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보이는 것들이, 느껴지는 것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 미술은, 그러한 ‘사전 학습’이 이루어짐과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아주 극명한 분야일 뿐이다.

 

 

[크기변환]김환기, universe 5-vi-71 #200 1971 코튼에 유채.jpg

김환기, [Universe 5-IV-71 #200], 1971, 코튼에 유채, 254x254cm, ⓒ (재)환기재단 환기미술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추상회화들도, 점으로 가득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을 수 있는 김환기의 작품도, 당시의 예술사적 맥락을 공부하고, 김환기라는 사람의 삶과 그의 예술적 가치관을 이해한다면 위의 그림의 경이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사람들의 인식 속에 그러한 ‘미술 사전 학습’은 어렵고, 따분하며, 다른 분야와 달리 일상에 효용도 없는 듯해 보이는 것으로 자리잡혀 있다. 그래서 미술에 대한 사전 학습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그렇게 미술은 ‘어렵기만 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보통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실제로도 전통적인 예술계가 예술은 정말 어렵기만 한 것처럼 포장해오는 경향이 있곤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포장은, 한 번 잡아당기면 술술 풀리는 리본과도 같아서, 조금만 노력해보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또 그 리본이 감추고 있었던 미술이라는 상자 속에는 상상 이상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크기변환]방구석미술관.jpg

 

 

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는 바로 그러한 ‘리본 풀기’를 돕는다. 개인적으로 ‘서양 미술’ 편인 1권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2권에서도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실 상당히 많이 기대하고 읽은 책이었는데, 그 기대보다도 이상의 것을 안겨주었다. 작가는 독자가 누구이든, 얼마나 단단하게 묶인 리본을 가지고 있든, 미술에 대한 포장을 쉽고, 재미있으며, 일상에도 도움이 되게끔 풀어버린다.

 

<방구석 미술관 1>에서는 프리다 칼로, 에드가 드가, 마르크 샤갈과 같은 서양의 작가들을 다루었다. 책을 읽을 당시로서는, 등장하는 열네 명의 미술가 중 에곤 실레를 제외한 모두를 알고 있었다. 뭉크나 칸딘스키, 뒤샹과 같은 예술가들은 읽기 이전부터도 원래 많이 좋아하고 다소 잘 알고 있었던 상태였다. 따라서 1권을 읽을 때에는 원래 알고 있던 것들을 확인하거나 거기에 살을 붙여나가는 시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그럼에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한국 미술’이 주제였던 <방구석 미술관2>. 필자는 이 책의 목차를 펼치자마자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14명 중 13명을 알고 있었던 ‘외국 미술’을 다룬 책과는 달리, ‘국내 미술’을 다루는 2권에 등장하는 미술가 10명 중 필자가 알고 있던 이름은 여섯 명이었고,작품을 하나라도 아는 미술가는 세 명뿐이었다.

 

그 중 ‘원래 좋아하고 잘 알고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화가는 오직 이중섭 한 명이었다. 항상 본인을 ‘예술 애호가’라고 소개해 왔지만, 정작 ‘우리의 것’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크기변환]나혜석 자화상(여인초상) 1928년경 캔버스 유채.jpg

나혜석, <자화상(여인초상)>, 1928년경, 캔버스에 유채, 63.5x50cm

 

 

반성의 시간을 가진 것을 떠나서 이야기하자면, 전편과는 달리 2권은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의 연속이었다. 나혜석이 겪은 풍파와 함께 그의 그림에 공감할 수 있었고, 이응노의 예술가가 되고자 함의 의지를 읽고 있을 때에는 끊임없이 전율이 돌았다. 본래는 크게 공감하지 못하였던 김환기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필자가 알고 있었던 백남준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자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작가는 당시 상황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드라마처럼 상영되도록 유도한다.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맥락을 설명하며, 당시의 상황이 현실처럼 구현된다. 예술가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아름답게 풀어내었고, 접하는 이가 누구이든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어 준다.

 

예술, 특히 미술 애호가로서, 개인적으로도 조원재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사람들이 더욱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접해 주심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욱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해 주심에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이다. 사람들이 예술에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작가님의 모습 역시 예술이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도 미술을 공부하고자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모르겠을 사람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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