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저 당신의 곁에 있고자 하니, 제 영혼을 거둬주세요" - 검은 후견인 [만화]

글 입력 2023.11.2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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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평소 다루는 것과 달리 조금 색다른 작품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작품인 <검은 후견인>이라는 작품으로, 마치 이름을 따라가듯 흑백만화 작품이다. 소프트 BL로 사람들 간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많은 생각과 해석을 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다루고자 한다.

 

 

 

절대자와 필멸자


 

<검은 후견인>은 현실에 등장하는 성경 속 존재들의 이야기로, 「실낙원」과 「파우스트」 등에서 나오는 내용을 소재로 삼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가야 할 것은 이 이야기가 성경에 등장하는 내용을 소재로 빌려온 것이지 절대 성경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한 허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할 때 종교적 요소는 참고만 하여 작품 내적에서만 이루어져야지 그 이상으로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만화는 두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신과 사탄의 내기 대상인 순수한 영혼인 엘리야와 루시퍼이자 사탄인 루스가 이 극을 이끌고 있다. 루스는 어느 날 엘리야 앞에 엘리야의 영혼이 타락하지를 두고 신과 내기하기 위해 나타난다. 그러나, 엘리야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채자 내기를 포기하려 하지만, 엘리야가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 붙잡으면서 내기가 그대로 진행되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이 내기의 결말을 향해 흘러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신과 루스의 존재가 자주 화두에 오른다. 물론, 창작된 허구의 이야기이니 흔히 사람들이 아는 성경의 이야기와는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에 ‘신’이라는 절대자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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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의 대화로 대부분 내용이 전개되고 있기에, ‘신’은 작품에서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의 진언조차 엘리야의 입을 통해 단 한마디만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으니, 신이 작품에서 얼마나 미묘한 위치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작품이 더욱 ‘신’이라는 존재를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한다.

 

신은 우리 곁에 실재하지 않으니 엘리야처럼 그 존재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특히나, 엘리야는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신을 향한 감사를 끊임없이 들었지만, 정작 자신에게 실체를 쥐여주는 이는 사탄인 루스였기에 더욱 아이러니를 느끼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가 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필멸자인 우리가 절대자인 그 존재를 평생 짐작조차도 할 수 없기에, 작품에서 그가 등장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그 존재가 곁에 없어도 찬양하고 의심하고 그 뜻을 이해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닐까.

 

 

 

선인가, 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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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 루스는 상당히 이기적이고 쾌락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는 엘리야를 타락시키기 위해 온갖 유혹을 하며, 내키는 대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등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또 다른 절대자이자 지하의 주인이기에 인간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당연한 면모이겠지만,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장난치는 듯한 그의 발언을 듣다 보면 순수한 ‘악’ 그 자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루스를 ‘악’ 자체로만 바라보기에는 작품 중후반에 나오는 그의 고뇌가 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지만, 모든 것을 빼앗겨 추락했기에 체념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도 신을 싫어하지만,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절대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한낱 필멸자인 엘리야에게 마지막까지 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도 하나의 ‘악’이라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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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엘리야는 어떨까. 작품에서 보이는 엘리야의 모습은 더나 하위 할 것 없는 ‘신도’ 그 자체를 보여준다. 남을 시기하지 않으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다. 또한, 자신이 믿는 절대자를 향해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며,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희생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이런 모습만 본다면 그는 ‘선’ 그 자체로 보이지만, 그의 절대자는 지옥의 절대자인 루스 즉, ‘사탄’이다.

 

악한 존재를 믿기에 엘리야가 행했던 모든 선행과는 관계없이 그는 ‘악’으로 판단해야 할까? 엘리야 그 존재 자체를 ‘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그의 희생적인 면모를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애초에 무언가를 ‘선’과 ‘악’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잘못된 전제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존재건 간에 동전처럼 이분적으로 나눌 수 없고, 애초에 ‘선과 악’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가치에 의해 언제든 뒤바뀔 수 있기에 비유하자면 ‘도화지’ 같은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에 의하든 사람에 의하든 영향을 끼치는 것에 의해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엘리야가 내기의 기준으로 선택된 것처럼 말이다.

 

엘리야는 작품에서 마치 ‘선’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 같지만, 비어있기에 순백의 존재처럼 비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청년이었을 뿐이었다.

 

 

 

순애, 가장 아름답고 기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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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신과 내기하고 인간을 타락시키려 하는데, 인간이 그를 신을 대하듯 순수하게 믿고 사랑한다면 그건 악마가 이긴 것인가? 아니면 신이 이긴 것인가?’

 

이 질문은 작가님이 책 뒤편에 남겨주신 말로, 이 만화가 시작된 주제를 의미한다. 실제로, 작품에서 신과 루스의 내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에게 이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

 

앞서서 엘리야가 루스를 마치 신을 섬기는 것처럼 맹목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기에 신을 향한 믿음 또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작품에서 엘리야는 루스를 종교적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듯 루스를 상대로서 사랑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모든 생애를 바칠 순애 적인 사랑이기에 마치 신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순애’는 때때로 문학에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이만큼 기형적인 사랑 또한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조건과도 상관없이 상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습이 평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루스가 자존심이 강하고 교활하기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엘리야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만약 일방적인 순애였다면 엘리야는 상관없을지 몰라도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상당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순애 적인 모습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의 스포일러가 될까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엘리야가 루스를 사랑하고 있다는 모습이 다양한 방법과 말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순애 적인 면모가 드러나기에,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야기가 이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것 아닐까.

 

만화 <검은 후견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말했지만,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만화를 그리신 작가님 또한 해석은 읽는 분들의 것이라 말한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인상 깊으면서도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뽑는 만화로, 다양한 해석의 공유가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이의 해석을 듣거나, 다시 읽기를 통해 발견하지 못했던 주인공이 겪는 고뇌나 등장인물 간의 감정적 교류, 설화 속에서 보이는 그들의 상황 등을 찾아냄으로써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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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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