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존과학과 예술, 읽고 논쟁하고 질문하기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도서]

예술 속 삶과 이야기로서의 보존과학
글 입력 2020.12.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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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예술을 과학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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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라는 예술 장르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전시 목록을 하나씩 더해갈 때, 책이나 영화를 통해 우연히 마음에 와닿는 작품을 만날 때, 가까워지는 마음은 서서히 빛을 머금는다.

 

그 계기는 그림에 깃든 ‘이야기’였다. 나는 시를 읽듯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 즐거움을 경험했다. 이미지의 여백에 나 개인의 감정과 경험을 채우며 읽거나 그림 속 인물의 서사를 상상하며 읽어내는 일 또는 붓을 든 작가의 마음을 생각하며 읽는 일. 그렇게 그림을 읽고 나면 마음이 차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를 통해 미술로써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과학의 눈으로 예술을 읽는 것이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보존과학은 미술품을 연구하는 학문의 한 분야로, 미술작품의 미학적 관점보다는 물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학문이다. 보존과학은 작품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연구해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작품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논쟁하기, 보존과학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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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 그림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나라면 그림에 관해 다음과 같은 감상을 남겼을 것 같다.

 

‘한 폭의 그림은 그림 앞 화가의 삶처럼 보인다. 화가가 쥔 큰 낫과 곰방대로부터의 연기가 그림을 망치는 모습으로부터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어떤 인간을 상상한다. 그는 일부러 그림을 파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기와 낫의 정체는 무엇일까. 죄책감, 무력감 어떤 것도 가능하겠다.’

 

이 작품은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 <그림을 태우는 시간(Time smoking a Picture)>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던 시기, 위급한 국가 상황임에도 작품의 연구 활동과 보존처리 활동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가령 영국에서는 2000여 점 그림이 버려진 탄광으로 옮겨져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6년 가까이 보관되면서 연구 및 보존처리 됐다. 진행됐던 보존처리 작업은 바로 ‘클리닝’ 작업이었다. 클리닝 작업이란,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덮는 바니시(Varnish)가 오래돼 변색했을 때의 바니시 그리고 먼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말한다.

 

탄광 속 그림들은 1947년 10월, <깨끗해진 그림(Cleaned Pictures)>라는 이름의 전시를 통해 70여 점 정도가 한 데 모였다. 하지만 이 전시에는 차가운 반응이 쏟아졌다. 그림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변색한 그림을 원래의 색으로 ‘깨끗하게’ 만든 건 일반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일 테다. 비난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지와 오래된 바니시에 덮인 상태의 그림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 선명해진 색상이 오히려 반감을 준 것이다.

 

물론 반대의 입장도 존재했다.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이 그 예다. <그림을 태우는 시간>은 전시 <깨끗해진 그림>의 포스터였다. 호가스는 어두운 바니시에 뒤덮인 명화를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당시의 분위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림 속 ‘VARNISH'라 쓰인 큰 항아리와 곰방대로 내뿜는 담배 연기는 각각 바니시와 먼지를, 그림을 뚫은 큰 낫은 시간을 상징한다. 즉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은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파괴된다는 걸 은유한 것이다.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모두 함께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 막중한 책임을 잘해 보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논쟁은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런 논쟁을 생산적인 자극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보존처리 과정에 앞서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왜 복원해야 하는가. 이는 작품의 손상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질문이다. 둘째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이는 방법론적 연구에 관한 이야기로 미술관에 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한다. 셋째 누가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기술적인 교육과 철학이나 윤리에 관련한 교육을 받은, 그리고 보존가의 막중한 책임감을 잘 알고 있는 보존가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세 질문은 저자가 강조하는 ‘보존과학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야 한다’는 문장을 뒷받침한다. 보존은 함께 고민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선 논쟁은 같은 맥락에서 생산적인 자극이 되었다. 그 자체로 미술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함으로써 보존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이다. 실제로 논란 이후 미술품 보존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보존가들에게는 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질문하기, “작가 OOO라면 어떤 보존처리방법을 선택했을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마주할 때, 지금까지 작품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노력을 떠올렸으면 한다. 미술 작품의 생명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 긴 생명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의 손길로 지켜진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이야기’다. 저자가 말했듯 보존과학은 내게 작품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었다. 복원 전후가 다른 그림 앞에 선 과거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보존 방법에 착오가 있었구나”.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을 듯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작가 OOO라면 어떤 보존처리방법을 선택했을까?”

 

백남준의 작품이자 텔레비전을 이용한 비디오아트 보존과정을 담은 대목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다음의 질문을 던졌다. ‘백남준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보존과학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여긴다.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중심적 위치엔 작가가 있다는 것. 이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함께 예술작품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무는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술관에 가면 새로운 이야기들을 읽게 될 것 같다. 보존과학을 아는 일은 미술관에 더 긴 시간 머무르도록 하는 일이다. 보존과정에 깃든 수많은 보존가들의 노고와 보존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 그리고 논쟁은 모두 ‘이야기’가 된다. 그리하여 보존과학을 이해하는 일은 켜켜이 쌓여온 다양한 시간을 읽는 일이다.

 

그림이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던 때부터 그 이래로 여러 보존가의 손길이 있었던 과거를 차례로 읽는 일. 그리고 소중한 이야깃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존과학에 관한 관심은 더더욱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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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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