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에 벌어지는 범죄극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 영화 '소리도 없이'

영화의 단상 - <소리도 없이>(홍의정, 2020)
글 입력 2020.10.2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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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고 빽빽한 풍경의 미색은 <소리도 없이>(홍의정, 2020)의 매혹이다. 이 영화가 채색하는 농촌의 풍광은 밝은 빛과 진한 색감으로 표현된다. 새벽 박명의 하늘색은 신비로운 정취를 만들고 한낮의 논길은 안온하다. 여름 논 위로 떠있는 해질녁 붉은 햇무리는 하루 끝의 노곤함과 어우러진다.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볼 법한 낭만적 이미지이지만 <소리도 없이>가 이렇게 묘사한 공간의 실상은 참혹하다. <소리도 없이>의 공간적 배경인 무명의 시골은 겉보기에 평범한 농촌이지만 매일같이 조직폭력배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는 곳이다. 벽산 곳곳에는 시체가 암매장되고 자전거로 갈법한 지근거리에는 아동 인신매매 소굴이 양계장으로 둔갑해 있다. 범죄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공간이건만 <소리도 없이>는 공들여서 농촌의 풍경을 시간대별 햇빛의 색으로 치장한다.

 

영화가 범죄 이야기임에도 빛의 미감이 두드러진다는 특성은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추격자>(나홍진, 2007), <아저씨>(이정범, 2010) 등의 영화가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배경에 범죄 사건을 발생시켜 시야를 제한하고 극의 긴장감을 더함 분명 다른 방식이다. 이처럼 <소리도 없이>가 선택한 뚜렷한 색감 조성은 범죄 영화 장르와 낯선 조합으로 관객에게 언캐니(친밀한 대상에서 느끼는 낯설고 기이한 감정)를 유발한다.

 

영화의 언캐니는 풍경 이미지에서 멈추지 않는다.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 그리고 기타 인물들이 범죄를 수행하는 행동 양상도 언캐니를 유발한다. 영화 속 범죄자들은 절대악, 교활함, 변태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들의 범죄 행각엔 <오션스 시리즈>처럼 만화적인 기교도 없다. 오히려 우리네 삶에서 흔히 만나는 기능인들의 태도에 가깝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이들은 근면함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으려는 현실적 태도를 견지한다. 창복이 자주 중얼거리는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성실히 일하면 복이 온다’는 개신교적 가르침이 이들의 성실한 자세를 강조한다.

 

이들은 업무(업무가 곧 범죄이기도 하다)상 교류하는 사람들과도 예의를 갖춘다. 부장님, 실장님, 선생님 등의 존칭과 함께 차분히 범죄를 논의하는 장면들은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낸다. 유괴된 초희(문승아)를 데리러 가면서 건물의 트럭 주차 가능 여부를 묻는다든지 빈사 상태의 실장에게 태연하게 의뢰인 인수인계를 묻는 영화의 유머는 범죄와 폭력의 무거운 분위기를 일순간에 코미디의 토대로 변환한다. 이렇듯 <소리도 없이>는 범죄를 행하는 캐릭터에 보통의 인간성을 불어넣고 생활밀착형 말재간을 던진다. 반인륜적 행위를 일상의 얼굴과 유머로 승화시키는 영화의 뻔뻔함은 또 다른 언캐니를 유발한다.

 

 

소리도없이1.jpg

 

 

다시 말해 <소리도 없이>는 아동 유괴 소재를 다루면서 아름다운 풍경 이미지 위에 무겁지 않은 화법을 얹어 이야기를 꾸린다. 백주의 범죄극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기존 범죄 소재 영화의 관습을 비틀고 보는 이의 이질감을 자극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형언하기 힘든 자근거림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편한 감정의 궤적을 역추적하다 보면 영화가 비꼰 사회의 상을 마주하게 된다. 너무 한낮의 범죄와 일상의 얼굴을 띤 범죄자의 형상은 비윤리성의 위협에 빈번히 노출되어 무감각해져 버린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다.

 

시체 암매장 후 드리는 기도를 선행으로 여기는 창복과 초희의 몸값을 받고 부모에게 돌려주는 편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유괴범은 자연스레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윤리적 책무에 대한 고민이라곤 볼 수 이들을 블랙코미디로 표현한다. 씁쓸한 웃음 뒤에는 ‘당신도 자신과 타인의 주변에 만연한 배륜(背倫)에 무디게 대응하지는 않았는지’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소리도 없이>가 낯선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유는 이러한 메시지가 자칫 범죄 스릴러 장르에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낯선 방식이 바로 백주에 평범하게 벌어지는 범죄극이다.

 

한편 <소리도 없이>에는 영화가 무책임하게 아동 대상 범죄를 연성화를 하지 않도록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소리도 없이>에서 폭력은 최소한으로 제공되며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도 기존 범죄 영화에 비하면 한참 온건하다. 카메라 역시 장르 영화에서 소녀를 대상으로 하는 실수인 성적대상화를 범하지 않는다. 서사는 창복과 태인에게 기구한 과거를 물리지 않아 그들에게 얄팍한 공감대를 형성하려 들지 않는다. 영화는 얕은 유희와 비감의 막을 걷어내고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범죄가 발생하는 구조를 응시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려 깊은 고민의 결과가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초희다. 초희는 마냥 일방적인 범죄 피해자의 표상이 아니다. 태인에게 저항하기도 하며 시시때때로 탈출을 노린다. 반대로 어떤 때는 태인과 문주(이가은)와 유사 가족 사이의 살가운 온정을 형성하기도 한다. 영화는 초희를 약소함을 강조해 관객의 눈물을 노리는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면모를 가진 복잡한 인물로 존중한다.

 

<소리도 없이>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표면을 따왔을 뿐, 해당 장르의 주요 관습인 폭력의 쾌감이 없다. 덕분에 폭력 전시에서 기인하는 윤리적 불쾌감도 없다. 대신 물보라처럼 일어난 언캐니를 필두로 범죄가 일상화된 현실의 궁색한 민낯을 돌아보게 한다. <소리도 없이>를 보고 난 후 남아있는 영화의 인상은 풍경의 미감도 소소한 유머도 아니다. 대신 미진한 언캐니가 잔여물이 되어 씁쓸함을 자아낸다. 2016 베니스 비엔날레 칼리지 시네마 최종후보작.


 

감독: 홍의정

출연: 유아인, 유재명, 문승아 등

장르: 드라마

쿠키영상: 없음

 

 



[김태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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