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거, 지능문제거든요 [사람]

공감의 결여를 자랑하는 무지(無知)에 관하여
글 입력 2020.09.2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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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의자에 한 살배기 아이가 끼어 숨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찢어지는 듯 안타까운 마음을 작게나마 전하기 위해, 위로의 댓글이 있으면 추천이라도 눌러 주려고 댓글창을 봤다. 그러나 내가 기사를 읽을 당시, 가장 많이 추천 받은 댓글의 충격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부모 책임”
 
지금 쯤 본인들이 사들인 안마의자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그 누구보다도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울고 있을 이들에게, 어떻게 저렇게 잔인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몇 백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은 이들이겐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저 말에 무수한 공감을 누를 수 있는 것인지.
 
'만일 내 일이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하는 삶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헛구역질이 났다.
 
부모 책임.
 
이런 말을 쉽게 내뱉는 인생들이 모여, 세상의 수많은 고통들이 죽지도 않고 존재하는 것이겠지.
 
*
 
필자는 개인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란 굉장히 모호한 것이고 주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행위에 대해 ‘나쁘다’든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편이다.
 
그렇지만, 나는 감히, 이와 같이 성찰이 결여된 말과 행동들은 명백히 나쁘고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차근차근 이야기해보려 한다.
 
*
 
앞선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른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앞으로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거 아냐?
슬퍼하거나 애도하고 있을 시간 없다고!"
 
그런 의도였다면, 그들의 주장은 더욱이 잘못되었다. 특히나 논리적으로 말이다. 우선 책임소재의 방향성을 피해자 개인에게로 돌렸을 때와 제품을 생산하고 제공한 기업이나 단체에 두었을 때, 어떤 경우가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는 효과를 크게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우선 당장 피해를 입은 측의 개인에게 ‘조금 더 조심했어야지.’와 같은 말로 나무란다면 당장 그 기사를 본 이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그래, 조심해야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사를 접하지 않은 수많은 또 다른 소비자들은 과연 어떨까? 그들이 똑같이 처하는 위험상황을 개선하기에 당장 조심하지 않은 이들을 힐난하고 훈계하는 방법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반대로 제품을 제공한 회사나 기업 측에 책임소재를 돌린다면 어떨까. 앞으로 일어날 위험상황의 방지에 훨씬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제품에 ‘소아나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 기기 특성상 코드를 뽑아 놓아야한다’는 주의메시지를 붙여놓는다든가, 아이들이 쉽게 누르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고안한다든가 하는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실현시켜달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소비자들이 주의를 기울일 수 있고, 앞으로의 사고는 더 많이 방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로 앞으로의 사고가 걱정되어서 그런 식의 댓글을 달았다면, 그들의 행위는 사고를 방지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비슷한 예로 얼마 전 전 국민을 울린 ‘라면형제’에 관한 예를 들 수 있겠다. 사람들은 상황을 그 지경으로 방치시킨 ‘라면형제’의 어머니를 비난했지만, 그녀 역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지쳐버린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녀 개인을 향한 비난은 사회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난의 화살을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으로 돌리고, 그 가정을 그렇게 망가뜨린 구조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앞으로 또 다른 ‘라면형제’를 막기 위해 정책과 복지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져야 하는지 명료하게 주장하고 요구하는 편이 훨씬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그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완전히 잘못되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현재 고통과 실의에 빠져있는 이들에게는 뼈 아픈 말을 –소위 훈계 차원에서- 해도 된다는 소리인데 이것은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은 댓글에 뭘 이렇게까지 열을 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도덕적으로 잘못된 논리와 주장들이 모여 폭력을,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이런 식의 논리에서는 늘 고통 받거나 희생당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권리는 철저히 묵살된다.
 
*
 
나는 이렇게, 본인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동시에 감수성과 공감능력을 등한시하는 이들이 보이는 오류와 오만이, 결국은 그들을 도태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이전이라면, 그러니까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을 지키는 데에 부족 간의 전쟁이 필연적이던 단군할아버지적 시절 정도의 과거라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고, 호전적인 이들이 살아남기 수월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관계 위주의 사회성이 요구되고, 또 자연재해로 많은 동물과 인류가 고통 받고, 동물학대로 인해 인수공통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생기고, 성별로 인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고, 전쟁으로 인한 득보다 실이 많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는 공감능력이나 감수성은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감성과 공감능력, 혹은 영성의 문제가 이제는 생존과도 직결된 지적 능력의 문제라고 본다. 이성에 치우쳐 공감하고 감정에 빠지는 일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소위 '똑똑한 사람들'이 사실은 덜 똑똑할 수 있단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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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우리가 공감능력과 감수성의 측면에서 더 똑똑해지길 소망한다. 그로인해 세상의 고통이 점차 가벼워 질 수 있기를.
 
우리는 벌써 자연의 아픔을 외면해 수많은 자연재해를 맞이하고 성별과 사회적 격차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고 박쥐 등 많은 동물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않다가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맞이하기도 했다. 결국 성찰과 공감의 종말은 개인의, 나아가서 인류의 종말이 될 수 있다. 성찰과 공감, 고민과 감수성의 결여는 죽음으로 가는 무지(無知)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대표이미지 출처: 성대신문 정선주 외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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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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