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 홍다빈을 생생히 담은 앨범 Giggles [음악]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
글 입력 2024.01.3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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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 LIVE, 아니 이제 홍다빈으로 불러야 하는 래퍼의 정규 1집 Giggles가 나왔다. 활동명을 DPR LIVE에서 본인의 이름인 홍다빈으로 바꾸며 DPR LIVE 시절에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인간 홍다빈의 솔직한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팬심이 듬뿍 담긴 전체적인 앨범 리뷰를 하기에 앞서 전반적인 감상평을 말하자면 단 한 명의 피처링 없이 홍다빈의 음악적 역량을 온전히 담은 미친듯한 사운드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가장 현대적인 모습으로 한국힙합을 구현한 실험적이면서도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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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이 발매된 1월 23일, 얼굴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다. 두터운 캐시미어 초록색 목도리를 단단히 매고 고개를 파묻은 채 회사 정문을 나오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앨범을 재생시켰다. 첫 번째 트랙부터 귀를 사로잡는 쫀득한 사운드가 울려 퍼지면서 감탄했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하러 가는 길에 트랙들이 전환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와 미쳤다!"하고 감탄사가 나왔고 꽁꽁 언 공기를 뚫고 자연스럽게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진심으로 감탄 할 수밖에 없는 신선한 사운드의 향연이었다.


 

 

지루하지 않은 사운드와 독보적인 전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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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다빈의 데뷔 앨범 Giggles는 지루하지 않은 사운드와 독보적인 전개방식으로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총 13곡을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쭉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 각각의 트랙들을 들어보면 속도감 있게 몰아치면서도 적절한 타이밍에 랩이나 비트를 끊거나 변주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이로 인해 리스너가 사운드나 곡 전개 방식에 익숙해질 틈을 주지 않고 지속적으로 집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DPR Cream의 비트가 미쳤다. 빈지노의 Monet 비트를 처음 들었을 때 DPR Cream의 비트라는 것을 듣고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을 통해 DPR Cream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감이 오지를 않는다. 현시점에서 가장 세련된 비트를 만드는 비트 메이커가 아닌가 싶다.


실험적인 사운드가 이어지지만 놀랍게도 귀가 전혀 피곤하지 않다. 그 이유는 앨범 곳곳에 Interlude가 적절히 완급조절을 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곡 수에 비해 Interlude 성격의 트랙이 많아 다소 아쉽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개성 넘치는 트랙들이 13곡 꽉꽉 채워져 있었으면 앨범을 정주행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적절하게 Interlude를 배치해 앨범의 전체적인 서사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13곡으로 구성된 앨범이라는 느낌보다는 13곡이 하나의 트랙처럼 연속성이 느껴지게 했다.


역시 이번 앨범에서도 빛난 것은 DPR LIVE의 1집 앨범 Is Anybody Out There에서 보여준 집착에 가까운 스토리텔링이다. 하지만 Is Anybody Out There는 가상의 페르소나를 설정한 판타지와 같은 스토리였다면 이번 앨범은 날 것의 인간 홍다빈을 담은 진정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었다. 마치 엑스맨 시리즈의 <울버린>이 아닌 울버린의 본체인 로건을 다룬 영화 <로건>과 같다. DPR LIVE가 울버린이라면 로건은 홍다빈인 것이다.


앨범 Giggles가 장르팬들의 호평을 받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DPR LIVE시절에서는 볼 수 없는 독기 넘치는 가사와 플로우 때문일 것이다. DPR LIVE 시절에는 다루기 힘든 내용과 곡 전개방식을 이번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홍다빈은 과거에부터 이미 힙합씬에 본인의 음악성을 충분히 증명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사운드로 무장한 채 다시금 본인의 음악성이 차원이 다름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과물인 앨범 Giggles는 명작이다. 


 

 

앨범 수록곡별 감상평

 

 

1번 트랙: Kiss The Ring

 

 

 

대부분 앨범의 1번 트랙들은 1분 이하의 Intro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앨범 Giggles의 1번 트랙은 뻔하디 뻔한 Intro적인 요소의 트랙이 아닌 점부터 너무 좋았다. 1번 트랙부터 쫀득하고 통통 튀는 DPR Cream의 비트가 몰아치면서 앨범의 전체적인 색깔을 제시해 준다. DPR LIVE 시절이 연상되는 트랙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2번 트랙: Ghost K!D

 

 

 

1번 트랙에서 2번 트랙 넘어갔을 때 갑자기 신스팝 사운드가 나와서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어떻게 보면 랩 하기에 가벼워 보일 수 있는 통통 튀는 신스팝 비트를 안정감 넘치는 톤으로 눌러버리면서 끌고 가는 게 랩을 너무 잘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비트를 이렇게 소화할 수 있는 래퍼가 누구일까 생각하면 막상 몇 명 떠오르지 않는다.


비트는 사뭇 밝아 보이지만 가사를 보면 홍다빈이 학창 시절 동양인으로서 인종차별을 당했던 내용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가장 잘하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바탕으로 자전적 얘기를 세련되게 풀어낸 트랙이다.

 


3번 트랙: REC

 

 

 

처음에 듣고 이게 뭐지? 했다. 미공개곡들을 모아놓은 건지 아니면 나중에 공개될 곡들에 대한 맛보기인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Interlude을 표방한 트랙임에도 구성 방식이 신선하고 재밌다. 짧게 짧게 트랙들을 이어 붙여 콜라주 작품 같기도 하며 배스킨라빈스 맛보기 스푼이라 생각도 든다. 한마디로 여러 곡을 짧게 짧게 듣는 재미가 있다.


과거 DPR LIVE 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트랙들부터 다양한 트랙들의 일정 부분들이 짧게 짧게 이어진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들이 있는 부분을 잘라서 이어 붙인 것 같다. 정확히 트랙을 어떠한 의도로 배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부분부터 갑자기 음량이 팍 하고 커지는데 믹싱 때 이걸 고려 안 했을 리가 없고 이런 효과들을 통해 의도적으로 여러 트랙들을 후가공하지 않고 짧게 짧게 단순히 이어 붙였다는 인상을 준다.


 

4번 트랙: Till I Live

 

 

 

해당 트랙은 선공개 곡이어서 익히 들었지만 싱글로 들었을 때랑 앨범 사이에 묻혀서 들었을 때 느낌이 확 달라서 놀랬다. 처음 들었을 때는 홍다빈으로 활동명을 변경했고 이전의 DPR LIVE 이미지를 벗어내고 다른 이미지, 페르소나를 심기 위해서 무겁고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일반적인 트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앨범 속에서 들으니까 화려한 스타의 삶의 이면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고독과 아픔, 말 못 할 어려움을 담긴 공허함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특히 아버지와 관련된 내용과 함께 말이다.


 

5번트랙: Giggles 2023: SNTTF / 6번 트랙: WMP freestyle

 

 

 

최근에 지켜보니 홍다빈의 전 소속사에서 금전적인 문제와 불공정 계약등의 문제가 벌어졌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홍다빈 측에서 전 소속사 대표인 DPR Rem을 고소했다는 기사를 봤다. 예전부터 문제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분노를 홍다빈은 5번/6번 트랙에 적나라하게 담았다.


6번 트랙은 이번 앨범에서 제일 충격받은 트랙이다. DPR Rem에 대한 분노와 이를 형상화하기 위해 독기를 품은 발음을 뭉개면서 긁어내리는 플로우는 전혀 다른 모습의 홍다빈을 보여줬다. 비트도 인상적이었는데 'Pause it, need deposits'을 반복적으로 외치는 Chant(성가)가 전통적인 트랩비트와 어우러지면서 오랜만에 웅장함을 느꼈다. 뒷부분에 사이렌과 같은 신스가 깔리면서 정신없이 쏟아붓는데 모든 사운드들이 조화롭게 섞여 내리 꽂힌다.


 

7번 트랙: unconscious interlude / 8번 트랙: Anechoic Period

 

 

 

7번 트랙은 앞선 분노들에 대해 잠시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을 준다. 앞에 쏟아냈던 분노와 흥분을 잠시 가라앉힌다. 적절한 완급조절이다. 마치 전력질주를 하고 숨을 고르듯이.


인상적인 건 8번 트랙이다. 트랙명을 검색해 봤다. 검색을 해보니 연관 단어로 Anecochic Chamber라는 단어가 나오고 뜻을 보니 무향실이 나온다. 무향실과 관련해서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모든 소리를 흡수해서 세상에서 가장 고용한 곳이라 불리는 방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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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의 의미가 바로 유추되었다. 앞단에 쏟아 낸 분노가 끝난 후 숨을 고르는, 내면의 고요를 표현한 트랙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8번 트랙이 바람소리 등 엠비언트적인 사운드가 3분 동안 이어지지만 맥을 끊는 느낌이 아닌 앨범의 완급을 조절하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엄숙하게 앨범의 속도감과 감정을 조절했다.



9번트랙: Tic Tac? / 10번 트랙: R E L A X

 

 

 

9번 트랙도 싱글로 선공개된 트랙이다. 역시나 앨범의 전체적인 서사를 따라서 들으니 싱글로 들었을 때랑 다르게 앞에 뿜어져 나온 분노로 인해 딱딱하게 굳었던 몸과 정신을 담담하게 풀어나가자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이어서 동일한 비트가 나오는 10번 트랙도 생각을 환기해 주는, 긴장을 서서히 풀고 서서히 몸을 움직이는  시도를 담았다. 일단 비트가 너무 좋다.


 

11번 트랙: Shower Song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곡이 시작되고 샤워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효과가 나온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들들이 참으로 재밌다. 곡이 전개되는 방식이나 목소리를 꺾는 것들이 차일디쉬 갬비노의 'Redbone'의 플로우를 오마주 한듯한 느낌이 든다. 


과거의 구렁텅이에서 다시 일어나 희망을 찾아가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이며 역시나 트랙의 중간마다 비트를 색다르게 변주해서 지루할 법한 순간을 끊어버린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고조되는데 진짜 랩을 너무 잘한다. 홍다빈이 소화 못할 비트가 있을 것인가라는 원초적인 의문이 든다.


 

12번 트랙: Coming To You Live / 13번 트랙: Green Juice

 

 

 

Coming To You LIVE, 반가우면서도 묘한 시그니쳐사운드와 함께 13번 트랙에서 DPR LIVE가 제일 잘하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분명 마지막 트랙인데 첫 번째 트랙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평소에 아는 DPR LIVE라면 이런 사운드의 노래가 바로 앞단부터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홍다빈의 스토리를 담은 앨범이다. 이 트랙을 마지막에 배치하면서 벌써부터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만든다. 앞부분의 트랙들은 그간의 공백에 대한 대답들이고 이제 DPR LIVE 시절의 색깔도 다시 구현한다는 의미인지 등 정확한 의미는 당연히 홍다빈밖에 모르겠지만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 비트부터 미쳤고 전형적인 DRP LIVE 곡 전개방식이 느껴져서 듣기에 너무 편안한 트랙이다.


 

 

콜라주 작품과도 같은 앨범

 

원래 같으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들으면 앨범이 끝이 났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앨범 Giggles는 마지막 트랙은 마지막을 의미하지 않는, 또 다른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을 듣는 느낌이다. 마지막 트랙과 첫 번째 트랙과 느낌도 비슷해서 앨범 반복재생으로 설정해 놓으면 앨범을 무한히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뻔하게 첫 번째, 마지막 트랙 느낌이 들지 않게 구성한 점에서 그냥 무한반복하라는 의미인가 싶다.


현재 국내힙합씬은 분명히 침체기이다. 비슷한 사운드가 난무하고 귀가 피곤하고 지친다. 이런 상황에서 홍다빈의 앨범 Giggles는 침체된 국내힙합씬에 화려한 물감을 뿌려 넣는다. 힙합의 세부 장르로 국한시키는 것이 의미 없는 실험적인 비트들의 향연,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발음을 끌면서 깊게 꺾어 들어가는 플로우를 보여주는 등 다양한 시도로 듣는 재미를 극대화시켰다. 오랜만에 색깔 넘치는 앨범을 듣게 되어 영광이다.


DPR LIVE 시절에도 국내힙합에서 볼 수 없는 총천연색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본인의 이름을 건 홍다빈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매우 응원한다. 그간 겪었던 고통을 잘 이겨내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음악적 역량을 모두 다 분출해 리스너들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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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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