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이야기, 믿을 수 있겠어요? '메기' [영화]

글 입력 2020.08.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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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 이름부터 독보적이다. 대개 영화의 제목을 보면 대충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감을 잡지 않나. 근데 이 영화의 '메기'라는 제목은 어떤 방향성도 내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궁금증을 자극한다.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온전히 그 궁금증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메기'라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가 얼마나 좋길래 여기저기에서 상을 쓸어오는 걸까?

 

영화를 관람하고 한 시간 반 후, 내가 정확히 이런 말을 했다. '와, 진짜 이런 영화가 다 있네.'

 

이옥섭 감독의 작품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열 네 번째 인권 영화프로젝트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옥섭 감독에게 너무 무겁지만은 않은 경쾌한 인권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메기>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독립영화, 또한 인권영화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영화는 현대 사회의 세태를 정확히 투시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현대의 이야기를 독특한 연출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풀어나가며 신선함과 교훈을 동시에 전달한다.

 

<메기>의 이야기는 한 가지로 모이지 않는다. 이 영화의 비범함이 그와 맞닿아있다. 청년 취업난, 서로 간의 불신, 데이트 폭력과 불법 촬영으로 인한 인권 침해 등 동시대의 사회상을 정확하게 투시하며 무너져가고 있는 청년들의 연대를 다소 유쾌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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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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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인공 여윤영이 근무하고 있는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민망한 엑스레이 사진이 유포되면서 시작한다. 병원에 떡하니 걸려있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저 사진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사람들은 누가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찍힌 사람들만을 궁금해 하고 그게 누군지를 탐색한다. 이 장면을 불법 촬영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닮아있다. 가해자의 가해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 피해자를 궁금해 하고 피해자의 행위에 2차 가해를 일삼는 사회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이 엑스레이 사진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윤영을 의심하며, 윤영 또한 자신의 사진인 줄 알고 사직서를 쓰고 병원을 떠나려고 하지만, 부원장 경진과의 실랑이 후 오기가 생겨 계속 근무하기로 한다.

 

그리고 윤영을 관찰하는 자가 있다. 그것이 바로 '메기'다. 영화는 전지적 '메기' 시점으로 진행되며 윤영과 윤영의 주변인을 관찰하고 설명해준다. 메기가 한 번씩 높이 솟아오를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영화 속에서 메기는 위험의 전조증상을 알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저 어항 안에 담긴 생선이 아닌, 지구의 위험을 감지하는 전지전능한 역할로써 자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메기일까. 이옥섭 감독은 The icon TV 인터뷰에서 '메기는 아주 예민하고, 사람이 예측하지 못하는 것을 한다. 따라서 메기와 함께 한다면 윤영이는 어떤 일도 겪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 메기는 상황을 전달하고 위험을 알려주는 안내함으로 인해 윤영을 지켜주고 있는 일종의 수호신과도 같다고 느꼈다.

 

불법 촬영 에피소드 이후로 전해지는 영화 속 모든 토픽은 우리 일상과 아주 밀접한 것들이다. 영화는 믿음과 불신이라는 대주제 안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녹아내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렸을 적 집단따돌림으로 인해 사람을 믿지 않게 된 부원장 경진, 같이 지내던 동료를 의심하게 되는 윤영의 남자친구 성원. 그리고 경진에게 사람을 믿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윤영이 추후에는 성원을 믿지 못하게 되는 모습까지. 쉽게 형성되지 않고, 쉽게 무너지는 현대 사회의 대인관계 속 신뢰를 고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심 속에 발생한 싱크홀을 복구하는 작업에 청년 인력을 투입함으로써 누군가의 피해가 누군가에게 수혜를 주기도 하고, 그로써 도시 세대의 공포로서 떠오르고 있는 싱크홀이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희망으로서 다가온다. 이렇게 도시는 낭만을 잃어가고, 청춘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운다. 그리고 메기는 말한다. '이 이야기, 믿을 수 있겠어요?'

 

'이 이야기'란, 기발한 아이디어로 연출해낸 판타지적 소재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영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러나 결국 거짓은 아닌 사회 이슈들을 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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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윤영은 경진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듣고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한다. 성원이 자신의 전 여자친구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듣고, 전 여자친구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반면에 성원은 동료를 의심해 포크레인 속의 구덩이에 빠져 잠이 들고, 데이트 폭력 사실을 시인하자마자 마법처럼 싱크홀에 빠져버린다.

 

성원의 변명은 이 영화에 담기지 않았다. JTBC의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 출연했던 이옥섭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껏 사회가 가해자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드는 영화만큼은 그런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유를 부여한다고 해서 성원의 폭력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모자라고 순할 줄만 알았던 성원이 사실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라는 반전을 주면서 기존에 심어뒀던 성원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어버린다. '저런' 성격의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을 패지 못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때리게 생긴 사람은 없다. 안 때리게 생긴 사람도 없다. 가해자는 누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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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소감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참 모르겠다. 하나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아서, 나도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게 더없이 어렵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전혀 아닐 것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영화라서 두 번 세 번 클립을 찾아봤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면 생각이 좀 더 깊어진다. 신기할 정도로 나와 닮은 캐릭터도 있었다. 감독의 예리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와 닮은 얼굴들이 종종 비친다.

 

도심 곳곳에 발생하는 싱크홀처럼 청춘의 앞엔 자신을 수렁으로 몰고 가는 구덩이가 상시 존재한다. 큰 리스크를 안고 사는 청춘들에게 영화는 이렇다 할 해답을 주진 않지만, '더 크게 구덩이를 파지 말고 빠져나오라'고 조언을 준다. 엉망이 된 세태를 비판하지만, 그것이 청춘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다독여준다. 메기의 존재가 그렇다. 이 영화의 제목이 '메기'일 수밖에 없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위험을 감지하고, 우리에게 대피할 것을 바라는. 경쾌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영화였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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