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안녕하세요, 아트인사이트 전문 필진 장소현입니다.

#소현 #예술 #운동
글 입력 2020.08.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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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글쎄, 나는 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현…. 중얼거려봐도 그렇게 매끄럽게 흐르는 어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12년 동안, 반에는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가 꼭 한 명씩 있었다. 1년에 한두 번씩 마주치는 그러한 상황들이 달갑지는 않았다. 특히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나보다 무언가를 더 잘 하거나, 더 칭찬을 많이 받는 것을 보면서 묘한 경쟁심을 느꼈다. 또 다른 소현을 만나는 것은, ‘나만이 가진 특별한 가치’가 빛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이름을 걸고 내가 더 돋보일 수 없다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이름이라는 게, 생각보다 나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름은 처음 나를 소개할 때 내가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나의 정체성이고, 타인들이 나를 부를 때 사용한다. 그래서 그런지 ‘저의 이름을 걸고’라는 말은 자신의 책임감을 상기시킬 때 자주 쓰는 문장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이름이 주는 무게가 묵직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 이름을 정할 때 나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름 앞에 붙은 성에서 내가 사랑하는 엄마가 배제된다는 것, 그것이 내 정체성으로 이야기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거부감도 있었다.

 

부여된 이름과 친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름과 친해진다는 것은, 내가 더 이상 ‘나만이 가진 특별한 가치’ 따위에 목 메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름에서 배제된 가사노동과 여성, 가부장제와 남성성이라는 구조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했다. 소현으로 하는 일들이 쌓여가면서, 그 속의 내 태도들을 매번 돌아보면서 나는 내가 가진 정체성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고, 규정과 범주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름은 더 이상 보상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더 돋보이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다.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름은 이제 나에게 무겁게 매달리지 않는다. 그것은 묵직하게 내 의도와 책임을 상기시키지만, 나는 그 무게에 기꺼이 스며든다. 때로 나는 내가 정한 이름으로 소개하고 불린다. 내 이름을 내가 새로이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내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내게 부여된 것과 내가 부여한 것을 감각하고 그것을 끝없이 파고들고 사랑하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이름과 친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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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내 인생을 둘로 나누라면, 미술을 공부하기 전과 후로 구분하겠다. 조금 낭만적인 문장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처음 작업실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 처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마음을 울리는 작품을 마주한 순간, 예술만이 나의 길임을 확신했다. 그 전율이 흐르는 새로운 길 위에 몸을 맡기겠다 다짐했다. 내가 배우는 미술을 나는 정확한 말로, ‘시각예술’ 또는 ‘순수미술’이라고 말하는데, 다시 풀어 말하자면, 학교에서는 평면, 회화, 판화, 입체, 금속, 목재, 모델링, 테크놀로지 등을 배우고 있다. 단순히 미술을 한다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그럼 디자인 잘 하시겠네요, 저희 팀의 디자인과 영상 제작을 맡아주세요’, ‘그림 잘 그리시겠네요, 저는 재능이 없어서 부러워요’ 등의 편견 섞인 시선을 피하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내가 배우는 것은 디자인과 전혀 다르다.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고 공부를 지속하는 쪽은 ‘개념미술’에 가깝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잘’ 그리지도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이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저는 예술하는 노동자인데요 전에 썼던 에세이에 이런 시선에 대한 고충을 녹여낸 적이 있다.

 

예술은 ‘길 찾기’다. 내가 처음 미술을 배울 때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다. 작업을 하는 매 순간 그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작업 내내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경계 밖으로, 그리하여 삶의 내부로, 그 경계선을 끊임없이 넓혀나가는 태도다. 태도에 대한 고민,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갈 것인가, 예술가로서 어떤 역할과 사명을 설정해나갈 것인가(또는 사명이라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은 예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다. ‘새로움’은 곧 예술의 본질이다. 기존의 제도화된 미술에서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지금의 컨템포러리 아트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주장에서 모순되는 다른 주장으로 나아가고, 다시 종합적인 주장으로 통합되는 과정 -정반합- 의 반복 속에서 발휘되는 창조성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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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movement

 

요즘 제일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내가 좋아하는 단체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다. 한 곳에서는 문화예술계와 대학 내 예술대학생과 청년예술인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다른 곳에서는 청소년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자의 일상에서의 실천들이 멀리 떨어져 보여도, 결국 운동은 하나로 이어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대학생 권리가 결국 비대학 권리 운동과 맞닿아있고, 비정규직 노동 운동이 결국 대학생 권리와 맞닿아있음을 느낀다. 대학들은 왜 ‘등록금 반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가?  칼럼에서도 썼듯이, 지금의 대학 기업화를 타파하고 진정한 교육, 교육공공성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국 학벌, 사회 전반에 있는 계급 격차가 사라져야 한다. 이는 결국 청소년 차별, 권리운동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경계를 넓혀가는 태도를 미술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어나간다. 지금 ‘정상’이라고 규정해둔 울타리를 계속해서 인식하고, 그 구조 속의 폭력과 차별, 억압과 배제에 편승하지 않으려 한다. 그 구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던 것은 가부장제를 인식하면서부터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에세이에서 내가 ‘남성성’과 ‘가부장제’에 대해 인지한 경험을 녹여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비거니즘과 동물권에 대한 공부도 함께했다. 내가 비건 지향적인 삶을 결심하기까지 에서는 비건 실천 초반에 했던 생각들을 정리했다.

 

앞으로의 계획?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 그리고 이 일련의 실천적 태도들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내 삶을 사랑하는지를 느낀다. 모두가 존중받고, 신뢰와 믿음, 연결과 유대감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지속하고 싶다. 그러니 매 순간 감각하고, 내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며, 그것은 어떠한 상과 처벌로도 이어지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자발적인 순간에, 그 누구도 규정하지 않는 언어들로 표현할 것이다. 마음껏 사랑하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 그 태도를 매 순간 담지 할 것이다. 나에게 계획이란 그 정도로 충분하다.

 

아 참, 공교롭게도 위에서 말한 두 단체 모두에서 나는 뉴스레터 제작을 겸하고 있다. ‘Z에게’와 ‘예술탄탄’인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오셔서 본인의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Z에게는 청소년 당사자가 만드는 뉴스레터로, 이제껏 채식, 페미니즘, 돈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일 최근 발행된 뉴스레터 주제는 ‘청소년과 섹슈얼리티’다. 청소년의 섹스와 자위, 섹슈얼리티는 왜 그토록 쉬쉬하고 통제해왔을까? 예술탄탄은 문화예술계 이슈 공론지다. 각종 문화예술계 이슈에 대한 전문가 논평과 각종 정보들을 담는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의 예술대학, 예술노동 이야기를 발행했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안교육 등의 이야기를 발행할 예정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바로 그 거리감을 좁히고 쉽게 다가가기 위해, 딱딱하지 않고 재밌는 뉴스레터를 위해 노력 중이니 기대해도 좋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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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bluecat
    • 소현님 안녕하세요!
      예술탄탄 받아보면서 항상 좋은 정보들에 감사했는데, 여기서도 뵙게 되다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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