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거니즘이 뭐예요? : 내가 비건 지향적인 삶을 결심하기까지 [문화 전반]

내가 비건 지향적인 삶을 결심하기까지
글 입력 2019.11.3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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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글을 언젠가는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시간을 망설였다. 왜 이렇게 망설여지는 이야기가 된 걸까? 무언가 대상화되고, 일반화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조심스럽다. 특히 글 그러니까 언어라는 것은 더욱 그러해서,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비건에 대해 거부감이나 그들은 이러이러한 공동체라는 일반화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보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말 그대로 ‘나’라는 개인이 겪고 생각해온 것들의 한 가닥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닌 특수한 것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굳이 시간으로 따지자면 내가 비건 지향적인 삶을 걷게 되기까지 무려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년 전 여름, 비건 음악 축제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당시 ‘비건’이 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때 처음 들어본 단어였을지도 모르겠다. 베지테리언Vegetarian 이라는 단어는 좀 더 익숙했다. 당시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에 외국인 손님들이 많았는데, 그중 본인을 베지테리언이라 칭하는 분들이 많았다. 고기가 없는 메뉴를 많이 찾으셨기 때문에 육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단어로 이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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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자원활동을 갔던 것은 비건이 아니라 음악 축제였기 때문이었다. 비건 캠프에 한 달 동안 함께 먹고 자고 지내다 보니, 고기를 먹지 않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식단에는 고기뿐만 아니라 초콜릿, 크림, 우유, 치즈, 달걀, 생선이 없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들이 나아가려는 방향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계속해서 알고 싶고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캠프의 종료와 동시에 끝이 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한여름 밤의 꿈처럼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고, 우연한 기회로 환경영화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옷을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옷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각종 재료들이 동물을 착취하면서, 그리고 많은 플라스틱이 함유되어 있어 지구를 고통스럽게 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때는 국내에서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고, 카페에서 텀블러 사용 할인 등의 제도가 생기면서 나는 자연스레 환경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도 비건을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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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개월 뒤, 환경영화제에서 보지 못했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노트북으로 감상했다. 킵 앤더슨 감독의 <카우스피라시Cowspiracy>는 공장식 축산 경영이 지구의 천연자원을 어떻게 훼손시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공장식 축산업은 물과 토양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탄소 배출로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며, 숲과 밀림을 파괴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대량 살처분의 원인이 된다.


가축들의 배설물과 폐수로 물과 토양이 오염된다. 탄소 배출은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요인이다. 축산업이 배출하는 탄소는 전체 배출량의 18퍼센트 이상으로 비행기, 자동차, 기차, 선박 등 모든 교통수단을 합친 배출량(약 13퍼센트)보다 많다고 한다. 메탄가스의 경우 인간 활동에 의한 전체 배출량 중 축산업이 35퍼센트를 차지한다. 기후 변화 원인의 51퍼센트가 축산업 때문이며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자동차 대기오염보다 89배 더 유해하다.


외에도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더 있다. 1-2초마다 축구장 넓이의 산림이 사라진다. 산림 파괴의 약 91퍼센트가 가축 사료 재배를 위한 경작지 확보 때문이다. 얼마 전 아마존의 멈추지 않던 불길도 이 때문이다. 경작지에서 재배되는 곡물의 50퍼센트 정도가 축산업의 사료로 쓰이며, 기아 문제 또한 그로 인해 더 악화되고 있다.


생선을 잡는 것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무분별하게 잡아들이는 어획 때문에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050년에는 모든 해양생물의 개체 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복합적이고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니.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고기만 먹지 않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엄청나게 촘촘하고 많은 것들이 얽혀 있었다. 이 문제들은 비건을 결심하게 했지만, 며칠 뒤에 나는 또다시 고기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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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건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동물권과 관련이 있다. 우리 집에는 6살 된 내 친구가 있다.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는 몰랐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도 무의식 속에서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기보다는 물건처럼 여겼던 것 같다. 내가 만지고 싶으면 마음대로 만지고, 껴안고, 동물의 사체로 만들어진 사료를 부어줬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상이 아닌 개별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웃음소리, 슬픈 표정, 즐거운 표정, 놀자는 목소리, 물 달라는 목소리. 개 라는 대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있어도, 개별적 존재들은 저마다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그들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그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즈음 다큐멘터리 <도미니언Dominion>을 봤다.

 

 

인류의 전체 역사 중, 6억 9천백만명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류는 매 3일마다 이와 같은 수의 동물을 죽이고 있으며, 이는 그 죽음이 너무나 거대하여 톤으로 밖에 측정할 수 없는 어류와 다른 해양 생물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입니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얼얼하고,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상을 본 뒤로 나는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아름다운 초원에서 뛰어놀고, 맛있고 건강한 물과 풀을 뜯던 동물들을 다 자라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이기 위해 가스실에 넣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편안히 잠들어 죽는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전혀 아니다. 대부분의 축산업에서는 “인도적”이라고 말하는 도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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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에서 질식시키는 것이 그 방법인데, 고농도 이산화탄소 가스실에 그들을 집어넣는다. 그들의 몸이 감전된 것처럼 마구 요동치고 벽의 위와 아래로 튀면서 부딪힌다. 고통에 온몸의 뼈가 뒤틀리고 으서져라 몸부림친다. 꽤 긴 시간 동안 그들은 눈과 콧구멍, 부비강, 인후와 허파가 타면서 질식한다. 가끔 의식이 있는 채로 나오는 이도 있는데, 나오자마자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려 목이 잘린다. 이는 단발성 사례가 아니다. 말 그대로 ‘공장식’ 축산업이다.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온갖 약물을 투여하고, 좁은 축사는 비위생적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이들은 더욱 고통받는다. 우유는 새끼가 있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강간시켜 새끼를 낳도록 하고, 갓 태어난 이들은 곧바로 똑같은 방식으로 길러지고 도살된다. 수탉은 알을 낳을 수 없기에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린다. 사채 찌꺼기는 다시 그들의 사료가 된다. 옷에 들어가는 동물의 털을 위해 살아있는 이들을 붙잡고 손으로 깃털을 뽑아낸다. 살아있는 상태로 뽑아야 털이 길고 풍성하기 때문인데, 이들의 비명소리를 듣는 내내 몸이 떨렸다.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뽑아낸다고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50년 후에 지금을 되돌아봤을 때,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여길 일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21세기의 ‘홀로코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있다면요?” 초대 손님은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공장식 축산입니다. 즉, 인류가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들을 다루는 방식 말입니다. 미래 인류가 돌아본다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얼마 후 유발 하라리가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제목은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였다.

 

출처 : 김한민, <아무튼, 비건 :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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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테리언Vegetarian은 비건Vegan과는 다른 뜻을 가진 단어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하는 신념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모든 동물성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신념을 포괄하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다. 그에 따라 탄생한 단어가 비건이다.

 

 

비거니즘Veganism은 다양한 이유로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 및 그러한 철학이다. 비건(vegan) 식습관에 그치지 않고 가죽제품, 양모, 오리털, 동물 화학 실험을 하는 제품 등 동물성 제품 사용 등도 피하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을 뜻할 수도 있다. 비거니즘에 동의해 동물성 제품 섭취 또는 사용을 피하는 사람을 비건(vegan)이라 한다.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듣는 이의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거부감을 표하거나, 수긍하는 이, 수긍은 하지만 그럼에도 동물 착취는 필요하다는 이. 이런 반응으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인간이며, 그는 도덕적으로 부족한 인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도덕의 기준은 사회에 흐름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도덕적 인식이 변화했음을 느끼고, 그에 따라 도덕적으로 옳은 쪽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다. 동물성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그 잔혹함을 책이나 인터넷 매체에서 읽고, 듣고,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비건이라는 용어에 대해 어렴풋이 그 뜻을 정리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당시 동물권 옹호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것은 페미니즘과 비거니즘 사이에 논리의 유사성이 있다, 즉 페미니즘과 비거니즘은 유사한 하나의 논리로 뒷받침될 수 있는 두 개의 주장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글은 나에 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내가 책에서 읽은 충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을 주었던 건 내 말 뒤에 따라오는 친구의 반응이었다. ‘뭐? 어떻게 그 둘이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어.’ 라는 표정으로 ‘그건 아니지’를 외치던 그. 분명 내 설명에도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반응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했을 때 거부감을 표하던 친구들의 반응과 유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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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장애인권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강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맴돈다. ‘장애로 겪는 여러 부조리들은 장애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장애를 둘러싼 환경 때문이다. 동정, 대상화, 편견이 그들을 가둔다.’ 대상화, 타자화하는 것은 누군가를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든다. 본인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언제였는가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과거에는 백인 남성의 유전자 자체가 우월하다는 이유로, 식민지 지배의 논리를 정당화하였으며, 흑인은 노예가 되어야 했고, 여성은 참정권 자체를 얻지 못했다. 사실 지금껏 그 논리는 이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 사회가 누군가를 타자화한다면, 그것은 곧 나 또한 타자화되고 대상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육식과 채식은 환경적 문제, 동물권 문제 외에도 정치적 문맥 위에 놓여있다.

 

 

타자화란 무엇일까? 나와 남, 우리와 남을 가르는 행위다. 내가 동일시하고 공감하는 우리와, 내가 멀리하고 싶은 남을 구분한 후, 남을 우리의 울타리 바깥으로 밀어내는 행위다. 그다음엔 담장을 한층 더 높이 친다. 그때부터 남의 일은 나와 무관해진다.

 

타자화에는 상향과 하향,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상향의 타자화 : 질투나 숭배를 할 때 한다. 예) 못난 나/잘난 남, 부모 잘못 만난 나/부모 잘 만난 남, 하향의 타자화 : 무시와 배제를 할 때 한다. 누군가를 짐승 취급할 때 가장 손쉽게 타자화할 수 있다.

 

출처 : 김한민, <아무튼, 비건 :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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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용어 속에도 타자화가 있다. 특히 영어의 경우, Cow와 Beef, 그리고 Pig와 Pork 가 지칭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듯이, 고기라는 단어 속에서 희생당한 동물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도록 새로운 용어가 채워져있다. 비건캠프에 있을 때 있었던 일화 하나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곳에는 검은색의 윤기나는 털을 가진 Ken이 있었다. 그리고 Ken과 항상 함께 다니는 John이 있었다. 그에게 질문했을 때, 그가 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Is she your dog?” “She’s not “my” dog. She’s my friend.” 아차, 싶었다. 의식 없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착취와 폭력의 의미가 있음을 느꼈다.

 

 

당신의 언어를 해방하라

 

언어는 강력한 도구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사물의 이름을 부르거나 묘사하는 일보다 더 많은 구실을 한다. 언어는 사물의 지위와 가치를 결정한다. 따라서 당신이 비인간 동물을 지칭하기 위해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일간의 편견이 들어간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라.

 

출처 : By Noreen Mola and The Blacker Family Animals’ Agenda

 

 

비건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종교의 이유, 동물권, 환경 문제, 그리고 건강 문제.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가장 많이 되돌아오는 반응이 ‘너 그러다 건강 다 상한다’ 이다. 육식을 하는 운동선수보다 채식을 하는 운동선수가 지구력이 더 좋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이야기하듯이, 동물성 음식이 없어도 충분히 건강할 수 있다. 베지닥터vegedoctor 등 의학 자료들을 읽을 수 있는 사이트 참조하는 편이다. 또는 앞서 말한 킵 앤더슨 감독의 또 다른 영화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를 추천한다. 가공육이 우리 몸에 미치는 (끔찍한) 영향을 알 수 있다.

 

‘식물은 안 불쌍하냐’ ‘그렇게 살면 삶의 행복을 많이 못 느낄 것 같아’ ‘너네 이것도 못 먹어?’ 못 먹는다기보다는 안 먹는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지향하는 삶을 방향을 지속해나가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다. 얼핏 보면 음식의 선택지가 줄어들어 불행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지가 줄어든 것을 오히려 행복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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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비건 지향적인 삶을 선택한 뒤에 연결됨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그랬다. 고질병처럼 따라다니던 대장염은 말끔히 사라졌다. 물론 대장염이 사라진 것과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것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배가 아픈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듯, 채소 본연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맛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마시듯 씹던 이전과 달리, 재료를 고심해서 고르고, 이 채소에 이런 맛이 있었구나를 느낀다. 그래서 미각을 다시 되찾았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다. 다양한 레시피를 찾아보고 때로는 실험적인 요리도 시도해본다.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기에, 가끔 본가에 갈 때마다 먹고 싶었던 요리를 해 먹는 편이다. 평안함과 행복함을 가장 느끼는 시간 중 하나다.

 

옷 소비는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실천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으나, 음식은 매일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메뉴 선택지가 줄어들 때마다 이렇게 많은 동물들을 착취해오고 있었단 말인가, 뼈져리게 느낀다. 작은 과자 속에도 비명이, 내가 마시는 음료와 초콜릿에도 절규가, 작은 사탕 속에도 피 냄새가 난다. 그것은 어떤 단어로도 대체 불가능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착취’다.

 

비건 지향적 삶을 살다 보면 느낀다. 한국에서 비건하기 정말 힘들구나. 나의 경우 기숙사에 살기 때문에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식판에 제공되는 동물성 음식을 제외하면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쌀밖에 없다. 비슷한 경우로, 학교 급식 메뉴를 선택할 수 없어 점심시간에 물만 마시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요즈음에 이러한 선택권 존중을 위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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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점점 비건 인구가 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가을 7회째를 맞은 비건페스티벌은 매회 방문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동물성 음식을 완전히 멈추긴 힘들지만, 적어도 고기는 먹지 않겠다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공통의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없다. 이 이야기들을 단순히 일기장에 끄적이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살아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할 의도가 전혀 없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물성 음식을 먹고, 동물성 옷을 입고,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는 언어를 써왔다. 아니 지금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함이 아니다. 내 작은 선택으로 고통받던 누군가가 해방된다면 나는 그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작은 선택으로 인해 내 삶에 찾아온 것들은 금욕, 절제, 분노가 아니었다. 나에게 찾아온 것은 평안, 자유, 연결이었다.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들어보니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다. 이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참고 문헌

육식의 성정치, 캐럴 제이 애덤스

아무튼, 비건, 김한민

도미니언, 크리스 델포스

카우스피라시, 킵 앤더슨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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