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일기] 01. 저는 예술하는 노동자인데요

글 입력 2020.05.0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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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의도하지 않은 말들에 상처 입을 때가 있다.


룸메이트가 ‘나는 매일 이렇게 공부만 하는데, 너는 교양을 많이 쌓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럽다’고 했다. 당시 나는 주말마다 전시를 보러 다녔는데 막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한 말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좀 울적했다. 그가 ‘교양’이라고 칭한 것들은 내 업이고 노동이고 그가 매일 하는 ‘공부’와 똑같은 거였는데. 도대체 뭐가 부럽다는 건지 이해가 잘 안됐다.


아르바이트 출근 첫날에 사장님이 ‘지금은 방황하겠지만 얼른 공부 마음을 다잡으라’고 했다. 그는 예술 한다는 나를 공부하기 싫어서 도피한 철없는 사회 부적응자로 치부했다. ‘너는 공부하기 싫어서 예술 하는 애들이랑 다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칭찬처럼 흘린 말이었겠지만 그 날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저녁에는 기사를 읽었다.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예술가. 글 밑에 달린 댓글에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러게,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어?’



사회 전반에 퍼진 예술에 대한 인식은 여전하다.


돈 많은 애들이 하는 것.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 돈이 많은 애들) 나는 돈이 없고, 부모님의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엄청나게 부유한 편도 아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돈 많은 애들이 예술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예술가가 자립할 수 있는 문화 생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예술가가 창작으로 돈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마련이 안 되어 있다는 얘기다. 부모의 경제력을 물려받지 못하면 예술 하기 힘든 건 일부 사실이다. 돈 많으니까 예술도 할 수 있는 거라고, 배부른 소리 말라고 하기 전에 돈이 없으면 왜 예술 하기가 힘든지, 왜 그런 구조로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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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 싫어서 예술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예술은 인문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을 시각적인 결과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방향성을 갖고 어떤 시각 언어를 연구해나갈 것인지. 그 깊이와 방향을 계속해서 찾고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기술, 법, 정치, 의학, 건축. 나는 그 다양한 학문의 길 중에서 예술이라는 학문을 선택했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으로 예술을 선택했다.


철학과 인문 책에서 꼭 언급되는 것이 예술인데, 그 속에서 이야기하는 예술과 현실 속 사회 인식에서 읽히는 예술 사이의 괴리는 나를 괴롭힌다. 전시를 보는 것은 나에게 공부다. 업으로 하고 있는 나에게는 취미 생활이나 문화생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조명은 어떠한지, 동선은 적절한지, 다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 작품, 서문, 리플렛, 홍보, 접근성. 세세한 언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수업이다. 치열하게 분석하고 쓰고 제안하고 실천하는 과정의 일부다.


 

예술이 마치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축복이나 재능으로 이야기될 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재능으로 금전적 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들이다. 가난하고 고독한 예술가의 삶은 낭만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재능은 아무 대가 없이 베풀어야 하는 것일까? ‘재능 기부’라는 이름으로 벽화 노동을 했다. 그것도 수업료 내고 듣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통보가 있었고,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노동 현장으로 가느라 다음 수업 시간도 빼야 했다.


자발적인 마음이 부재한 봉사는 정말로 봉사로 이야기될 수 있을까? 누구나 타고난 성향이 있을 거다. 그런데 왜 유독 예술 재능이라는 것의 이미지는 부풀려지고 그로 인해 착취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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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노동’이 서로를 설명할 수 있을까?


노동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다. 예술가가 생각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정신노동이 들어가고, 실제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창조해내기에 육체노동은 말할 것도 없다.


마르크스는 '노동이 자기 자신의 노동이 아니라 타자의 노동이라는 것, 노동이 그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 노동하는 노동자가 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타자에게 속한다는 것'에서 소외가 비롯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남을 위한 노동에서 착취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노동이 곧 노동의 본질적인 의미라면,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난은 예술가의 숙명일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까? 더 깊은 곳으로 발을 들여놓을수록 무궁한 우주 속이리라 기대했던 곳은, 구명조끼 하나 없이 물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푼 마음속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물이 언젠가 나를 잠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넘실거린다.

 

이명박근혜 정부 당시 문재인, 박원순을 지지하거나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예술인에게 불이익을 목적으로 일명 ‘블랙리스트’라는 것을 작성했다. 탄핵 이후, 블랙리스트 주도 인물인 송수근은 계원 예술 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은 월수입이 100만원도 안 된다고 했다. 지원 사업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여러 프로그램들에서 예술가들의 인건비는 전혀 책정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예술은 사용되고 버려지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으며, 예술인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노동을 하면서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은 구조적 문제가 만연함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럼 예술을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면서도 왜 예술을 하냐고? 나도 모르겠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미리 적어두는 종이가 있다면 내 것 위에는 ‘예술’이 쓰여 있지 않을까. 누구나 온 마음을 써서 품고 싶은 것 하나쯤은 있지 않나. 내가 마음을 쏟는 일에 문제가 있다면, 지독하게 멀고 힘든 길이라도, 내가 마음을 쏟는 일이니까. 계속해서 풀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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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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