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방향을 잃은 상태에 익숙해지면, 잃지 않았음에도 잃은 것 같다.

글 입력 2020.07.3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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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이 생긴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 자문하지만, 답은 쉽게 따라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불안한 것 같다. 그런데 불안하지 않다.’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에 추측, 불안정을 뜻하는 형용사를 붙여 문장을 완성한다. 그리고는 그 감정을 부정한다. 두 문장이 내포하는 나의 진짜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삶의 방향을 주기적으로 잃는다. 단계별로 세워진 인생 설계에 심하게 거부감을 느끼는 한 개인으로서, 이 문장은 분명한 모순이다.

 

그렇지만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됐든, 사랑이 됐든, 자아가 됐든, 그 대상의 상실은 나를 잠시 멍하니 서 있게 한다. 그리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것의 흔적을 쫓아가 상념에 잠기던가 아니면 갑자기 도져버린 불안함에 아주 생뚱맞은 길로 들어가 버린다. 결국에는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그 자리에서 길게 머무른다.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에 따르면, 이 기간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간다. 느린 와중에 나는 더 느린 행동으로 시간과의 템포를 맞춘다. 주변의 조언, 충고, 모두 제시간을 맞춰줄 효력이 없기에 더욱 혼자가 된 느낌이다. 시시각각 느껴지는 외로움과 누군가 문제를 대신 해결해줬으면 하는 귀찮음,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쓸쓸함이 모여 나를 둘러싼다.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인생 백과사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중대한 결정은 말도 못할뿐더러 아주 사소한 것조차 작게나마 계속 변해갔다. 그때 그 지점에서 열정 있고 반짝였던 눈빛은 부끄러울 정도로 옛날 일이 되었다. 낯부끄러움과 마주하는 변화에 나는 질려갔다. 만약 인생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따랐을 것이다.

 

정답 없는 인생에 괴로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열렬히 정답을 찾는다. 미약하게나마 점선의 가이드라인을 그려놓고 현재 위치에 따라 멋대로 방향을 잃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인식에 사로잡혀 점점 익숙해지고,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의 조건 문장—인생에서 방향을 잃다—이 애초에 오류였다는 걸 깨닫게 되면, 일전에 느꼈던 모든 어둠의 감정들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강등시킬 수 있다. 상실 후의 슬픔은 당연히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상실의 대상을 일련의 사건에서 인생으로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감정을 위로하던 내가 감정에 중독되어버린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불안했다. 역설적이게도,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곤 한다. 항상 예상되는 결과보단 더한 것이 있었다. 실패에 치가 떨려 울음이 터지더라도 무언가 얻곤 한다. 그럼 이는 실패가 아닌 경험이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

 

텅 빈 공원에 조금 오래 앉아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공원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잠시 나갔다가 금방 또 돌아올 수도 있다. 그저, 여러 길을 걸어보고 있는 것뿐이다.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다. 얻었던 그 무엇도 잃지 않았다. 아무리 몸이 익숙한 불안감에 먼저 반응할지라도 이제는 미약하게나마 네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지 않는가.

 

그저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느끼자. 바람은 내 몸과 마음을 관통해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남은 나는 여전히 앉아 있을 것이고,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일어나 하고 싶은 행동을 하면 된다. 그러니 조금만 슬퍼하길.

 

 


컬쳐리스트 박수정 tag.jpg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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