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도서]

무엇이 그의 손아귀에 힘을..
글 입력 2024.05.0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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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사려고 들렀던 서점에서,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사 들고 나왔다. 제목을 보자마자 무조건 읽어봐야겠다- 고 생각했던 것이다. 표지에 뭉크의 <절규>를 넣은 민음사에 감탄하며.. 첫 장을 펼쳤다.

 

한때 유명 골키퍼였던 블로흐. 건축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어느 날 현장 감독의 눈빛을 보고 자신이 해고당했음을 깨닫는다. 해고당한 금요일을 기점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극장에 들락날락하며 정처 없이 떠돈다. 그러던 일요일, 극장 여자 매표원과 하룻밤을 보내고 함께 월요일을 맞이한다. 여자가 블로흐에게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 하고 묻자, 블로흐는 갑자기 그녀의 목을 졸랐다. 장난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세게. 블로흐는 참을 수 없는 공포와 불안감을 호소한다. 분명 목을 조른 건 블로흐인데…. 마치 그가 목이 조인 것처럼 말이다.

 

호텔 방안에서 발견된 신문 구석탱이의 필체를 추적하고, 도주 중 떨어뜨린 미국 동전을 주워가며 포위망은 점차 좁혀진다. 블로흐는 일상에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 그 정도는 가히 심각하다. 그는 자신이 하는 생각, 말 따위가 어떤 의미나 상징을 지녔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 같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어떤 말인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만, 나 같은 경우에는 비슷한 경험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릴 적 엄마가 머리를 감겨줄 때마다 과연 이 엄마가 '진짜' 엄마일지에 대해 하염없이 의심했다. 평소보다 좀 더 머리를 박박 문지르는 것 같은데? 샴푸를 덜 짜시는 것 같은데? 아닌가. 내가 이렇게 의심할 걸 미리 알고 한 번 더 꼬아서 위장한 건 아닐까?.... 이 터무니 없지만 복잡한 생각들은 크면서 자연스레 없어졌지만, 그땐 그랬다. 블로흐의 생각의 흐름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탓이 이 때문이었나.

 

그의 내면을 세심히 서술하거나 도주하는 과정에서의 감정을 자세히 풀어내지는 않는다. 그저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와 주변 풍경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앞서가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도 뒤돌아보지를 않고, 공중전화에서 지인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봐도 연결되지 않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상대의 화법이 거슬린다. 상대가 한 말과 내가 하는 말을 단어 단위로 쪼개어 생각하고, 왜 굳이 이 단어를 사용했을지에 대한 추측을 일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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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흐는 '문학은 언어가 가리키는 사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라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독일의 전범 행위에 대해 속죄하겠다는 47그룹에 대항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첫 소설 <말벌들>은 의도적으로 내용을 묵살하고, 언어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1970년대, 처음으로 ‘내용’을 복구한 소설을 써 내렸는데 그것이 바로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용보다는 형식에 집중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딱히 '사건'이라 할 만한 특별한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여자 매표원을 죽인 것이 사실상 처음이자 끝이다). 또한, 언어학자 소쉬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느껴질 정도로 작품 전반에 기호학 관련 내용이 진하게 묻어있다.

 

대상을 광고물처럼 바라보는 블로흐는 그들을 외형에 대한 욕설로 바꾸어 불러보며 개별적인 것이 주는 부담을 최소화해 본다. 마치 내가 현재 신고 있는 것은 와인색에 매쉬소재로 되어있는 벨크로 워크화이지만, 단지 ‘신발’이나 ‘이거’라고 할 수 있듯이 말이다. 사물의 기능에 집중하지 않고 가격으로 수치화하여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눈을 감고서 단어를 떠올리는 습관이나 술에 취하면 더 이상 예민해지지 않는 블로흐는 끊임없이 언어와 대상, 레퍼런스와 레퍼런트간의 관계성을 무너뜨린다. 사물을 묘사하기 위한 것 그 이상의 언어를 조명하며, 언어라는 닫힌 세계를 유영한다.

 

 
골키퍼는 공이 라인 위로 굴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커가 공을 차고 난 뒤에 행동하는 것은 늦었다. 모든 신호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 해야하는 골키퍼는 블로흐 그 자체이다. 눈빛에서 해고됨을 느꼈지만, 정작 대화로는 연결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개인마다의 언어 세계의 단절을 의미할지도, 정상적 소통의 불능에서 오는 고립과 불안을 나타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우리 모두가 블로흐라는 것이다. 잔뜩 긴장한 채로, 알 수 없는 무엇인 가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구해내고 방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 내가 막아야 할 공의 정체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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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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