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애학을 통한 그리스 비극의 재발견 [도서/문학]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가 새롭게 읽는 그리스 비극
글 입력 2024.04.1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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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는 어떻게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오이디푸스(Oedipus)는 ‘부은(oidos) 발(pus/pous)’을 가진 신체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노화로 지팡이를 짚는 노인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은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박정수 저, 출판사 그린비)는 그리스 신화와 장애학을 연결해 장애학의 개념들로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새롭게 ‘재발견’한 도서이다. 그동안 사회에서 인간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여겨져 왔던 신화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벗어나 장애학 담론을 통해 독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장애 비평’으로 부를 수 있다.

 

책 속에서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와 아이스킬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아가멤논」, 그리고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헤라클레스」, 「바쿠스 여신도들」 등 여러 그리스 비극들을 소환해 새롭게 다시 읽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박경석 대표와 한국의 1세대 장애 인권운동가 최옥란 열사의 사례를 각각 프로메테우스와 헤카베에 비유해 이해를 돕고, 노들야학과 탈시설 담론을 소개하며 한국 장애 운동의 역사를 언급하기도 한다.

 

 

 

새롭게 ‘신화’를 해석하기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가 그리스 비극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부친살해 후 어머니와 결혼한 것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나 떠돌아다녔던 오이디푸스를 장애인이자 난민으로 읽어내고, 아버지 제우스의 허벅지 속에서 자란 신과 인간의 자식인 디오니소스를 트랜스젠더퀴어 서사로 읽는다. 그러한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신도들이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였다는 것, 신체 장애인이었던 헤파이스토스와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다가 상처 때문에 섬에서 고립되었던 필록테테스의 이야기, 그리고 당시 아테네 민주정이 지급했던 장애인 연금 제도 같은 ‘기록’을 찾아 논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 책은 그리스 비극들 속 장애인을 ‘발견’하거나 그동안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을 장애 서사로 ‘읽음으로써’ 그리스 비극을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텍스트로 새롭게 재발견했다.

 

 

 

장애학으로 비극 읽기의 의의


 

그동안 장애를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대신 대안적으로 정의하기 위하여, 마이클 올리버 같은 학자들은 사회적 장애 모델을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이 사회적 장애 모델은 전근대 사회의 장애를 죄의 대가로 보는 개인적 비극 이론이나 생명 통치의 일환으로서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근대적 의료 담론을 비판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개인적 고통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며 정신(이성)과 몸(신체)의 위계에 기반한 근대적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장애인 개인이 고통과 맺는 복잡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장애인 정체성과 자긍심(pride)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사유하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에서는 ‘비극’, ‘운명애’(Amor Fati)라는 개념을 전유해 장애 관점의 비평적 독해의 자원으로 삼는다. 이때 비극/운명은 서구 기독교 철학의 ‘비극’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언급한 노동자의 ‘운명’과 비슷한 사회적 맥락까지 포괄한 의미로 사용된다. ‘운명’과 ‘비극’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의 비장애중심주의로 인한 결과이며, 그러한 운명에 맞서 저항하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의 모습에서 소수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장애학의 관점으로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하는 것이고, 이 ‘낯설게 하기’는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해체하고 소수자의 관점에서 전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목의 ‘되다’는 들뢰즈-가타리적 의미의 ‘되기’*인 셈이다.


* 주류 정신분석학 이론과 달리 들뢰즈-가타리와 퀴어 이론가들이 근대적 자본주의에서 가족의 재생산이 근친상간 금기와 동성애 금기로 작동하는 것을 밝히며 그 문제적인 재생산을 ‘오이디푸스 구조’로 명명했다. 오이디푸스라는 캐릭터가 그 구조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위반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지만, 이는 오이디푸스 비극을 ‘보편적’인 것으로 치환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든 주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영향이다.

 

 

 

장애학과 페미니즘, 퀴어 이론의 교차점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에서는 안티고네, 헤카베, 엘렉트라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클리타임네스트라, 그리고 ‘바쿠스 여신도들’(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성 신도들) 등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그리스 비극을 젠더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다. 안티고네를 가부장제와 성별 이분법을 교란하는 퀴어 주체로 읽었던 『젠더 트러블』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처럼 안티고네의 전복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또한 가부장제에 의해 강제된 모성애와 다른 모습인 이성애-남성-국가주의라는 주류 사회의 질서와 불화하는 디오니소스적 모성에 대해 다루며, 희곡에서 딸의 희생에 대한 복수심으로 남편 아가멤논을 죽인 ‘악녀’로 서술된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다루며 원본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그 행간을 읽어내며 국가주의적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여성-주체로 읽는다.

 

그리고 남편 메넬라오스 대신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간 헬레네의 이야기를 다룬 여러 판본을 논하며 (불륜설, 납치설, 허구설…. 등), 이를 ‘납치’나 사실 가짜 헬레네였다는 식(에우리피데스)으로 서술한 것은 오히려 헬레네의 욕망과 주체됨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교묘한 여성혐오라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문예 비평은 작가의 의도와 텍스트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에 대한 설명은 소수자의 ‘거대 문학’ 전유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책은 신화 속에서 남성 중심의 지배 체제를 교란하거나 저항했던 인물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적인 면모들을 포착함으로써 소수자성을 교차적으로 사유하도록 하는 통찰을 제시한다. 고대 그리스의 여성은 ‘손상된 남성’이라는 인식, 남성의 미달태이자 불완전한 인간 형상을 가진 여성이라는 관념은 서구 철학에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다.

 

‘추천의 글’에 여성학자 정희진이 언급했던 것처럼, 신화 속 여성을 젠더-장애인이라는 형상으로 읽는 것은 특정한 인간을 정상적인 존재로 특권화하고 그 ‘나머지’를 배제하는 서구 근대의 통치성에 대한 적극적인 전복이며 여성학과 장애학의 연대의 표현이기도 하다. 장애학이 어떻게 주류 사회가 특정한 신체를 장애화하는 것인지에 집중했다면 페미니즘은 이성애를 규범으로 강제하는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과 성소수자를 대상화하거나 비체화하는 것인지 다루어 왔다.

 

주류 사회에 의해 배제되고 병리화되는 존재에 대한 탐구이자 위계적인 사회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새 언어’를 지향하는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장애학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학문이자 담론일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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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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