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윤리를 저버린 과학과 의학: 숨겨진 역사 속 어둠을 밝혀내다 – 과학 잔혹사 [도서]

글 입력 2024.05.0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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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언제 어떻게 인간성을 망각하는가"

 

베스트셀러 과학 작가 샘 킨Sam Kean의 도서 [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는 지식을 향한 집착과 광기 어린 야망으로 인해 타락한, 과학과 의학의 어두운 이면을 재조명한다.

 

해당 도서는 대중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중대한 과학 범죄 사건들을 총 12개의 장에 거쳐 소개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명확하게 '윤리 의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12개의 장은 해적과 노예 무역, 시신 도굴과 살인, 간첩 활동, 의료 과실, 증거 조작 등 매우 흥미진진한 소재들을 다뤄낸다. 이에 세계사나 법의학, 그리고 심리학까지 폭넓게 교양적인 지식들을 총망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으로 유입할 수 있는 독자층이 매우 넓을 것이라 생각된다.

 

 

[프롤로그]

 

- 여기에는 심지어 그 당시에도 알아챌 수 있었던, 아주 극심하고 섬뜩한 행동의 원형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집착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보이는 행동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미치광이 과학자’라고 부른다. (9pg.)

 

- 미치광이 과학자는 논리나 이성이나 과학적 안목이 부족해서 미치광이가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과학을 ‘너무 철저히’ 하려고 하다가 도가 지나쳐 자신의 인간성을 도외시하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10pg.)

 

 

저자 샘 킨은 이처럼 프롤로그를 통해 ‘연구진의 비윤리성’이 비극을 초래하는 이유에 관한 보편적 오해를 바로잡으며 [과학 잔혹사]의 시작을 알린다. 바로 이 ‘지성을 향한 지나친 자만과 집착’이 뒤이어 소개할 범죄 사건들의 촉발 원인임을 분명히 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저자의 결론을 요약해 종합적인 리뷰를 남기기 전, 우선 필자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3건의 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본론을 이어가 고자 한다.

 

 

 

3장. 시신 도굴 – 해부학자들의 위험한 거래


  

 

- 해부용 시신 부족 때문에 영국 해부학자들(그리고 북아메리카의 해부학자들 역시)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무덤에서 시신을 훔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정부 관리들은 또한 의사와 외과의에게 연습을 할(솔직하게 말하면 실수를 저질러도 되는) 시신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96pg.)

 

- 영국 의학계는 시신 확보 문제에서 불안한 휴전 상태에 놓인 셈이었다. ... 그러다가 한 남자의 집착이 마침내 그 평형을 깨뜨렸다. 존 헌터John Hunter는 해부학계의 윌리엄 댐피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었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이 집과 헌터의 전반적인 생애를 모델로 삼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l and Mr. Hyde]를 썼다. (97-99pg.)

 

- ... 만약 해부학자가 시신 도굴꾼을 배신하거나 경쟁자에게서 시신을 산다면, 시신 도굴꾼 무리는 실험실로 난입해 시신들을 난도질해 해부용으로 쓸 수 없게 만드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은 전형적인 마피아의 수법과 같았다. (103pg.)

 

- 그 행위로 인한 이익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는 과학자들이 있는데, 헌터가 바로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마치 좋은 것으로 나쁜 것을 상쇄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윤리를 도덕적 회계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 헌터는 시신 도굴을 학생들의 무분별한 야습에서 시신 거래 산업으로 바꾸어 놓는 데 어느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했고, 그가 사들인 수많은 시신은 시장을 왜곡시켰다. ... 시신 가격이 오를수록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이 게임에 뛰어들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06-107pg.)

 

- ... 영국 관리들은 결국 해부용 시신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구빈원과 자선 병원에서 생긴 무연고 시신(즉, 찾아가겠다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시신)을 해부학자들에게 넘겨주는 법을 도입했다. (114-115pg.)

 

- 그러나 이 해결책은 깔끔해 보이긴 했지만, 무연고 시신 사용은 그 나름의 윤리적 문제가 있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이 계획에 불쾌감을 느꼈는데, 시신 공급을 대부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 이 법을 지지한 일부 사람들은 시신 공급의 불안정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수련 과정 개선은 어떤 집단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 다시 말해서, 무연고 시신의 해부는 두 가지 악 중에서 차악이고, 전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115-116pg.)

 

 

  

7장. 의사들의 연구 윤리 위반 – 매독 연구의 희생자들


   

 

- ... 이 처방들에 영감을 준 ‘순수성’에 대한 집착은 나치 의사들에게 악명을 안겨준 야만적 실험들에도 영감을 주었다. ... 나치는 이 순수성 개념을 개인의 신체에서 국가로까지 확대했고, 그러면서 사회에서 독과 같은 사람들, 특히 유대인을 제거하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었다. ... 그러한 ‘인간 물질’의 죽음은 사회에서 오염 물질을 제거할 것이고, 거기서 얻은 통찰력은 독일 국민의 건강과 안녕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13-214pg.)

 

- 믿기 어렵겠지만, 많은 나치 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해도 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히포크라테스 선서(오늘날 의과대학생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선서)를 했다. ... 그렇다면 나치 의사들은 자신이 이 선서를 어긴다고 생각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출 뿐, 환자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침묵한다. ... 다시 말해서, 나치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의미를 단순히 “환자에게 어떤 해도 가하지 않는다.”에서 “사회에 어떤 해도 가하지 않는다.”로 바꾸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214-215pg.)

 

- 그렇다면 오늘날의 의사들은 데이터의 비윤리적 성격을 이유로 그 발견을 무시해야 할까? (218pg.)

 

-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달리 뉘른베르크 강령은 환자의 권리를 강조한다. 환자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연구에 피험자로 참여하겠다는 사전 동의를 표시해야 하며, 의사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처를 취해야 하고,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위험에 대해 충분히 경고해야 한다. 게다가 이 강령은 의사가 실질적인 의학적 필요가 있을 때에만, 그리고 실험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할 때에만 사람 피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 하지만 이 강령은 연합국들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 단지 최악의 사례만큼 타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료들의 나쁜 행동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219-220pg.)

 

- ... 1950년대에 페니실린이 널리 사용된 이후에도 공중보건국 의사들은 터스키기의 환자들을 페니실린으로 치료하려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애초에 매독의 장기적 효과를 조사하려고 시작한 연구인데, 중간에 피험자가 낫는다면 연구에서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할 게 뻔했다. 그래서 그들은 매독균이 활개를 치도록 방치했다. ... 그들은 피험자의 고통을 고결한 희생으로 포장했다. ... 게다가 공중보건국 의사들은 순조로운 연구 진행을 위해 피험자들에게 거짓말을 반복했다. 때로는 고의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숨기기도 했다. (223-224pg.)

 

- 248-249pg.: 앞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윤리학자는 설계가 잘못된 의학 연구를 설계가 잘못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윤리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최선으로 설계된 임상 시험도 사람들의 윤리 의식에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 윤리가 쉽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12장. 증거 조작 – 약품 수사국 슈퍼우먼의 진실


   

 

- 모두가 애니 두컨Annie Dookhan에게 열광했다. 두컨은 보스턴 근처의 백신연구소에서 품질 관리 일을 했는데. 두컨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유일한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407pg.)

 

- 암시는 편향을 낳아 특정 결론으로 유도하고 다른 결론에서 멀어지게 한다. 하지만 두컨은 이 허점을 노골적으로 이용했는데, 경찰의 추측을 자신의 ‘분석’ 결과로 삼은 것이다. ... 두컨은 자신의 사기 행각을 숨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413-414pg.)

 

- 이것은 과학적 사기를 저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결함이다. 이들은 지식 대신에 상이나 명성을 원한다. 즉, 과학 자체보다는 과학의 과시적 요소를 추구한다. (416-417pg.)

 

- 우리 문화는 과학자를 우러러본다. 우리는 정직성과 진실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우리는 그들을 믿으려고 하고, 과학자들 역시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동료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간다. ... 사기와 그 밖의 비행은 대중의 신뢰를 잠식하고 과학의 최대 자산인 명성을 훼손한다. 불행하게도 사회가 점점 더 기술과 과학에 의존함에 따라 이 문제들은 더 악화될 것이다. (428-429pg.)

 

 

 

과학의 진실된 위대함은, 지성 너머의 양심을 지켜내는 것


  

 

[결론]

 

- 윤리를 염두에 두는 또 한 가지 방법은 과학사를 읽는 것이다. ... 이야기의 힘은 그만큼 강한데,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굳게 자리를 잡는다. ... 카를 융이 말했듯이, 악인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그 악인을 길들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434-435pg.)

 

- 아인슈타인은 “많은 사람은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라고 말했다. (436pg.)

 

- 그리고 과학이 얼마나 긴밀한 사회적 과정인지를 감안하면, 인권을 유린하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함으로써 사회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는 거의 항상 결국에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심지어 과학을 기능케 하는 조건들을 취약하게 함으로써. ... 아인슈타인이 말한 인성이야말로 과학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보장책인데, 과학의 이 두 가지 필수적 측면(지성과 인성)이 미래에도 공존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437-438pg.)

 

 

책의 결론에서 저자는 새로운 과학적 돌파구가 거의 항상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를 수반하기 때문에, 현재에도 실험 설계 시 언제나 '윤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 윤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윤리적 행동을 편하게 느껴야 한다는 점을 함께 언급하면서 말이다.

 

이에 내가 결론의 시작부를 토대로 도서 전반을 아우르며 가장 떠올렸던 생각은 바로 '선과 악, 독과 약은 모두 한 끗 차이다.'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앞서 3장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해부학은 무분별한 시신 도굴과 시체 및 장기 밀거래 등 불법적이고 도의에 어긋나는 여러 사건들과 연루된 바 있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이자 검의 양날처럼 이어지는 4장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언급된다. 1849년 하버드의학대학원에서의 살인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해부학자들의 전문적인 시각이 사건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해부학계에서 통용되던 계급 동맹을 무너뜨려 억울한 누명을 쓴 가난한 수위의 무죄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에도 위 사건은 법의해부학의 뿌리로써 그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발생했던 대결이라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현대인들의 편의를 보장하는 수많은 과학 장치와 의료 기술은, 모두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기나긴 실험을 거쳐 왔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과학과 의학의 거룩한 발전을 이루어 내어 공공의 선을 추구하겠다던 당대 연구진들의 목표는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입증된 효과만을 토대로 숱한 혜택을 누리는 사실을 너무도 당연하게만 여기고 있진 않을까? 무엇보다,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이 '결과'만을 누리는 데 심취해서는 그 이면에 감춰진 '과정'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의학적 연구가 제아무리 일부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될지라도, 그 목적은 결코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있지 않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의학의 근본적인 목적은 질병의 치료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한들 그를 방패막이 삼아 피실험자에게 의도적으로 끔찍한 고통을 안긴 악행까지 정당화할 순 없다는 점도 잊지 않고 강조했다.

 

“현대인들은 오늘날의 윤리적 기준으로 과거의 사람들을 판단하며 우월감을 느끼기 쉽다.” 그러니 더더욱 저자는 [과학 잔혹사]를 통해 과학과 의학 실험의 비인간성이나 잠재적 위험성으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우리 역시도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늘 경각심을 지니고 과거의 악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꾸준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밝음 이면의 어둠을 걷어내는,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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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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