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픔과 못남도 모두 우리의 것 [만화]

글 입력 2024.05.1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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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마주하는 것이 더욱 두렵다


 

지금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입(口)의 시대다. 누구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그만큼 엄청난 창작물이 시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에 걸맞도록 영화와 드라마 등 가상의 이야기 또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막대한 흥행과 인기를 구가한다. 반면 우리 주변 현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국인 A씨가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잔잔한 일상 이야기는 천만 영화가 될 수 없다. 영화와 드라마 속 가상의 서사는 즐겨보면서도 일기 쓰기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있다. 가상의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훤히 꿰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일상은 대개 지루하고 평범하며, 가끔씩 일어나는 이벤트마저 대개 추레하고 부끄러운 모습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탓이다. 그러한 일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오랜 상처가 있고, 그러한 상처는 우리의 결핍과 날 것의 욕망을 담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건대, 가상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적인 결핍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외사랑에 보답받지 못해 눈물 흘리고 괴물에게 가족을 잃어 슬퍼하는 인물은 있을지언정 복잡한 상처와 약점을 지닌 못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들의 삶은 오히려 우리의 날 것의 상처를 떠올리게 해 거부감을 일깨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진짜는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우리를 실제로 두렵게 만드는 것 또한 엄청난 괴물의 등장이나 악당의 레이저 빔이 아니다. 원치 않게 우리의 삶에 드리우는 먹구름, 꿈꾸던 미래를 이루지 못하고 체념한 채 살아가는 모습, 못난 자신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어찌 손쓸 바 없다는 무력감 또는 패배감이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삶의 은근한 불안감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일상의 적나라한 면을 직면할 수 있는 작품이 진정한 우리 시대의 작품일 것이다. 우리 주위의 이해할 수 없는 지인들, 그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 그리고 정도에서 멀어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작품이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신이 기대하는 도쿄를 이야기하지 않는 <아오링 도쿄>


 

도쿄에 사는 한 여성이 있다. 한국인인 그녀는 그곳에서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고 현재 귀여운 아이 하나를 기르고 있다. 그녀는 어떠한 이유로 일본에 왔다. 무언가 원대한 것을 목표하며 온 것은 아니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얻은 상처를 품고서 그녀는 떠나왔다. 오래도록 작가가 되기를 꿈꾸던 그녀는 도쿄 어딘가에서 필사를 하고 글을 썼다. 그리고 어쩌다 웹툰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에서 아마추어 작가로 인기를 끌다가 마침내 카카오웹툰에서 정식 연재를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자신이 마주한 도쿄의 모습을 아무런 꾸밈 없이 직선의 시선으로 애정을 담아 그려내는 아오링 작가의 <아오링 도쿄>를 소개한다.

 

웹툰의 제목은 <아오링 ‘도쿄’>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도쿄가 아니다. 그러니 일본 영화나 만화 속에서 그려지는, 어딘가 나사가 빠져 기이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애틋한 도쿄의 풍경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길을 잘못 찾아온 것일 테다. 아오링 작가의 만화는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의 도쿄를 예상하는 사람들의 허를 찌른다. 이 만화는 아주 ‘일본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마냥 아름다운 풍경만을 담지 않는다. 도쿄라는 거대한 주제를 만화 몇 편으로 섣부르게 단정 짓지도 않는다.

 

다만 작가는 자신이 마주하였고 아주 개인적일 수 있는 도쿄의 것들을 담아낸다. 작가가 남편과 차린 한국식당에 방문한 손님들과 동료 직원들의 일화를 비롯한 일상의 경험들과 훌쩍 다녀온 짧은 여행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상을 통해 도쿄 어딘가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려낸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는 사소하고 아기자기한 모습도 있지만, 가끔은 밉고 불편한 모습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마저 다 함께 어우러져 결국 작가가 묘사하는 도쿄의 일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무를 따라 걷다 보면 저절로 숲의 공기를 느끼게 되듯, 독자들은 작가가 마주한 도쿄의 사람들, 일상의 풍경을 따라 걸으며 아오링 작가가 마주하는 도쿄를 간접 경험하게 된다. 겸손하지만 정직한 작가정신으로 빛나는, 아오링 작가만의 도쿄 이야기에 함께 빠져들어 가 보자.

 

 

 

마지막 손님, 아키코


 

최근 <아오링 도쿄>는 100회차를 맞이하며 시즌3을 마무리했다. 100회차라는 숫자에 걸맞게 작가를 비롯한 여러 인물이 만화에서 등장하였다. 그 가운데 본 작품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하는 회차가 몇 있다.

 

그중 하나가 37, 38화에 걸쳐 진행되는 <마지막 손님>이다. 그 ‘마지막 손님’이란, 작가의 식당에 하루의 마지막 손님으로 방문하는 아키코였다. 아키코는 늘 음식을 실컷 주문하고 작가를 비롯한 직원들과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하며 온갖 실없는 소리를 하곤 했다. 전생에는 본인이 공주였으나 죄를 지어 이번 생에는 서민으로 환생했다며 자신만의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신기(神氣)를 어필하며 내일의 운세 등에 대한 여러 조언도 해주곤 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맞는 법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탓에 손님들과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그 골목의 다른 손님들과도 멀어져 혼자가 되었고, 아키코의 뒤를 따르는 소문만 무성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을 알기나 하는지, 아키코는 아무렇지 않게 가게를 드나들고 작가에게서 가끔 돈을 빌렸다.

 

파칭코로 가끔 돈을 벌면 흥청망청 술값으로 날리고, 둘 있는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말 내뱉을 줄 모르는 데다 건실한 생활은 일절 생각지도 않는 아키코는 작가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키코를 보며 한심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가끔은 잠든 아키코의 얼굴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연민을 느꼈고,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했으며 술에 취한 아키코에게 담요를 둘러주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독백한다. ‘하지만 어쩐지...그녀가 살고 있는 이 피로한 삶만큼은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고.

 

작가는 아키코가 이러한 매일에 들어서게 되었을 과거의 이야기를 잠시 생각해본다. 아키코와 작가를 비롯한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멋진 미래를 꿈꾸었다. 모두가 동경하고 엄지를 척 내밀 만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꿈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다. 그야말로 ‘어쩌다’ 잘못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일부가 되어있는 현재가 있다. 그야말로 ‘(무언가) 싫다고 하면 할수록,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하면 할수록 그렇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작가는 아키코가 살아가는 엉망진창의 삶도, 이와 같은 인생의 얄미운 장난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는 아키코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아키코에 대한 여러 못난 단상 가운데 비스무리한 것을 자신의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경하는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 만큼 자신을 미워하지만, 정말로 미워할 수는 없는 모순된 감정을 작가는 느꼈다. 그렇기에 모두가 한심스럽게 여기며 이해받지 못하는 아키코를 가까이 끌어당겨 얼마간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가게에서 한 차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늦은 밤에도 또 다른 가게로 들어가 술과 함께 온갖 성공담과 헛소리를 내뱉을 아키코, 도쿄 변두리의 스낵바 골목을 전전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정 마음 붙이고 기댈 존재 없을 아키코의 삶에서 작가는 실패와 좌절로 얼룩진 이면 속의 인간적인 슬픔을 보았다.

 

 

 

날 것의 이야기가 두려운 이유


 

아키코를 비롯한 작품 속 모든 인물은 실제로 작가가 만난 인물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모두 어떤 결핍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은근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 또는 독자로 하여금 불쾌와 짜증을 야기하기도 한다. 일상 속의 경험을 주제로 한 만화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에 멋지고 근사해보이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그들의 삶을 납득시키려 구태여 설명하거나 섣불리 추측하지도 않는다. 다만 작가 자신이 상대와 마주하며 느낀 인상을 그대로 전한다. 독자들은 가상의 이차원 화면 속에 재현된, 그 사람의 외모와 특징을 닮은 캐릭터와 약간의 대화, 그리고 작가의 생각을 담은 독백만으로 상대를 마주하게 된다. 마치 누군가와 만나 대화하며 서서히 상대에 대해 알게 되듯, 스크롤을 내리고 만화가 진행됨에 따라 담백한 그림과 글로써 상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독자들은 그러한 캐릭터 속에서 자신이 아는 누군가의 조각을 발견한다. 그것은 자신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간 무심결에 혹은 기를 쓰고 잊으려 노력했던 상대를 마침내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마치 작가가 아키코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듯이, 옛날의 그때엔 마냥 싫고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존재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그리고 겉으로만 보이던 상대의 모습, 단편적인 느낌으로만 처리되었던 인상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정의내려본다. 그 사람의 역사를 상상하고, 그가 겪었을 상처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현재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삶, 그의 행동에 묻어나온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것이 아오링 작가의 힘이다. 작가는 마냥 못나고 싫던 사람을 이해해보려는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상대와 자기 사이의 인간적인 공통점을 볼 수 있게끔 하여 일종의 애정을 쌓을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이것은 아오링 작가가 삶과 사람에 대해 지닌 애정 덕분일 것이다. 아무리 못난 것 사이에서도 진주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편견 없고 너그러운 작가의 애정 덕분이었다. 그러한 애정으로 하여금 작가는 이해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해서도 인내심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통찰이 못난 삶을 새롭게 비추었다.

 

그리고 작가는 그러한 애정을 담아 마침내 독자가 자신의 삶까지도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가 그렇게 했듯이 독자도 자신의 삶 속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담긴 역사를 이해해보려는 너그러움의 자세를 본받게 된다. 너무도 날 것의 일상, 기억 저편으로 묻어놓고 멀리했던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올린다. 그리고 작가의 너그러움을 빌려, 각자의 삶에 담긴 의미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작은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너그러움은 점점 넓게 퍼져, 우리 주위의 타인을 넘어서 세상에 대한 너그러움도 펼칠 수 있게 하였다. 우리 독자들을 각자의 일상으로, 타인의 삶으로, 마침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되돌리고 끌어들이는 힘, 그것이 아오링 작가가 지닌 다정함의 가치다. 이것이 작품 속에 은은하게 녹아들어 거부감 없이 작가의 너그러운 시선을 잠시 빌리게 한다.

 

 

 

못난 삶을 직면하는 힘


 

글의 시작에서 우리에게 현실적인 두려움을 야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일상의 못나고 부끄러운 면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아오링 작가의 작품은 우리 시대의 수많은 웹툰 가운데 반짝반짝 빛난다. 일상의 적나라한 못남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은 엄청난 용기와 대담한 정신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러한 삶에 대고 불쾌감을 표현하거나 묘한 우월감으로 깔봄으로써 해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오링 작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러한 사람에게서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고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꼈다.

 

한편으로 <아오링 도쿄>가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독자들이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정말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우리 그대로의 이야기를 그리워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냥 향기롭지만은 않을 것 같은 냄새에 일종의 향수를 느끼는 우리에게 아오링의 만화는 정공법을 내어놓는다. 서로 재거나 이것저것 비교할 필요도 없다고. 다만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끼고 함께하는 자세만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다만 우리는 자신과 상대의 미운 모습까지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직면할 기회가 결핍되었을 뿐이다. 그것을 아오링 작가가 해냈다. 그녀가 지닌 애정과 다정함으로. 상대를 직선으로 바라보고서야 발견한, 못났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담담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함으로써. 그렇기에 아오링 작가의 만화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것일 테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짜는 언제나 우리의 못난 모습에서부터 기인함을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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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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