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안이라는 필연적 저주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5.0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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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라는 감정과 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자동차는 이제 스스로 운전하고,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왔음에도 불안을 느낀다. 내년, 내후년에는 더 좋은 자동차와 휴대폰이 나오겠지만 이 불안은 점점 커질지 작아질지 알 수 없다. 이 좋은 세상에서 나는 왜 불안을 느끼는지 불안(알랭 드 보통)을 읽으면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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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이상의 나라에 태어났음에도 국민들은 불안하다. 전쟁 국가에 비하면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민들은 사회의 핵심 구성원이 되기를 바란다. 대중매체에서는 그런 핵심 구성원을 지위와 부로 정의한다. 한강 뷰 호화로운 집에 사는 연예인들의 삶이 TV에 나오고, 수능 만점 받은 학생들은 기사에 실린다.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학생들은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며, 이후에는 대기업 입사가 최고의 목표가 된다. 그 이후에는 누가 연봉이 높은지 비교하며, 성과를 내기 위해 매일매일 고군분투한다. 그것이 평범한 삶의 기준이 된다. 점수, 명문대학, 대기업, 월급, 성과. 이런 사회적 지위와 부로 핵심적인 사회구성원이 되는 것.


그리고 타인의 존경을 받는 것. 즉 저자는 이것들의 최종 목적이 ‘사랑’을 위해서라고 한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다. 그들에게 보여지는 ‘나’에 따라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불안의 이유를 아는 것이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중 하나는 내가 컨트롤하기 어려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위험함을 인지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정한 기준과 평가에 따라 휘둘렸던 적을 떠올려 본다. 국어, 영어, 수학 성적표가 곧 나의 가치가 되었던 경험, 불합격이라는 단어가 곧 나의 가치처럼 느껴졌던 경험들. 그런 경험이 결국 불안을 낳는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인가? 그 기준을 나 바깥에 두는 순간 불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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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귀족 사회보다 평등해졌고, 삶의 질이 높아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피폐해졌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졌던 사회에서는 태어난 대로 살아야 했다. 농부의 삶을 사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았다.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고 여겨졌다. 사회에서 생산적인 역할을 하는 계층이 없으면 귀족들도 삶을 영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인간은 하늘 아래에서 평등하다는 사상 아래에 노력만 하면 사회적 지위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이 가진 능력이 곧 사회적 지위가 된다. 이는 사회적 지위가 낮다면 능력 없는 사람이라는 말과도 같다. 그리고 이들은 노력하지 않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렇게 단순 노동직은 멸시받는다.


하지만 사람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은 사실 불확실한 요인들이 개입되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개인의 재능은 발휘될 때도 있고 발휘되지 않을 때도 있으며, 고용 문제는 내가 아닌 고용주의 상황에도 달려있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고 갑자기 일자리를 기계에 빼앗긴 사람들처럼 사회의 흐름에도 달려 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성취’라는 가치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서점에 가면 널려 있는 수많은 성취와 관련된 책에게 강요당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만약 원시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근대사회 노동자계급으로 태어났더라면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을지, 사회적 상황과 별개로 정말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성취하기 위해 무한 경쟁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목표 달성을 위해 초조함을 감수해야 한다. 나에게 성취란 그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감수할 만큼의 중요한 가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마 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사이에서의 불일치가 불안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불일치로 인한 불안 속에서 저자는 세속적인 것 대신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들을 제시한다. 지위와 선, 부와 선은 무관한 것임을 증명하는 철학, 기독교 사상, 보헤미아, 예술에 관해 설명한다. 이들에게 이상은 용기, 관대함, 친절을 가진 사람들이 명예를 얻는 것이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며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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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쓸데없다. 과학과 기술이 아니라면 세상을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만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과학과 기술이 없던 시대에도 잘 살아왔다. 저자는 정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삶과 세상을 향유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가치들과 감정들을 떠올린다. 우스꽝스러운 지배 계급의 습관을 풍자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비극 속에서는 실패와 겸손이라는 미덕을 배운다. 그리고 어느새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 당하고 해고당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소시민들의 삶에 공감한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사랑하고 아껴줄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예컨대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졸업을 앞두고 자퇴해서 패션학과로 다시 시작하던 사람의 이야기, 여러 개의 알바를 하며 묵묵히 연극배우라는 꿈을 키워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 학교나 회사에 다니는 대신 글을 쓰며 작가가 되고 싶어 하던 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들과 예술을 동경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일까. 또는 나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기 때문일까.


현대사회 속에서 필연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다면 저자가 말하는 불안의 원인과 대안들을 떠올려 보기를 권한다. 불안은 온전히 개인의 탓이 아니다. 물질주의 바깥에는 다른 길들이 많다.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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