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들키고 싶은 비밀 [전시]

양화진홀
글 입력 2024.05.0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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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에서였다. 들키고 싶은 비밀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굳이 답을 해야 할까. 비밀이라면 철저히 비밀로 지키고 들키고 싶다면 애초에 드러내는 것을 선호하는지라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질문이 계속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차례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중해서 숨기고 싶은 그래서 더 알리고 싶은 비밀. 나의 들키고 싶은 비밀은 양화진홀이다.

 


양화진홀 입구.jpg

 

 

양화진홀은 65평짜리 작은 전시관이다. 아무리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곳이 생소할 수 있다. 합정역 근처 묘원 옆 전시관으로 간판도 없고 공사장 철문 같은 입구라 모르고 왔다면 지나치기 쉽다. 겉보기에 내세울 것이 없지만 2008년 3월에 개관한 이래로 약 102만 명이 방문한 이곳은 우리나라 양화진(버들꽃나루)의 역사를 담고 있다.

 

양화진은 조선왕조에서 국방과 교통의 요충지였다. 양화진을 통해 전국 각지의 생산물이 도성과 궁궐로 배분되었고 좋은 입지 조건으로 인해 외적들이 양화진을 넘보기도 했다. 대원군이 프랑스인 신부들을 탄압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군함이 양화진까지 침범하여 같은 해 10월 강화도에서 패퇴하는 사건(병인양요)도 있었다. 대원군의 섭정 이후 민비와 외척들은 서구 열강들과 국교를 수립하였고 영어권 개신교 선교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구의 의료, 교육, 자선 사업을 통해 조선사회를 도왔고 이들이 믿는 복음을 전파했다.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 스크랜튼, 웰본, 홀 등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그 흔적이 여실히 담겨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양화진을 알리는 홀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면 관람 시 더욱 의미가 있다. 양화진 홍보관 전시팀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2007년 초 양화진홀을 만들 당시 양화진이나 선교사들에 대한 글로 된 학술 자료는 있어도 유품과 사진 등 전시할 내용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다른 박물관에 전시품 나눔을 요청해 봤으나 공급 받기가 어려워 난항을 겪다가 악(惡) 조건을 호(好) 조건으로 역이용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전시품 대신 여러 인터랙션 영상 기법을 활용했다.

 

또한 유사한 규모의 전시실을 답사하며 공간 구성에 대해 고민하고 협조를 요청할 무렵 ‘우연히’ 만난 사람이 징검다리가 되어 국립중앙박물관의 공간 디자이너가 양화진홀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공간 디자이너는 건강상의 이유로 병가를 내어 쉬던 중이었고 사직 후 프리랜서로 전향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중요한 시기에 전시팀장을 ‘우연히’ 만나 프리랜서 첫 작품으로 양화진홀을 만들게 된 것이다. 보통 전시관은 사각형이어서 공간을 적절히 나눌 수 있는데 양화진홀은 부채꼴이어서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지점이 부채꼴의 중심점이 되도록 하여서 어느 구역이든 중앙지점과 연결 되도록 구성했다.

 

이로부터 몇 년 후에는 선교사 자녀들로부터 직접 유품을 받아 전시품을 늘릴 수 있었고 영문 번역이 필요하던 때에 ‘때마침’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교육과 가정 관련 선교를 하는 사람들로 그들의 도움을 통해 영문 해설을 만들 수 있었다. 텍스트 자료만으로 어떻게 전시관을 만들까 했던 양화진홀이 이렇듯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른 뼈에 생기를 얻었다. 마치 누가 계획한 듯 거듭된 우연을 보며 그저 타이밍이 맞았겠지 싶다가도 모든 것이 우연 이상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1883년 우리나라 견미사절단이 미국에서 탄 기차에서 ‘우연히’ 감리교 목사 가우처를 만나 가우처가 조선에 대해 알고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노력한 덕에 아펜젤러가 우리나라에 올 수 있었고, 1884년 갑신정변으로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부상을 입었을 때 ‘때마침’ 미영사관 외과의로 조선에 왔던 알렌이 치료해주어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병원인 광혜원이 만들어지고, 원래 인도로 가기 위해 준비하던 언더우드가 ‘우연히’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선행을 결심한 후 우리나라에서 한영사전과 영한사전을 발간하는 등 조선사회의 발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우연과 때마침들이 있었다. 때로는 우연한 만남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돌문 같은 회색빛 입구를 지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여 위 때마침 스토리들을 보고 나면 짧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양화진홀의 구성과 내용은 보는 이에게 힘을 주지만 내부 영상의 힘은 더욱 큰 것 같다. 영상의 OST인 ‘오! 대한민국’은 영상의 메세지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한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애국심과 눈물이 차오르고 마지막 가사 “네 빛을 발하라”에 따라 일어설 때면 비장한 발걸음으로 전시관 밖을 나서게 된다. 신묘막측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면, 울거나 웃고 싶다면 양화진홀에 가볼 것을 권하고 싶다. 나를 일으키고 나를 깨우는 비밀 묘약과 같은 이곳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내가 양화진홀을 찾지 못하게 될지라도 누군가가 이따금씩 기억해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선교사들의 헌신과 들키고 싶은 나의 비밀을.

 

한적한 평일 오전에 때마침 합정역에 내린다면,

누군가 양화진홀을 기억하여 방문한다면,

먼 곳에서도 나는 행복할 것 같다.

 

 

기억의 터.jpg

 

 

*부끄럽지만 글쓴이 본인은 양화진홀에서 안내하는 역할을 해왔기에 내부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본 글은 양화진의 역사적 배경과 양화진역사강좌를 참고했습니다.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양화진홀을 방문할 수 없게 되어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종교나 전시 취향을 떠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 번쯤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윤 컬쳐리스트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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