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NS를 보다가 우연히 한 영상을 보았다. 그룹 다비치의 강민경과 이해리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영상 속 강민경은 자신이 로맨스를 잘 보지 않는다며, ‘어차피 거짓말 사랑, 차라리 그것이 알고싶다를 본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꽤나 공감이 되었다. 나도 로맨스는 잘 보지 않는 ‘그알’ 애청자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로맨스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 사랑이기 때문은 아니다. 아니,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다른 거짓말까지 모두 싫어하진 않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 등 허구의 창작물을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가상으로 창조된 세계 속 인물들과 상황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 어떤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또 싫어할 수 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계를 살아볼 수도 있다. 그 안에서는 고통과 슬픔조차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유독 로맨스 장르를 싫어하는 것은(정확히 난 로맨스를 싫어하는 게 아닌 선호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이다만), 몰입이 잘되지 않아서다. 글쎄, 단순히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여서는 아닌듯하다. 다른 비현실적인 공상들도 난 사랑하기에. 결국 로맨스에 몰입이 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사랑은 직접 해야 가장 재밌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연애와 남의 로맨스, 사실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웹툰에서는 로맨스 장르를 아주 좋아한다. 내가 적으면서도 사실 이해가 되진 않는데, 무튼 그렇다. 나도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종종 고민해 보고는 하는데 아직까지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나마 떠올려본 이유는 이렇다. 우선 어릴 때부터 순정 만화를 만화방에서 빌려보곤 했기에 그때의 익숙함이 웹툰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것은 드라마나 영화와 다르게 실제 ‘사람’이 연기하지 않기에 내가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연애사를 들어주는 기분이 덜하다.
사실 이 이유들도 100%는 아닌 게 로맨스 애니는 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비선호하는 것은 로맨스 드라마. 내가 로맨스는 물론 드라마라는 형태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긴 호흡과 콕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무언가 드라마의 문법이 나와는 맞지 않는 느낌이다. 로맨스 영화는 쏘쏘인데, 소위 말하는 ‘현실적인’ 로맨스나 마냥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는 선호하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는 <우리도 사랑일까>와 <블루 발렌타인>, 그리고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의 한 장면
로맨스 이야기는 이쯤 접어두고, <그것이 알고싶다>로 넘어가보자. 난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을 아주 좋아한다. 본방송을 매주 챙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잡무나 외출 준비를 할 때마다 OTT에서 그알을 찾아 틀어 놓곤 한다. 나는 왜 그알을 좋아할까?
어릴 때부터 이런 류의 범죄 사건들에 관심이 많았다. 도서관에서 범죄학 관련 책을 빌려보기도 자주였다. 법의학이나 시체에 꼬이는 벌레들부터 어느 외국의 프로파일러가 쓴 프로파일링 서적에는 실제 현장 사진도 있어 놀라기도 했다. 꿈이 이쪽 분야였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겁이 많다. 그냥 그런 내용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알을 보는 것도 비슷했다. 미스터리한 사건들에 전문가들이 과학적인 수사기법과 갖가지 노력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때로는 마음 한 켠에 묘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 안의 모든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피해자가 명확한, 그것도 감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가 엄연히 있었던 일들이다.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면 마치 단순한 재밋거리처럼 프로그램을 보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물론 사건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저 깊은 곳에서 욕지기가 솟고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 결국 모든 진행 과정을 흥미롭게 소비하던 것 또한 나다. 그래도 되는 것이었을까?
‘그알’이라는 프로그램 자체도 결국 방송사의 시청률을 위한 부분이 존재함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아 잊히면 안되지만 잊히던 사건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새로운 증언이나 증거를 발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애초에 많은 관심을 위한 프로이니 내가 흥미로운 마음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아도 되는 것일까?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왜인지 그저 재밋거리로 사건들을 대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피해자들 앞에서 직접 흥미를 드러낸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을 보고 드는 기분이 뭐가 문제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맞는 말이고, 내가 직접 줄 수 있는 도움이 없음에도, 가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여전히 가볍게 핸드폰 속에서 그들을 만나고 있음에도.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재미없는 로맨스와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재미있는 그것이 알고싶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하고 싶은 것일까,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