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짓말 사랑과 살인사건: 로맨스와 그알 [사람]

글 입력 2024.05.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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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NS를 보다가 우연히 한 영상을 보았다. 그룹 다비치의 강민경과 이해리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영상 속 강민경은 자신이 로맨스를 잘 보지 않는다며, ‘어차피 거짓말 사랑, 차라리 그것이 알고싶다를 본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꽤나 공감이 되었다. 나도 로맨스는 잘 보지 않는 ‘그알’ 애청자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로맨스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 사랑이기 때문은 아니다. 아니,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다른 거짓말까지 모두 싫어하진 않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 등 허구의 창작물을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가상으로 창조된 세계 속 인물들과 상황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 어떤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또 싫어할 수 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계를 살아볼 수도 있다. 그 안에서는 고통과 슬픔조차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유독 로맨스 장르를 싫어하는 것은(정확히 난 로맨스를 싫어하는 게 아닌 선호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이다만), 몰입이 잘되지 않아서다. 글쎄, 단순히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여서는 아닌듯하다. 다른 비현실적인 공상들도 난 사랑하기에. 결국 로맨스에 몰입이 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사랑은 직접 해야 가장 재밌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연애와 남의 로맨스, 사실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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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적이게도 나는 웹툰에서는 로맨스 장르를 아주 좋아한다. 내가 적으면서도 사실 이해가 되진 않는데, 무튼 그렇다. 나도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종종 고민해 보고는 하는데 아직까지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나마 떠올려본 이유는 이렇다. 우선 어릴 때부터 순정 만화를 만화방에서 빌려보곤 했기에 그때의 익숙함이 웹툰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것은 드라마나 영화와 다르게 실제 ‘사람’이 연기하지 않기에 내가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연애사를 들어주는 기분이 덜하다.


사실 이 이유들도 100%는 아닌 게 로맨스 애니는 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비선호하는 것은 로맨스 드라마. 내가 로맨스는 물론 드라마라는 형태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긴 호흡과 콕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무언가 드라마의 문법이 나와는 맞지 않는 느낌이다. 로맨스 영화는 쏘쏘인데, 소위 말하는 ‘현실적인’ 로맨스나 마냥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는 선호하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는 <우리도 사랑일까>와 <블루 발렌타인>, 그리고 <카사블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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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의 한 장면

 

 

로맨스 이야기는 이쯤 접어두고, <그것이 알고싶다>로 넘어가보자. 난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을 아주 좋아한다. 본방송을 매주 챙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잡무나 외출 준비를 할 때마다 OTT에서 그알을 찾아 틀어 놓곤 한다. 나는 왜 그알을 좋아할까?


어릴 때부터 이런 류의 범죄 사건들에 관심이 많았다. 도서관에서 범죄학 관련 책을 빌려보기도 자주였다. 법의학이나 시체에 꼬이는 벌레들부터 어느 외국의 프로파일러가 쓴 프로파일링 서적에는 실제 현장 사진도 있어 놀라기도 했다. 꿈이 이쪽 분야였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겁이 많다. 그냥 그런 내용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알을 보는 것도 비슷했다. 미스터리한 사건들에 전문가들이 과학적인 수사기법과 갖가지 노력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때로는 마음 한 켠에 묘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 안의 모든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피해자가 명확한, 그것도 감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가 엄연히 있었던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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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면 마치 단순한 재밋거리처럼 프로그램을 보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물론 사건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저 깊은 곳에서 욕지기가 솟고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 결국 모든 진행 과정을 흥미롭게 소비하던 것 또한 나다. 그래도 되는 것이었을까?


‘그알’이라는 프로그램 자체도 결국 방송사의 시청률을 위한 부분이 존재함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아 잊히면 안되지만 잊히던 사건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새로운 증언이나 증거를 발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애초에 많은 관심을 위한 프로이니 내가 흥미로운 마음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아도 되는 것일까?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왜인지 그저 재밋거리로 사건들을 대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피해자들 앞에서 직접 흥미를 드러낸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을 보고 드는 기분이 뭐가 문제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맞는 말이고, 내가 직접 줄 수 있는 도움이 없음에도, 가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여전히 가볍게 핸드폰 속에서 그들을 만나고 있음에도.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재미없는 로맨스와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재미있는 그것이 알고싶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하고 싶은 것일까,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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