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것마저 EASY하게 만들거니까 [음악]

르세라핌 신보에 관한 개인적인 고찰
글 입력 2024.02.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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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선에 흔들림 없이 나아가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욕망, 시련 앞에서 더욱 단단해지겠다는 자신감, 타인의 용서 따위는 필요 없다는 당찬 포부.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독기 가득한 마음 그 이면에는 불안과 고민의 흔적이 있었다.

 

'독기'의 인간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르세라핌이 돌아왔다. 언뜻 보기엔 무게를 내려놓은 가벼운 선택으로 보이겠지만, 어쩌면 깊은 내면의 고민을 고백하는 이번이 가장 무거운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들이 진행해 온 ‘욕망-자신감-포부-불안과 고민’의 순서는 클리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외유내강의 캐릭터를 극대화하여 다루는 내용은 하루가 멀다하고 미디어에서 송출되는 중이니까. 실제 상황에 대입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면에 불안과 고민의 흔적은 존재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세라핌의 이번 컨셉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기존 컨셉과의 대비 효과가 극명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데뷔 전부터 이어져 온 서사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 독기를 연달아 보여줬던 터라 이번엔 어떤 새로운 당당함을 가져올지 궁금했으나, 모두의 예상을 엎고 여린 모습을 가져와 반전을 보였다. 그렇게 긴 불안과 고민 끝에는 모든 걸 EASY하게 만들겠다는 다짐만이 남았다.

 

르세라핌의 불안과 고민은 어딘가 사뭇 다르다. 이들은 자신들의 어둠까지도 결국엔 EASY하게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혹자는 정상을 향한 여정을 쉽다고 여기겠지만, 이에 르세라핌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공개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던 이들의 고백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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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곡 'EASY'는 트랩 장르에 R&B 스타일의 보컬을 얹은 부드러운 흐름이 돋보이는 곡이다. 그간 르세라핌의 타이틀곡이 힙합, 펑크, 라틴팝 등의 요소가 가미되어 강렬함이 주가 되었다면, 이번엔 힘을 덜어 매끈한 흐름을 선보였다. 메시지에 따라 곡 스타일에도 확실한 변화를 준 것이다. (물론, 춤은 더 어려워졌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쉽지 않음 내가 쉽게 EASY”라는 가사이다. 모든 걸 쉽게 만들겠다는 이들의 다짐이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전작들의 경우 당당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자신감에 불을 붙였다면, 이번엔 불안과 고민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다른 방법으로 자신감에 불을 붙인 셈이다. 일차원적으로 제목 따라 ESAY해졌다고 속단하기엔 이들의 음악 스펙트럼 확장에 따른 모험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르세라핌 앨범의 하이라이트이자 타이틀곡보다 더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1번 트랙, ‘Good Bones’ 역시 뇌리에 강하게 박힌다. 주로 런웨이가 연상되는 무드의 곡이 주를 이뤘으나, 이번엔 점차 고조되는 샤우팅으로 색다른 시도를 했다. 다만, 이 샤우팅에서 Olivia Rodrigo의 'bad idea right?'이 연상되는 건 찝찝하긴 하지만.

 

그 외에 수록곡에도 전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전적인 내용의 ‘Swan Song’‘Smart’, 그리고 마지막 트랙에 팬송인 ‘We got so much’을 배치하며 상투적이지만 필승 전략으로 돌파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아쉬움이 하나 있는데, 바로 ‘Smart’가 Doja Cat의 ‘Woman’을 레퍼런스로 삼은 게 너무 티가 난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Tyla의 ‘Water’와 Rema, Selena Gomez의 ‘Calm Down’을 짬뽕한 곡이라 지적하지만, 후자의 두 곡은 장르의 유사성에 따른 부분이라며 억지로 포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Doja Cat의 ‘Woman’은 (이 또한 같은 장르이지만)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조금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인기 장르와 트렌디한 곡을 레퍼런스로 삼는 건 케이팝 씬에서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약간의 차별점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씁쓸함이 남는다.

 

*

 

이들의 야심 찬 고백은 체계적인 순서에 따라 진행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자신들을 알린 순간부터 계획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신 발언으로 팬의 입장에서 이 순서에 약간의 흠을 하나 집자면, 이들은 전작 [UNFORGIVEN]에서 마지막 트랙인 ‘fire in the belly’을 통해 분명 새로운 모험의 시작을 알리며 다음 앨범에 대한 예고 아닌 예고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불안을 고백한다고? 조금 갸우뚱하긴 했다. 물론, 'Perfect Night’을 통해 함께하는 모험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긴 했으나, 영어 곡인지라 그 전달력엔 힘이 없었고, 더불어 싱글인 탓에 르세라핌 앨범의 컨셉 흐름에 완전한 조각으로 자리하기엔 살짝 애매한 감이 있다. 그 때문에 이번 앨범은 바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모험을 알렸어야 했다. 급작스러운 불안과 고민의 전개는 마치 한 단계를 건너뛴 듯한 인상을 주었다.

 

다소 아쉬운 점이 많이 발견된 앨범이었지만, 절대 완성도가 떨어지는 앨범은 아니다. 오히려 컨셉적인 아쉬움 때문이라도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조성되었으니 말이다. 독기와 관련된 유사 단어는 꽤 사용했고, 이젠 불안과 고민마저 공개했으니, 그다음은 과연 무엇이 있을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풀어내고, 어떤 새로운 챕터를 열지. 이들의 변태적인 기획에 또 한 번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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