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을까 - 지저귀는 새는 날지 않는다

글 입력 2020.07.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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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로 성 소수자를 받아들여서 그런지 퀴어 장르는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었다. 퀴어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렌스 젠더 등 성적 소수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퀴어 장르 역시 성적 소수자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통틀어 이른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캐롤>, <브로크백 마운틴> 등 여러 퀴어 영화를 접했고 모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런데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온 <지저귀는 새가 날지 않는다> 관련 글에서 ‘BL 애니’라는 단어를 보고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퀴어물과 BL(Boys Love), GL(Girls Love)은 엄연히 다른 장르인데, 전자는 예술 작품에 주요 인물이 성 소수자일 뿐이라면 후자는 장르적 쾌락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실성이 떨어지고 작품에 따라 성적으로 노골적인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BL과 GL을 실제 성 소수자의 이야기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었다.

 

음지의 영역에서만 논의되던 장르를 평범한 개인이 아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향유하는 경험은 다시 없을 것 같았다. 호기심의 충실한 노예인 나는 그렇게 바로 관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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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관람을 신청한 뒤에야 내용을 제대로 살펴봤다. 조폭의 간부급 인사이자 마조히스트 야시로와 그의 경호원 도메키의 이야기. 마조히스트라니, 도전해야 하는 영역이 또 늘어났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리뷰를 쓰게 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영화관으로 가는 길이 긴장됐다.

 

처음부터 수위 높은 장면이 나왔다. 베드신은 관람등급을 통해 예상했던 바라 놀랍지 않았지만, 문제는 뒤이은 불법 촬영이었다. 최근 몇 년간 불법 촬영 이슈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라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가 힘들었다. 이후에도 불편한 부분은 계속해서 등장했다.

 

야시로와 도메키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폭행과 관련한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시로의 트라우마는 어린 시절 부친에게 당한 성폭행이며, 도메키의 트라우마는 우연히 목격한 입양 여동생이 친부한테 성폭행당하는 모습이다. 고통스러운 과거로 인해 야시로는 마조히스트가 되고 도메키는 성적 불구가 된다.

 

성폭행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나를 불편하게 한 건 성폭행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 연출이었다. 나는 유독 성폭행 장면을 보는 걸 괴로워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폭행 피해자를 포르노의 도구로 소비하는 식의 묘사를 불쾌해한다. 감독이 위와 같은 의도로 연출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인 야시로와 도메키의 여동생이 피해 당시 어린아이라는 점에서 무책임한 장면 연출이 아니었나 싶었다.

 

야시로는 자신의 입으로 아픈 과거를 털어놓고 그 이후의 서사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도메키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유독 나는 도메키의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이 몹시 불편했다. 도메키는 피해자 본인이 아니니까 상처를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도메키의 상처 역시 심각하며 그 기억으로 지금까지 고통받는 것도 납득이 된다.

 

문제는 여동생의 이야기는 어디로 갔냐는 것이다. BL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변 인물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성폭행 피해자로 설정했고 해당 장면까지 보여줬으면서 서사를 완전히 배제하는 건 무책임한 처리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고통받았고 노력해서 새 출발을 시작했다는 게 나오긴 하지만, 한 장면에 대사를 통해 편의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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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상 깊은 점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도메키가 야시로를 대하는 태도였다. 마조히즘 성향의 야시로와 달리 도메키는 성적 취향은커녕 아예 불능이라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떤 이유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다. 야시로와 같이 스스로 폭력의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한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성적 취향 문제에서 피해자 가해자를 나누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감히 논의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진정 폭력에 대한 욕구가 없다면 상대가 맞기를 자처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에 맞춰 대응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영화는 도메키가 야시로에게 호감은 물론 성적 흥분까지 느끼고 있다는 걸 자주 알려준다. 야시로는 그런 도메키를 끊임없이 도발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다정한 섹스를 할 것 같아서 싫다는 야시로 앞에서 도메키는 그의 취향에 맞추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야시로의 섹스신이 꽤 등장하는데 모두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섹스에는 야시로가 마조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애정 대신 폭력만 가득하다. 통제할 수 없는 요인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은 자신이 자신의 고통을 통제하는 것으로 트라우마를 해소하려고 한다. 야시로의 마조히즘 성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짐작해 보았다.

 

도메키는 그런 야시로의 고통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래서 주인공들 간의 강압적인 섹스는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야시로의 마음은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야시로에게 도메키가 특별한 사람인 점은 확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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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이게 끝이라고?”라고 말할 뻔했다. 굵직한 사건이 아닌 인물들의 감정선 위주로 전개되는 터라 기승전결이 뚜렷하다는 인상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변화 없이 갑자기 끝맺는 결말은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원작 만화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호한 결말만큼이나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의 내 감정도 모호했다. 이유 모를 심란함에 집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기까지 했다. 불법 촬영, 성폭행 등 자극적인 범죄 장면에 불편했고 영화관에서 빈번하게 노골적인 장면을 봤다는 당혹감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심란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대체 무엇이 불편한 걸까. 단순히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심란하진 않을 텐데.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나였다. 야시로와 도메키의 이야기가 아닌 BL이라는 장르에 집중했던, 가벼운 호기심에 관람을 신청하고 색안경을 쓴 채 영화를 소비했던 나였다. 내가 쓴 색안경에 영화가 부합하기도 했다. 노골적인 묘사가 많이 나왔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많았다. 실제 성 소수자의 삶과는 괴리가 있을 것이고 만약 그들이 본다면 자신을 대상화한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만약 이 작품을 집에서 혼자 봤다면 별생각 없었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의 이름을 달고 여럿이서 함께 봤기 때문에 나의 편협함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아서 더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다. 영화 내용에 관해서만 적기엔 그 외에 생각한 점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내 고민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글도 두서없고 산만할 수밖에 없다. 나 혼자 예민해서 불편한 건 아닌지 자꾸 의심되기도 한다. 결국 어떠한 답도 내리지 못했지만,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퀴어가 아닌 BL 장르를 접한 자로서 질문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 장르를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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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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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ㄴㄴ
    • 스스로 불편하게 하고 남도 불편ㅋㅋㅋ 원작 안봤으니 뭘알겠나..가벼운 호기심으로 신청했으니 색안경이나 끼고 보게되지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ㄴㄴ이걸 과연 색안경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원작을 많이 좋아하기는 하지만, 소재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부분이 있어 이 리뷰어 분께서 충분히 불편함을 느낄만 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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