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던 집요함들 [여행]

예술가의 집요함이 지독하고 부러워서,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글 입력 2020.07.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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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이맘때쯤, 나는 휴학을 하고 혼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떨어져 있었다. 말라가로 가 친구들과 합류하기 전, 사흘 동안 혼자 여행을 해야 했다. 외국에 홀로 지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 나는 가격이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잡아 옮기지 않고 3박을 채웠다. 혼자이기 때문에 잠도 자고 싶은 만큼, 알람 한 번 맞추지 않고 마음껏 잤다. 10시 반쯤 느즈막이 눈을 뜨면 주변의 침대가 텅 비어있고, 창문으로 뜨거운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바르셀로나는 천천히 돌아다니며 관광 명소를 하나씩 들르기 좋은 도시였다. 날도 좋고 거리는 한산했다. 나의 한가함은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휴대폰으로 더해졌다. 나는 매일 와이파이가 되는 숙소에서 갈 곳의 지도와 미리 구매한 티켓을 다운받고 저장해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섰다. 괜히 무작정 가면 길을 잃을까 봐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길을 걸었다. 하나하나 눈에 넣으며 걸었다. 나는 매일 구역을 하나 정해 그 구역을 돌고 왔다.

 

바르셀로나는 계획도시의 대표적인 사례로 뽑히는 만큼 도시의 모습부터 압도적이다. 건물들은 네모 모양으로 배열되어 바둑판과 같이 일직선과 정사각형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늘에서 찍은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누군가 세심하게 디자인한 것처럼 완벽하게 보인다.

 

혼자 그 속을 돌아다니며 숨이 막히도록 감동했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번은 ‘집요함’이라는 단어로 모인다. 바르셀로나에서 집요함을 발견했을 때 나는 예술가의 집요함이 너무 지독해서, 끈기가 너무 부러워서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바르셀로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당신들의 집요함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혼자였기 때문에, 그 집요함을 나 역시 지독하게 남아 흡수하고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그 첫 번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였다. 카탈루냐가 배출한 가장 유명하며 사랑받는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 1883년에 건축을 시작해 아직도 지어지고 있는 성당. 사실 너무 유명한 성당이라 오히려 기대감은 없었다. 바르셀로나 자체가 가우디의 다양한 건축물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난 건축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관광지이기 때문에 간 것이 가장 컸고, 마침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생기기도 해서 급히 예약해 들렀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갔던 것과 다르게,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외관을 지나 들어간 성당의 내부는 자연을 닮으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이 점철된 또 다른 세계였다.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둥과 장식들 가운데, 인공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거대한 크기가 그랬다. 신에게 닿기 위해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 같았다. 유럽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성당을 다녔지만, 이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대체 이 사람은, 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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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내부

 

 

공간과 모든 것이 너무 거대해서 저 멀리 달린 것의 크기가 얼만한지 가늠이 안 된다는 사실은 짜릿하다. 보기 위해 고개를 최대한 꺾어 천장을 바라보는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진다. 둘러보는 데에 정신을 뺏겨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오디오 가이드는 들리지 않았다. 몇 번을 놓쳐서 다시 듣곤 했다.

 

우리는 자꾸 자연을 닮으려 한다. 자연의 웅장함을 자신의 능력을 쥐어 짜내며 베끼려 한다.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것에 닿으려 부단히도 노력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중에서도 가장 집요하게 따라 했다. 52개의 나무를 닮은 각자 다른 기둥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꽃이 피어난 것처럼 꾸며진 천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물리적으로 압도적인 이 공간은 실제 거대한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동과 같은 것을 선사한다.


 

 

피카소, 시녀들


 

두 번째는 피카소 미술관에서의 경험이었다. 피카소 역시 너무 유명한 화가였고, 그만큼 바르셀로나에 왔다면 꼭 들려야 할 미술관이었다. 피카소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했는데, 충격은 어느 방에서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그 전시실의 입구에는 피카소의 <시녀들>이 있었다. 유명한 그림이라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 옆의 방에 들어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나의 넓은 전시실은 오직 <시녀들> 개작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벽면을 채운 비슷하면서 다른 그림들은 입구부터 나를 압도했다. 피카소의 <시녀들> 개작들을 본 순간, 나는 ‘이걸 보려고 바르셀로나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Pablo Picasso ‘Las Meninas’ (1957).jpg

피카소Pablo Picasso, 시녀들Las Meninas, 1957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워낙 유명한 거장의 그림이다. 그 그림을 피카소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켰다. 그림을 옆으로 늘리거나 벨라스케스만을 확대하고, 극도로 단순화시키거나 분해한다. 색을 넣어보기도 하고 빼보기도 한다. 그림의 가운데에 위치한 마르가리타 공주를 확대하거나, 그의 비중을 줄이기도 한다. 하나의 그림을 가지고 이토록 파헤치고 재구성하는 집요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벨라스케스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재해석과 재창작을 반복할 수 있을까.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쉽게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그가 투자했을 시간과 노력에 나는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 방의 입구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고, 한동안 나갈 수 없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그 공간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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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다양한 나라와 도시를 다녔다고 말할 수 있는데, 바르셀로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새겨져 있는 도시다. 그때 그곳의 나는 이른 여름의 사색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혼자였기 때문인지, 휴대폰이 터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꽤 한가했고, 치열하고 촘촘한 작품은 나를 감동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바깥은 스페인의 여름 해가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고, 나는 서늘한 곳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움켜쥐고 움직일 줄 모르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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