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별을 마주하는 방법,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

글 입력 2020.07.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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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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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두고두고 회자되는 로맨스 영화들이 있다. 로맨스 영화는 관객의 공감이 수반되어야 완성된다. 일본 로맨스 영화의 바이블과도 같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잊고 싶은 사랑의 기억을 벅벅 긁어놓는 영화를 만났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어느 날 동네 할머니(신야 에이코)가 끌고 다니는 유모차 안에 수상한 것이 들어있다는 얘기를 주워듣는다. 알고 보니 그 수상한 것은 걷지 못하는 장애우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였다. 츠네오는 조제의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그 이후 종종 그곳을 찾아가며 그녀를 향한 마음을 키운다.

 

그러나 츠네오가 혹시라도 조제에게 상처를 줄까, 더 이상 찾아오지 말아 달라는 할머니. 츠네오는 조제를 지우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찾아가고, 둘은 마침내 함께하게 된다.

 
조제는 매일 떨어지는 삶을 산다. 다리가 불편한 조제는 음식을 하기 위해 의자를 올랐다가, 내려올 땐 자발적으로 쿵 하고 떨어진다. 조제는 그렇게 몸과 마음을 쿵쿵 떨어트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츠네오와의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머리를 묶은 채 장을 보러 가는 조제의 모습을 통해서 그 어떤 해방감과 단단함이 느껴졌다. 마지막 장면의 쿵, 하는 그 소리가 유독 내 마음을 울렸던 이유는 조제가 영화 초반부에 비해 단단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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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는 비겁하지 않다. 연애는 상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타인은 절대 나보다 우선이 될 수 없다. 지쳤냐는 동생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이별의 이유는 자기가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츠네오는 솔직하고 용기 있다.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것을 버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방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온전한 나 일 때, 상대를 더욱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츠네오의 선택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조제가 가진 장애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시작하는 둘. 특별한 각오가 필요했던 둘의 사랑도 시간 앞에선 무너져 내린다. 서로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식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이별을 마주하는 그 둘의 태도에서 이질적인 마음이 들었지만, 길 한복판에서 무너지는 츠네오를 보며 내 마음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조제를 향한 츠네오의 마음이 조금의 동정도 없는 순수한 사랑이었음을, 지난 시간 동안 조제에게 최선을 다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이별을 예감한 조제는 츠네오에게 자신을 버릴 수 있음을 허락한다. 자기가 올라왔다는 그 해저에서 다시 혼자 굴러다닐각오가 되어있다고, 언제든 자기를 버려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때, 그 불안함을 가장 잘 이겨내는 방법은 그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일지 모른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우리가 이별을 어떤 자세로 마주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조제와 츠네오가 이별을 감당하는 모습을 통해, 가장 상처받지 않고 이별하는 방법은 그 아픔을 오롯이 감당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이별도 감당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 늘 함께 올 수밖에 없는 그 두 가지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하지만 내 삶을 진정으로 채우는 단 한 가지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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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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