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봄 노동', 우리들의 이야기 - 장녀들 [도서]

글 입력 2020.07.0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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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들>

 

 70대 노인이 90대 노모를 돌보는 일은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문을 닫고 개학이 미뤄져 집에 머무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돌봄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시기다.


 어머니, 며느리, 딸.. 돌봄 수요는 늘어나지만 그걸 뒷받침할 사회적 제도는 턱없이 부족한 '돌봄 공백' 상태에서 자신을 갈아 넣어 그 공백을 메꾸는 이들은 여전히 여성들이다. 그중에서도 지금껏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던 딸들, 특히 비혼인 딸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아낸 소설, <장녀들>이 이음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장녀들>에 등장하는 '장녀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딸로, '나보다는 행복하게 살라'는 어머니 세대의 메시지를 듣고 또래 남성과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활발하게 사회에 진출했고, 그중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어머니의 바람처럼 이전 세대의 여성들이 가져본 적 없는 사회적 지위를 쟁취했다.

 

하지만 이 어엿한 '사회인'들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딸'이라는 위치에 얽매이고 만다.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자유로운 싱글 여성으로, 때로는 심지어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듣기까지 하는 이들의 '이미지' 뒤에는 늙은 부모를 위한 갖은 돌봄 노동과 경제적 부담을 동시에 짊어진 '딸'의 모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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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총 3가지의 사례가 제시된다. '집 지키는 딸'의 나오미, '퍼스트레이디'의 게이코, '미션'의 요리코, 그들은 앞서 말했듯 사회적인 지위를 쟁취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지만, 비혼으로 살아간다는 이유로 집안의 갖은 소일거리와 돌봄노동을 떠안는다. 그 노동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됐지만, 과정과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감정을 선사해주었고 서늘하기까지 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니 장녀들이 짊어져야 할 현실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이와 반대로 소설의 두 번째 사례에서 등장하는 아들 야스미는 절제되지 않는 어머니의 행위를 진단한 채 포기해버린다. 이러한 장면은 <장녀들>이라는 세 글자에 담긴 슬프고 외로우며 괴로워하는 그들의 내면을 그 자체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장남들도 아닌, 장녀들이라니. 이 시대에 특히나 필요한 주제인 듯하다.

 

장녀들이 감수해내야 하는 독박 돌봄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의무와 같이 여겨질 것이다. 특히나 소설에서와 같이 나이 들어 병든 부모를 돌보는 일은 육체적인 힘듦에서 더 나아가 정신적인 고통까지 수반한다. 그러나 외면해버리기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뿐더러 주위의 시선 역시 무시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하는 게 올바른 것일까?

 

이에 대해 명쾌하게 제시되는 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돌봄 노동'의 현 사태를 그저 먼 누군가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기엔 우리 곁에 너무나 가까이 와있다. 우리도 <장녀들>의 주인공처럼 노인이 된 부모를 돌볼 수도 있고, 돌봄을 받는 노인이 어느 순간에 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판타지 같은 얘기일 수도 있지만, 소설의 저자가 말했듯 이는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깝다. 우리가 해결해나가야 할 사회적 문제이며, 그러한 문제 제기를 통한 고찰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네가 시집가면 난 어쩌냐"고 말한 입으로 "이제 와서 다시 대학에 가면 시집은 못 간다"며 입학을 허락하지 않는 아버지를 굳이 설득하지 않았다. 귀찮은 일이 싫어 동생을 본가에 묶어두려는 오빠도 무시하고. 요리코는 저축한 돈을 털어 모든 비용 지불과 수속을 끝내고 도쿄를 훌쩍 떠났다.

 

- '미션' 중

 

 

나 역시 이 소설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닌지라, 현실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가족의 형태는 갈수록 세분화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1인 가구, 미혼남녀, 딩크족, 딩펫족, 패러싱글족 등 수많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더이상 예전의 사고에 천착해 살아갈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돌보면서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고 죽음으로까지 내몰게 하는, 그런 의무의 방식은 행해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한 논의는 <장녀들>을 통해 출발하여 앞으로도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 중인 만큼, 장녀들의 문제는 곧 이 시대를 살아가며 앞으로도 살아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조차 이러한 문제를 외면해버리면, 장녀들이 떠안게 되는 돌봄 노동은 지금보다 더 심각해져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의 관심이 지속된다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돌봄을 실천할 방안이 제기되지 않을까. 그러한 해결방안이 제시된다면 돌봄을 '노동'이라 칭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러 세대가 공존해 살아가고 있기에 무조건적인 변화를 촉진하려 하기 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특정한 개인의 역할이 아닌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보며 자신의 문제로써 온전히 받아들인 뒤 이상적인 방안을 찾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때가 비로소 유토피아라 마땅히 정의할 수 있는 세상이 일부 도래한 게 아닐까 싶다. 그만큼 장녀들에서 시사하고 있는 사안은 꽤 무거우며,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될 깊은 고찰을 불러온다.  그러한 이유로, 이 시대에 필요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고찰을 모두 건네받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장녀들

- 네가 시집가면 난 어쩌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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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시노다 세츠코
 
옮긴이 : 안지나

출판사 : 이음

분야
일본 단편소설

규격
135*200

쪽 수 : 340쪽

발행일
2020년 05월 29일

정가 :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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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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