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이라는 물방울이 만드는 푸른 바다, 책문화 - 출판저널 517호

글 입력 2020.06.2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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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릴 적 ‘내가 어른이 된다면~’ 으로 시작되는 문장을 써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쓰인 문장 중에 분명 좋아하는 책으로 빼곡히 들어차, 한쪽 벽을 완전히 채우는 아주 커다란 책장을 갖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 믿는다. 그 중에는 만화책 시리즈도 두 어 개 끼어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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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中

 

 

하지만 ‘전집을 사는 것은 구매자의 부동산을 보여준다’라고 어느 누가 그랬듯이 한쪽 벽을 채울 만큼의 종이책을 소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명의 노력이 기울여져 만들어진 만큼 책 한 권의 가격이 그리 저렴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도대체 어떤 책을 사야할 지 모른다는 데에서 가장 크게 연유했다. 표지가 맘에 들어서 집은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세계를 가져다줄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600g 정도 될 법한 책 한 권의 무게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 미성년에게 과연 꿈과 같았던 공간이 바로 지역 도서관이었다. 선정된 책들은 문학, 과학, 사회 등으로 범주화되어 차분하게 꽂혀 있었다. 슈퍼에서 무슨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고민하는 정도의 편안함으로 맘껏 책을 고를 수 있었다. 혹시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부담이 없는 와중에 일정 기간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유사 소유감’이 나를 도서관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유일하게 마루였던 어린이 도서관 바닥에 앉아 별로였던 책부터, 어쩜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은 책까지 읽어 나갔다.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도서관은 자습실로 변모하였다. 열람실에서 교과서나 문제집 혹은 개념서 따위의 책 말고 또 다른 책을 펼쳐 드는 것은 자책 사유가 되었다. 그런 시기를 지나 들어갈 수 있게 된 대학 도서관의 소파는 사생활을 보호해줄 수 있을 만큼 크고 푹신했다. 시간이 빌 때나 마음이 적적할 때면 그 곳에 들어앉아 소설을 읽곤 했다.

 

코로나가 서울에 뚜렷한 확산세를 보였던 3월, 도서관은 운영 시간을 대폭 줄였고 자습실 외에 열람실 이용은 금지되었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대출해서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은, 의외로 허전했다. 그동안 나에게 도서관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출판문화> 517호는 해외통신과 2020 연중특별기획으로 우리 시대의 도서관을 조명한다.

 

 

 

해외통신 - 유럽에서


 

'해외통신-유럽에서'는 세계 2위 공공도서관인 로칼(LocHal)도서관을 소개한다. 기관차 창고를 도서관으로 재탄생 시킨 로칼도서관은 틸뷔르흐의 역사와 문화와 자긍심을 잘 표방할 수 있는 실체들을 잘 이끌어 도서관 곳곳에 공간을 배치했다.

 

탁트인 높은 천정부터 내려오는 대형 패브릭 커튼으로 네덜란드의 섬유 역사를 엿볼 수 있으며 ‘LocHal’이라는 대형 레터링 아래 커다란 탁자를 받치고 있는 기관차 바퀴를 통해 증기 기관의 역사, 이 밖에도 여가문화, 화훼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틸뷔르흐 시민의 지역 감수성, 사회문화적 감수성과 역사적 감수성을 녹여낸 공간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 그 이상의 복합적인 경험을 한다.

 

‘KunstLoc Brabant’에서 현대 미술 전시를 보고, Lab에서 나이나 학력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어 공부하고 때론 지적인 토의를 나눈다. 대화 토론, 게임, 언어, 요리, 기술, 미래 6가지 테마로 나뉜 연구실에서 최적의 인프라를 통해 창의성을 발현하여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다. 그 밖에 아이들이 사랑하는 명작동화을 모티브로 하여 안톤 픽의 그림으로 꾸며진 ‘동화의 숲’을 뫼브로 삼은 어린이들의 책 공간과 카페 역시 마련되어 있다.

 

유려한 디자인에 최신식 시설을 갖춘 공공 도서관이기만 했다면, 로칼 도서관은 <출판저널>에 몸담지 못했을 것이다. 로칼 도서관의 핵심 공간이 “만남의 광장(Seats2meet)”라는 것으로 보건대, 로칼 도서관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유롭게 모임과 대화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만남의 광장은 한자리에 모여 같은 것을 즐기고 경험하는 로칼 도서관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은 이미 네덜란드 도서관에 가장 중심되는 곳에 넓게 자리 잡고있는 공간시스템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지면 자유로이 운집할 수 있는 곳. 이곳에서 문화공연이 이루어진다. 일종의 콘서트홀로 기능한다. 혹은 집회의 장소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마치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담소를 즐기거나 TV 시청을 하거나 차를 마시는 등 공용의 오락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 도서관에서 도시의 거실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로칼의 홀은 국제적인 거실이 아닐까 싶다.

 

『출판저널』 vol.517, p.21

 


 

2020 연중특별기획 - 도서관 이야기 “공공도서관 사서로 살아가는 숙명”


 

'도서관 이야기'에서는 《독서치료와 독자상담서비스》 저자이자, 23년째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이기명 사서의 도서관 이야기를 담았다. 공공도서관 사서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이기명 사서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독서치료를 도서관의 서비스에 적용한 사례를 이야기하며, 사서 주도의 독서치료 활동을 도서관 고유의 서비스로 정착시키기 위한 이론적 기반과 그에 따른 실행 과정들을 담았다.

 

이기명 사서의 학창 시절 교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공공도서관을 눈여겨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 말을 듣기 전부터 관심을 가졌었던 도서관을 준비하며, 이후 전문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안에도 이 말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997년에 공공도서관에 발령받아, 23년째 사서로 일하는 동안 공공도서관이 직면한 환경과 도전에 대응하면서 그는 근본에 집중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공도서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공공도서관의 존재 이유인 이용자에게 있었다. 자료실 정리정돈에서 경륜과 통찰이 요구되는 기획 업무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을 한해 한해 넓혀가며 공공도서관의 생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체득한 답이다. 이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도서관! 이용자의 니즈를 채워주는 도서관! 외풍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도서관의 위상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기본 요건이다. 필자가 이용자에게 다가가는 ‘인적인 서비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출판저널』 vol.517, p.49

 

 


*

 

꿈만 꾸던 언택트 사회가 그리 좋지 못한 이유로, 조금 다급하게 도래했다. 내가 책을 대출해오는 길에 난데 없이 허전했던 이유는 바로 도서관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찾아 오든 간에 사람들을 공간에서 공간으로 책에서 책으로 연결시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책에 고개를 틀어박고 있는 동안에도 어쩔 수 없이 인간에 대해, 우리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분간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우리. '드라이브 스루'라는 참신한 방법을 통해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등 파편화에 더욱 속도가 더해지는 지금에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연결점을 모색하고 있다.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며 지금 당장 도서관을 가는 대신, 각자의 집에서 책을 펼쳐든 채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현존하는 어느 인간 집단에 대해 생각하며.

 

책이라는 물방울이 한 권씩 모여 '책문화'라는 바다를 이룬다면, 그 속에서 도서관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고래가 아닐까. 곧이어 도서관에서 만날 날까지 각자의 책 속에서 서로를 생각하도록, 『출판저널』 vol.517을 통해 연결 고리를 지켜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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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 517호

- 2020년 5+6호 -
 
출간 : 책문화네트워크(주)

분야
문예/교양지

쪽 수 : 244쪽

발행일
2020년 05월 15일

정가 : 24,000원


[우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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