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결코 사라지지 않을 가난의 속, '노랑의 미로'

글 입력 2020.06.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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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2015년에서 시작한다. 발단은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용산구 동자동이다. 2015년 동자동 한 건물에서 강제 퇴거 사건이 일어났고, 한 기자는 그 사건을 탐사하며 길을 잃었다. 가난한 동네의 삶은 파고들수록 미로같았고,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저자 이문영이 <한겨레21>에 일 년간 연재했던 <가난의 경로>를 씨앗으로 삼아 탄생한 이 책은 5년에 걸쳐 동자동 주민 마흔 다섯명을 추적해 가난이 어떻게 사람을 고립시키고, 쫓아내는지 기록한다.

 

<웅크린 말들>이라는 책으로 문학적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보여준 저자 이문영은 <노랑의 미로>에서도 건조한 보도 자료가 포착하지 못하는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 문학적 글쓰기를 사용한다. 김훈이 생각나는 이문영의 문체는 짧고 깊다. 비유나 수사 등의 기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사실 관계는 주석에 촘촘하게 싣는다. '입구'로 시작하는 목차에서 독자는 우리에게 보여지지 않았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진득한 이야기가 웅덩이처럼 고이는 곳, 가난이 모여드는 노란집 속으로.

 

 

"가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엔가 모여 있다. 어떤 가난은 확산되지만 어떤 가난은 집중된다. 가난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숨겨지고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 가난의 이야기가 노란집에 있었다."

 

- 9p

 


 

1.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9-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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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주제만 보자면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갈등은 뉴스에도 심심찮게 등장하지 않는가. 나가라는 사람과 못 나간다는 사람.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보상 문제. 우리는 이게 고질적인 문제라는 걸 알지만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정말 알고 있을까?

 

서울 동자동은 쪽방촌과 빈곤 문제로 알려진 곳이다. 검색해보면 동자동 쪽방 세입자들의 가난을 탐사하고 취재한 기사가 한가득이다.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이 가까이 있어 늘어난 유동인구를 상대하던 집창촌, 여인숙 등이 세월이 지나 쪽방촌으로 변모했다. 동자동의 월세는 평균 22만원, 쪽방의 평수는 평균 1.8평이다. 평수를 제외해도 건물의 상태나 안전 등이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열약한 환경이다. 거주자 대부분이 고령의 독거 기초생활수급자이다.

 

2015년 당시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게 입금되는 한 달 수급비는 48만원이었다. 마흔다섯 명이 강제 퇴거 명령을 받은 동자동 9-2x 건물은 평균 월세 15만원으로 동자동에서도 가장 월세가 싼 건물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싸다고 한들, 거주자들은 한 달 수입의 삼분의 일을 주거에 써야 했다. 이들은 동자동 9-2x 건물에 적게는 4개월, 많게는 18년 간 살아왔다.

 

그런 9-2x 건물에 2015년 어느 날 노란 딱지가 붙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건물주가 한 달 열흘 내로 모두 방을 비우라고 일방 통보한 것이다. 주민들은 저항했지만, 거듭된 공사 시도에 건물은 이내 폐허처럼 변한다. <노랑의 미로>는 그 과정을 기록하면서 쫓겨나거나, 버티거나, 되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5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멀리 가지 않았다.

 

 

 

2. 쫓겨나는 사람들


  

 

9-2x 주민들의 삶의 배경은 모두 달랐지만 삶의 과정은 놀랄 만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가난했다. 그들은 부모 세대 때부터 가난을 유전처럼 물려받았다. 전쟁 중 고아가 돼 가난했거나, 가난 때문에 전쟁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부모가 가난했으므로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으므로 학력을 얻지 못했다. 재력과 학력이 없었으므로 인맥도 없었고 등에 없을 '빽'도 없었다.

 

평생 '가난의 경로'를 이탈하지 못한 채 한차례 반전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살아왔다.

 

 

가족과 집 대신 인맥과 빽 없는 그들을 맞이한 건 사회의 몽둥이였다. 이들의 이야기 속 역사는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북파 특수부대, 이라크 전쟁, 베트남 전쟁, 철거용역이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이들은 갑자기 박멸되어야 할 존재가 되어 잔인한 인권 유린을 감내하고, 그저 인력으로 전쟁과 폭력의 선두에 서기도 한다.

 

그들에게 학교는 멀었지만 교도소는 가까웠다. 폭력과 범죄, 배고픔도 그만큼 가까웠다.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고 주목받는 한국 현대사가 사실은 발전을 명목으로 기존에 있던 사람들을 계속 가난과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아내며 만들어진 역사라는 것을 <노랑의 미로>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서울 곳곳의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렇게 밀려나고 밀려나서 동자동 9-2x에 도착했다. 신산한 삶의 여정을 거친 이들의 방에는 꽃처럼 만발한 술병과 가방 하나짜리 이삿짐이 남아있다.

 

'가난한 자에게 퇴거와 철거는 자석처럼 붙어다'녔다는 말처럼, 이들은 노란 딱지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주의 강제 통보가 부당하는 것 역시 분명했다. 주민들은 대책위를 세우고 공공 기관에 항의했다. 구청의 중재는 공사를 막지 못했고, 사람들은 압박에 못 이겨 인접한 쪽방으로 이사하거나, 단전, 단수, 공사를 견뎌내며 버텼다. 강제 퇴거 탓은 아니었지만, 그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죽었다. 고독사로 죽어 벌레가 기어다닐 때가 되어서야 발견돼고, 전기가 끊긴 건물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으며, 혼자 잠드는 것처럼 쓸쓸히 죽었다. 가족이 찾아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 질병이나 장애가 있었고, 무료 급식소, 교회, 자선 단체를 찾아 바쁘게 이동했다.


건물주의 일방적 통보는 주민들의 공분을 샀지만, 건물을 떠날 때 아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9-2x는 아쉬워하기에는 형편없는 건물이었다. 곰팡이로 벽지는 새까맣고 매일 고성과 술판, 다툼이 벌어졌다. 거기 사는 사람들 누구도 그 건물이 좋아서 살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치이고 미끄러지며 흘러오다보니 그 곳에 고이게 된 것이었다. <노랑의 미래>에 등장하는 마흔 다섯명의 사연을 읽다보면 정말 고였다는 말이 떠오른다. 결혼, 가족, 집, 사랑과 애정. 지하 5호에서 10년간 거주한 서혜자는 '그런 거 없다. 처음부터 없었다'라는 말로 자신의 삶을 설명한다. 계속 무언가 없이 살아온 삶. 가난이란 가난말고는 곁에 남는 게 없는 삶인가.

 

 


3. 갈 곳 없는 사람들


 

  
"역사는 시선이고, 위치며, 태도다. 역사는 기록하는 권력의 시선이고 권력이 글을 쓰는 위치이며, 권력이 사실(fact)을 선택, 배제하는 태도다. (...) 누락당한 개인들에게 역사는 검증되고 인증된 역사책이 아니라 그들의 뒤틀리고 편향된 몸의 기억 속에서 훨씬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사실과 허구가 등을 맞댄 곳만 진실의 거처는 아니다. 이 책은 '안의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밖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안의 역사가 인정하지 않는 밖의 이야기를 쓴다. 기억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보다 그들이 몸으로 통과해온 '다른 역사'를 다만 전하고자 한다."
 

 

2015년 이들의 몸이 또 한번 통과하는 강제 퇴거에 법원은 세입자의 편을 들어준다. 건물주의 강제철거가 임대차보호법에 위배되며 철거 공사, 단전, 단수 등의 행위를 금지했다. 이미 공사가 진행중인 건물은 폐허가 된 상태였다. 사람들은 이사가거나, 죽거나,멀리 떠났고, 남은 사람은 물도 전기도 없이 여름을 버티면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들은 '우리에게도 지킬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얻었으나, 대가는 비쌌다. 이미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다고 멀리 간 게 아니었다.

 

이들의 경로에 자기 의지는 미미했다. 가난이 경로를 대신 정해주었다. 쪽방에서 쪽방으로, 쪽방에서 임대주택으로, 쪽방에서 요양원으로. 대부분 서로 이삿짐을 날라주며 아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모두 가난하기에 가난이 뭔지 알았다. 남루한 생활에서 또 다른 남루함으로 이동하는 것. 그게 가난의 경로였다. 이 척박한 길에서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생면부지의 사이에서도 누군가 도와주고 챙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의 주검을 치워주면서 가난의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민 몇몇은 연남동 임대 주택으로 이사했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동자동으로 계속 돌아갔다. 빌라촌 사람들은 그들을 임대 주택으로 들어온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술을 진탕 마시기도, 싸우고 목청 높여 떠들기도 눈치보이는 곳이었다. 집은 더 나아졌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쪽방촌과 같은 빈곤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미약하게나마 서로를 찾고 돕는 커뮤니티가 사라진 자리에서 이들은 다시 고립되고 '없는 존재'가 된다.

 

 

 

4. 사라지는 사람들


 

  
"그들을 변방으로 밀어내며 도시는 덩치를 키웠다. 수십년 거듭된 '정비'와 '정화'로 동자동과 남대문로5가 주위엔 올려다보기도 벅찬 빌딩숲이 솟았다. 그 숲들이 강렬한 빛을 발산하며 어둡고 움푹한 방들을 굽어봤다. (...) 밝고 맑은 도시는 자력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어두운 것들을 몰아넣은 땅이 있어야 그들 없는 깨끗하고 찬란한 도시도 완성됐다. 불결한 그 땅이 사라지면 순결한 도시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었다. 닦아도 닦이지 않는 얼룩처럼 수십 수백 수천의 쌍둥이 삶들이 도시에 묻어 끝내 살아갈 것이었다."
 

 

저자는 5년 동안 동자동 9-2x 거주민들의 경로를 추적했다. 법원 판결 이후 건물주는 서울시에 건물을 임차했다. 부서진 건물은 다시 보수 공사에 들어갔고 예전의 빈약한 쪽방이 다시 완성됐다. 굳이 돌아올 이유가 없지만 완전히 멀어질 수도 없던 전 세입자들은 돌아오거나, 그 주위를 맴돌았고 새 입주자가 들어왔다. 칙칙한 회색 건물은 노란색 페인트를 덧입었다. 이제 동자동 9-2x 건물은 노란집이 되었다. 무채색 동네에서 그 건물만이 노란색이었다.

 

나는 이 이상한 대비가 무얼 의미하는지 감 잡을 수 없었다. 건물의 세입자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노란색을 덧입힌 시청 공무원들이라고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무언갈 덧입힌다고 해서 세입자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도, 쪽방의 평수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야기는 되풀이됐다. 쫓아내고 쫓겨나고, 사라지고, 아무도 모르게 영영 잠드는 일들 말이다. 동자동에선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사건'에 5년 간 매달린 기록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역사 바깥의 이야기, 이들이 몸으로 통과했다는 580페이지 가량의 두툼한 이 책은 가난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저자는 이 책 역시 가난을 소비하고 대상화해온 시선을 극복했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가난을 흠집 내지 못하고 구경하기만 했기에, 실패의 기록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가난의 속을 들여다보려 한 책이 국내에 있던가. 빈부격차라는 단어가 서민과 극부유층 사이의 간극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고, 불평등이 박탈감의 정도로 판별되는 것만 같은 지금 사회에서 빈곤이 진정 무엇인지 말하는 목소리는 너무나 적다. 빈곤은 무언가를 적게 가졌다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아예 가진 적 없는 삶이라는 걸, 교육받을 기회의 부재와 자신을 알고 되돌아 볼 수 있는 가능성의 결핍이라는 것을 과연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한국 사회가 가난한 자를 계속 밀어내면서 성장했기에 가난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받아들일 준비가 우리에게 되어 있는가.

 

저자는 가난을 구경했기에 부끄러워 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움직임조차도 부족했던게 한국 사회가 빈곤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었나. 이제 가난을 바라보고, 도와줘야 한다는 시혜적 시각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공론장이 생겨야 한다. 자신의 삶과, 뒤틀린 몸의 기억을 직접 말하는 자리가 '역사'와 '역사 아님'을 허물게 될 것이다. 높이 솟은 빌딩숲이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움푹 파인 가난의 고랑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빈곤의 기억을 멈추지 않고 말하고, 이 목소리를 듣는 귀가 사라지지 않을 때에야 '없는 존재'는 역사를 통과한 개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가난의 속은 더 깊이 탐구되어야 한다. 미로의 출구를 찾으려면 이미 그 곳을 오래 헤매고 있던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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