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창작자의 팔레트 - 트라우마 사전 [도서]

글 입력 2020.06.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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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소설 속 캐릭터는 나와 완전한 남이다. 만난 적이 없고, 그가 사는 세계에 나는 가 본 적도, 가 볼 일도 없으며, 그가 겪는 일들은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말들이지만, 책을 읽을 때는 (혹은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볼 때는) 전혀 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이미 그의 삶을 알고, 그의 감정을 옮았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나는 그와 같은 시간을 걷는다. 그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흐를수록, 캐릭터가 남인지, 혹은 나인지 헷갈리게 된다. 나는 그 모호한 동질감이 좋아서 이야기를 좋아한다. 캐릭터와의 만남은 가장 완벽한 타인을 가장 가까이 느끼는 시간이다. 어쩌면 그의 지인들도 모르는 그의 이야기를 나는 알고 있고, 나도 모르게 그의 편에 서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픔이 있는 캐릭터에게는 정이 많이 간다. 동정심과 공감이 섞인 마음으로 한 번 더 이해해주고, 한 번 더 편들어주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그렇듯 극 속의 캐릭터와도 마찬가지이다.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아픔을 마주치고 난 후에는 더는 남으로 남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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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상처가 있는 캐릭터가 무조건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에게는 상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처 하나 없이 자란 캐릭터가 얼마큼의 공감을 끌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살면서 감정적으로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고, 캐릭터도 결국은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나에게는 그 이야기에 얼마나 흠뻑 젖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도중에 '그래봤자 소설이지.'라는 거만한 생각이 들지 않을, 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캐릭터들의 아픔들은 바로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듯, 우리가 그렇듯, 사소한 상처와 극복되지 못한 아픔, 이겨내야 할 고통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볼 때, 나는 그 세계를 또 하나의 현실로 인식한다. 아픔 하나 없는 비인간적인 캐릭터는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극 중 캐릭터의 아픔은 그 자체로 극에 현실감을 넣어주고, 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창작자가 그 캐릭터의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고, 공감하고 있는지에 따라 극의 생동감 역시 결정될 수 있다. 창작자가 제시해주는 방향에 따라 독자는 캐릭터를 이해할 것이고, 그 맥락에 맞춰 감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사전_표지 입체.jpg

 
 
그렇기에 <트라우마 사전>은 창작자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트라우마 사전>은 캐릭터가 겪을 수 있는 118가지의 트라우마 종류를 소개하고, 이로 인해 캐릭터가 겪는 감정과 행동의 변화, 생각의 방향 등을 제시한다. 종류 소개에 앞서, 트라우마에 대한 개괄적 내용 역시 담고 있다.
 
<트라우마 사전>에 담겨 있는 아픔들은 전부 다른 색을 띠고 있다. 아픔이라고 전부 같은 것이 아니며, 상처가 만들어내는 신음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배신', '범죄 피해', '사회적 부정의와 개인적 고난' 등의 종류와 그 속에 담겨 있는 여러 상황은, 수많은 아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창작자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작품에 투영해 극을 이끌어 나갈 테고, 캐릭터의 아픔은 그 도구도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아픔을 선택하는지 역시 극의 질감을 다르게 만든다. 각 트라우마가 자극하는 독자의 감각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역경의 상황에서도 캐릭터가 사고, 행동할 수 있는 방향은 다양하고,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인물호를 그려낼 수 있다. <트라우마 사전>은 이 모든 가능성을 확장하고, 창작자에게 고통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창작자는 이 스펙트럼 안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해 캐릭터를 그려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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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가 주제를 비유적으로 제시하듯, 독자 역시 자신만의 감성으로 극을 소화해 낸다. 따라서 창작자가 다양한 아픔의 색채를 제시할 수 있다면,  독자 역시 조금 더 섬세한 감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세심한 감상이 가능한 극이 좋은 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저냥 좋은 스토리에는 단순히 "좋았다."고 하지만, 섬세한 감정적 자극을 받은 스토리에는 "~한 게 ~하고, ~가 떠올라 ~한 마음이 들었다."며 상세한 감상을 늘어놓는다. 내가 캐릭터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 그리고 그 아픔에 공감하여 나의 내면을 들여다봤을 때 가능한 일이다.
 
내가 캐릭터에게 공감하는 것은, 캐릭터와 같은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 아니다. 극 중 인물들이 겪는 일들은 때로는 너무 "극적"이고, 가능성이 희박한 일들인데, 그 일에 완벽히 공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픔이 제시하는 감정의 흐름과 일정한 맥락, 그리고 그와 내가 둘 다 "아프다는 사실"이 주는 동질감이 있다. 그 부분에서 가장 크게 공감한다.
 
창작자가 낳은 캐릭터가 독자의 나에게서 다시 태어나는 그 시간이, 어떤 색채로 물들여질지를 결정짓는 것이 바로 캐릭터의 트라우마와 그 극복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트라우마 사전>은 창작자에게 있어서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는 팔레트인 셈이다. 어떻게 칠해 나갈지는 창작자의 몫이지만, 분명 안 써본 색을 통해 더욱 깊은 감동을 전달할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트라우마 사전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

 
지은이
안젤라 애커만, 베카 푸글리시

옮긴이
임상훈

출판사
윌북

분야
글쓰기, 창작 작법
 
규격
152*220mm

쪽수
508쪽
 
발행일
2020년 4월 20일

정가 
22,000원
 
ISBN
979-11-5581-266-2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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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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