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이지 않지만 보일 수 있는 이 도시의 모습을 보아라 [도서/문학]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글 입력 2024.03.2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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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간을 부여하는 일이라. 본래 벗어나기 위한 행위는 그 공간에서의 탈출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화자는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공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그의 인생관과 연관 지어 본다면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의 세계는 저 멀리 있는 꿈과 같은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그의 앞에 놓여있는, 그래서 일부의 공간을 찾아서 마련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런 공간이 환상의 세계이자 이상향의 세계다. 누군가 꿈꾸는 세계, 영화처럼 그래픽 효과가 가득한 신비로운 세상, 그래서 상상하며 막연하게 그려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찾아내어 본인이 직접 그 공간에 환상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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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가상의 도시를 설정하여 그 안의 환상과 신비로움을 모두 담아냈다. 이 책에는 수많은 도시의 이름과 그에 따른 묘사가 두드러지지만, 그 도시의 이름과 모습은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수평과 수직이 맞지 않는 도시도, 진흙 속에 놓여있어 크게 소리쳐야 하는 도시도 모두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이다.


크기가 하나같이 똑같고 서로 다른 점이 없는 도시는 그곳의 사람들 역시 똑같은 삶을 산다. 그들의 사회나 부 역시 차이가 없이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직무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언쟁이나 동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도시는 유일하게 모든 면에서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똑같은 악센트, 똑같은 하품 모두 다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도시이다.


똑같은 것의 반복으로 인해 단조로워 보이는 도시와는 달리, 아슬아슬한 환경 속에서 전율을 느끼며 살아가는 도시 속 사람들도 존재한다. 깎아지듯 가파른 낭떠러지 사이에 있는 도시는 허공에 걸려 있다. 사람들은 나무로 이어 만든 다리 위로 걸어 다니는데 이 다리 밑은 낭떠러지여서 이동할 때는 밧줄을 꽉 잡고 다녀야 한다. 듣기만 해도 위태로워 보이는 도시의 모습으로 인해 사람이 살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불안에 떨며 하루를 연명하는 태도로 사는 것도 아니다. 낭떠러지 위에 걸려 있는 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모습은 다른 도시에서의 삶보다 확실하다. 도시를 지탱하는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견뎌낼 것임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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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 속의 도시는 생각한 것만큼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아 보인다. 으리으리한 궁궐 같은 집에 편의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으며 아무 걱정 없이 살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다.

 

책에 소개된 수많은 도시는 각각의 결함이 있으며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늘 존재해왔다. 다소 진부해보이고 위험해 보일지라도 그곳의 거주자들은 자신만의 방식과 확신을 가지고 도시에서의 삶을 영위해왔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기에 좀 더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맛보고자 이 책의 많은 도시를 살펴봤겠지만, 이곳의 세계도 마냥 휘황찬란한 모습만이 아님을 확인하니 왜인지 마음이 놓인다. 완벽을 지향하며 완벽으로 향해갈수록 그리고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할수록 완벽에 가까워질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말처럼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삶이야말로 유토피아적 모습에 가깝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이 퍼즐 조각 맞추듯 완전하게 들어맞는 삶이란 어쩌면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행과 무질서 속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서고 그 속에서 질서와 행복을 발견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상향의 세계로 향하는 발판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도시의 독특한 모습은 이런 점을 끄집어내어 자신을 비롯한 타자와 세계에 대해 궁리하도록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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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퇴락해가는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에게 여행자인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여행한 도시의 모습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때 폴로가 설명하는 도시들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여러 도시의 모습들이다. 


그들이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황제 쿠빌라이는 여행자 폴로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황제가 봐 온 폴로는 현실 속 정원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언제 이런 도시들을 방문했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다.


황제의 말에 폴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보고 행한 모든 것은 이곳과 똑같은 고요와 똑같은 어스름,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똑같은 침묵이 지배하는 정신의 공간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정신을 집중해 생각에 빠져 있을 때면, 저는 늘 저녁 이 시간 이 정원에, 폐하의 면전에 앉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정원은 내리감은 우리 눈꺼풀의 그늘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중략) 어쩌면 이 세상에는 쓰레기로 뒤덮인 황량한 땅과 칸 왕궁의 공중 정원만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나누어 놓는 것은 우리의 눈꺼풀이지만 어떤 게 안이고 어떤 게 밖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폴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 그것의 경계는 모두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싶은 듯하다. 이상과 현실을 가르는 것은 우리의 판단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어떤 것이 현실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이상 세계란 무엇인가. 폴로가 보고 관찰한 환상 속 도시의 모습도 현실과 똑같은 고요와 어스름 같은 평온함과 의미를 같이하듯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공간도 깨닫고 보면 이상향과 별다를 게 없는 세상일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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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탈로 칼비노는 내용 전반에서 단 한 개의 해석만을 도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책이란 독자가 들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기도 하는 미지의 세계다. 그러다가 발견한 출구는 하나일 수도 여러 개일 수도 있으나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책이란 출구가 몇 개인지보다 밖으로 나갈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하나의 해석만을 염두에 두지 않길 바란다. 책에 있는 수많은 도시 세계는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언제 어디서나 읽을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집에서 쉴 때 혹은 도서관에서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읽을 것을 권한다. 그곳이 어디든 도시의 세계는 우리를 매료하며 그곳의 사람과 형태에 따른 궁금증을 유발할 것이다.

 

그리고 이 도시가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적 세계가 될지, 우리의 삶과 별 다를 바 없는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도시가 될지는 우리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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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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