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차의 시작과 현재 - 처음 읽는 보이차 경제사

글 입력 2020.06.0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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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무의 원산지인 운남에서 시작된 보이차가 어떻게 중국차의 인기 아이템이 되었는지 역사적 과정을 다룬 차 문화사다. 저자는 보이차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블로그 ‘구름의 남쪽’을 운영하는 차 전문가다.


전작 <보이차의 매혹>이 운남농업대학교 다학과에서 공부한 지식과 보이차를 직접 제조한 경험, 현장 답사를 통해 보이차가 홍콩까지 진출한 과정을 살폈다면 이 책에서는 홍콩으로 간 보이차가 어떤 부침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집중했다.



보이차를 처음 접한 건 영상 매체에서였다. 드라마인가 영화에서 고급 선물로 보이차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시기가 우리나라에서 보이차가 퍼지기 시작한 때일까? 이 이후로도 보이차는 고급차 이미지를 한동안 유지했다.


지금에서야 마트에서도 흔하게 보이차 티백을 찾을 수 있지만, 내가 처음 본 보이차는 동그란 덩어리 형태였고, 녹차나 곡물차에 익숙했던 터라 모양에서부터 낯설었다. 오래 보관할수록 맛이 좋다니 왠지 차의 와인 같단 생각도 했다.


내가 접한 계기 때문일까, ‘고급 차’라고 하며 다른 무엇보다 보이차가 떠오른다. 그러니 당연히 책의 제목인 ‘처음 읽는 보이차 경제사’가 눈에 들었다. ‘비싼 거니까 경제적으로 이용했겠지, 근데 어떻게?’ 하는 의문에서 흥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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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보이차의 시작인 운남에서 출발한다. 운남은 중국의 대표적인 차 산지 중 한 곳으로 운남 사람들은 먼 엣날부터 차를 마셨다. 단순히 차를 음료로 소비한 것이 아니라, 차 나무를 존경하고 숭상했다. 운남의 소수민족 덕앙족의 창세신화에 따르면 차가 만물을 만들고 세상을 구했다고 한다.


그 운남에 차가 있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 황제가 남조국(운남에 위치한 독립국가)의 정보를 수집한 보고서인 ‘만서’에 등장한다. 운남의 어느 지역에서 차가 나고, 운남 사람들이 어떻게 차를 마셨는지 나와있다.


세계 최초로 차 전문서를쓴 육우의 책에는 운남이 나와있지 않고, 송나라때 기록을 살펴봐도 운남차에 대한 정보는 얻기 어렵다. 명나라 때 사조제라는 사람이 운남 사람들이 차를 따고 만들고 우리는 법을 모르니 차가 없는 셈이라고 했는데, 운남 사람들이 보차(보이차와 혼용하던 표현)를 마신다며 쪄서 덩어리로 만들었단 표현이 나온다.


중국의 오랜 차역사를 지나 드디어 운남의 보이차가 등장한다. 보차가 아닌 보이차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건 1664년 완성된 학자 방이지의 ‘물리소식’이라는 책이다. 사조제와 마찬가지로 보이차를 쪄서 덩어리로 만든다고 서술한다. 기록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혹평까지 들었던 보이차가 조정에 진상된 것은 청나라 강희제 때 일이다.


좋은 집안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라 정해진 수순처럼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 것 같은 보이차인데 저 멀리서 제대로 된 기록 없이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더 궁금해졌다. 얘가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유명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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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드디어 보이차 효능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과 소고기와 양고기의 독을 없애며, 가래를 삭히고 기를 아래로 내리고, 창자를 긁어 배설이 잘되게 한다는 내용이 조학민의 ‘본초강목습유’에 등장한다.


1735년부터 보이차 7편이 한 통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부피를 줄이기 위해 뭉쳤던 터라 모양이 제각각이었고, 이 때문에 검문소에서 허가증과 실제 무게를 대조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이어졌다.


차의 모양과 무게를 통일하는 ‘운남차법’이 생기면서 외형이 둥근 모양으로 바뀐 것으로 추측한다. 보이차에 대한 외양을 보다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건 17세가 파견한 중국 사절단의 부단장 조지 스탠튼 훈작의 ‘중국출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는 잎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 공처럼 만든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공처럼 생긴 차가 가장 고급이라고 한다.


운남의 보이차가 주변 나라에 전파된 것은 회족과 한족의 치열한 갈등이 이어지던 중, 회족을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오자 회족 두문수가 봉기를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운남 곳곳이 전란에 휩싸이고, 만들어진 차가 나가지 못해 판매에 지장이 생기자 차 상인들이 라오스, 베트남으로 차를 가져갔고, 라오스와 베트남에서 홍콩, 마카오, 동남아의 화교들에게 팔려나갔다.


예쁘고 맛이 좋은 고급 원료만 사용한 병배차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원차들 판매가 부진해졌고 이는 사천 시장 퇴출로 이어졌다. 그러니 상인들은 더욱 홍콩, 동남아 수출에 주력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거친 잎으로 만든 차를 선호했다. 그러다 계절에도 상관없고 한 번에 많은 양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수출 루트가 개발되었고, 맹해는 보이차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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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거친 잎으로 만든 저렴한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고, 보이차는 땀을 많이 흘리고 나서 마시면 갈증과 더위를 풀어주는 효과로 육체노동 종사자들이 좋아하였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의 보이차가 인기였던 것은 아니다. 홍콩 사람들에게 운남에서 온 보이차는 맛이 너무 강해서 상인들은 차를 숙성시켰는데 발효에 너무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자 보이차를 찌기 시작했다.


1973년, 급하게 운남성의 보이차를 발효해서 홍콩에 공급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모차를 쌓아놓고 물을 뿌리면 약간의 미생물이 생기는데, 이 미생물의 성장과 번식을 억제하면 단기간에 발효를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수출된 보이차는 고급품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먹는 저렴한 생활차였다.


생활차였던 보이차에 현란한 문화의 옷을 입힌 건 대만이었다. 오래되어도 마실 수 있고, 오래될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마실 수 있는 골동품’으로 호기심과 동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등시해가 1995년 쓴 ‘보이차’라는 책으로 대중적으로 보이차가 알려졌고, 이는 중국에서의 보이차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다 투기세력이 붙고, 보이차는 투자대상이 되었다. 투기세력이 빠져나갔지만 보이차 시장은 무너지지 않았는데, 중국사람들이 새로운 소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홍콩인에게는 저렴한 차였지만 중국사람들에겐 비싼 차로 인식이 되었고, 이런 니즈에 맞춰 보이차는 고급스러운 상품이 되었다. 귀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은 소비증대를 가져왔고 소비증가에 따라 자연스레 값이 상승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아는 보이차이다.


그렇다. 내가 아는 고급스러운 보이차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고급품이었다. 다수의 입맛대로 움직이다보니 기회를 잘 잡아 출세한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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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보이차 경제사

-보이차 애호가라면 알아야 할 역사 이야기-


저자: 신정현


출판사: 나무 발전소


분야: 요리_역사 에세이


규격: 신국판(152*215)


쪽수: 368페이지


발행일: 2020년 04월 20일


정가: 20,000원


ISBN: 979-11-86536-68-1 13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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