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존의 편견을 뒤엎다 : [영화] 그린북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힌 차별과 배제속에 서로에게 손을 내밀다
글 입력 2020.06.0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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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른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천재 피아니스트로 고상한 말투와 매너 있는 행동이 몸에 배어있다. 그에 비해 다른 한 명은 운전사로 다혈질에 솔직하고 주먹이 앞서는 남자다. 둘은 피부색 또한 다르다. 닮은 점이라곤 하나 없는 두 사람이지만 미국 남부 콘서트 투어를 위해 8주간 함께 지내며 거치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긴밀한 친구관계가 된다.

 

위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이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그린북>이다. 영화는 기존의 편견을 뒤엎으며 시작한다. 대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글을 읽고 백인이 피아니스트고 흑인이 운전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이와 같은 인종차별주의는 당연하게 반인륜적이라 여겨질지언정 당시에는 아니었다.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의 미국은 공민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음에도 실질적으로 남부의 여러 주는 적용되지 않았다. 백인이 고용주이고 흑인은 고용자인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기였다.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힌 차별과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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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올라갈 때는 자유를 느끼는데, 무대에 내려오면 다시 현실을 마주하지. 나는 백인들 틈에 들어가지도 흑인들 틈에 끼지도 못해. 나도 내가 흑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 영화 <그린북> 돈셜리의 대사 中

 

1962년 뉴욕 브롱스에 사는 토니 발레롱가는 나이트클럽 경호원으로 일하며 문제가 생길 시 주먹으로 해결하던 남자이다. 잠시 실직하고 구직하는 중 하늘로부터 재능을 이어받은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운전사로 취직하게 된다. 계급과 신분 그리고 취향과 성격마저 정 반대인 두 사람은 남부, 그러니까 딥 사우스(남부 연방군에 속했던 지역)로 콘서트 투어를 위해 8주간의 긴 여정을 함께한다. 하지만 그 여정은 쉽지 않다. 짐크로법과 인종분리정책으로 인종차별이 만행하던 미국 남부에서는 마치 선이 그어져 있는 듯하다. 아무리 실력이 세게 정상급이더라도 피부색이 검다면 그는 그 선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단지 피부가 검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영화의 중간쯤 길가에 차가 멈추었고 토니 발레롱가와 돈 셜리가 내린다. 그리고 반대편 농가에 흑인 노동자들이 백인 기사를 데리고 있는 돈 셜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들은 돈 셜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시선과 셜리의 시선이 마주했을 때 당당하고 기품 있던 셜리의 눈은 흔들린다. 백인을 고용하는 흑인을 보고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들 속에 그는 다시금 불편함을 느낀다. 돈 셜리의 모습은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 같다. 하지만 그가 남부 투어를 결정한 것은 분명 그 시선을 이겨내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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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평생 모욕을 당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한 번을 못 참아요?"


- 영화 <그린북> 돈셜리의 대사 中


 
어느 비 오는 날 일이 터졌다. 토니가 자신을 '깜둥이 하수인'이라고 모욕한 경찰관을 때려 토니와 셜리가 유치장에 갇힌다. 하지만 셜리가 지인이었던 법무장관에게 도움을 청해 풀려나게 된다. 토니는 이 상황이 통쾌하지만 셜리는 불편하다. 셜리는 피부색 하나만으로 평생 모욕을 당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반해 토니는 말 한마디에 불쾌함을 느껴 주먹을 썼다.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불평등의 문제들에 대해 기득권자들은 알지 못한다. 늘 차별을 받아온 이들이 있기에 자신들이 누릴 수 있었던 특혜가 있었다는 것에 오히려 반발할 뿐이다. 자신들은 누린 것이 하나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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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레스토랑은 유색인종 출입금지입니다."


- 영화 <그린북> 레스토랑 매니저 대사 中


 

크리스마스이브가 되고 돈 셜리의 투어 콘서트도 마지막 연주를 앞두고 있었다. 이 연주만 끝나면 토니 또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연주장인 레스토랑에서는 유색인종 출입금지를 운운하며 돈 셜리의 출입을 막아선다. 레스토랑의 행사를 위한 연주자가 연주는 가능하나 피부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식사는 할 수 없었다.

 

유색인종.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보면 황색, 동색, 흑색 따위의 유색 피부를 가진 모든 인종으로 백색인 조을 제외한 모든 인종을 이르는 말이다. 보는 바와 같이 백인을 디폴트로 한 말로 상당히 인종차별적이다. 이 언어라는 부분에서부터 깊이 박혀 있는 차별적인 관점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견고하게 그 사이(인종들 간의)의 간극을 벌려놓고 있다.

 

 

 

손을 내밀어 서로를 마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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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두 사람의 관계일 것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고용주(돈 셜리)와 피고용자(피고용자)로 이루어진 관계이나, 피부색이라는 근원적인 요소로 인해 역접 된 상황을 맞이한다. 물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듯 어떤 요소로도 사람을 상 하 관계로 나누는 것을 옳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은 지위와 상반된 상황이므로 반드시 그 부분을 주시해서 보아야 한다.

 

백인 하급 계층과 흑인 상급 계층처럼 편견을 뒤엎는 두 인물을 나타내는 방식은 가히 독보적이다. 흑인이지만 클래식을 전공했고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아 성공한 셜리가 백인인 토니를 운전사로 고용한다는 설정뿐 아니라 언어 예절이나 지적인 측면에서 셜리가 토니를 고쳐주고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편견을 배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변화하고 변화된 자신을 받아들인다. 토니의 경우 이전에는 흑인들을 보면 표정을 굳히거나 한 번 쓴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눠 먹으라고 한 음식을 주지 않는 등의 사소한 차별들을 해왔다. 하지만 셜리 박사가 피부색 그 하나만으로 갖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것을 보고 그는 이런 행동이 얼마나 몰상식한 행동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더불어 돈 셜리 덕분에 아내에게 근사한 편지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돈 셜리 또한 토니를 만나고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그는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많지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삶에 늘 혼자였다. 자신의 감정들을 쏟아낼 곳 하나 없이 혼자 감내하고 자기 방어에 급급했다. 하지만 투어를 시작하며 그런 그의 곁에 다소 막무가내이지만 묵묵히 셜리 박사를 지지해준 토니가 있었고 그는 마침내 누구에게도 내주지 못한 마음을 토니에게 내어준다.

 

둘은 분명 성격도 일처리 방식도 매우 상이하지만 둘이 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르 존중'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방법은 다르더라도 서로를 위했기에 하나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

 

영화 <그린북>은 위와 같이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시절에 피부색에 따른 차별 없이 인간대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화합의 장면들은 가히 아름답고 정겹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시점에서  약 60년이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한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이 뿐 아니라 지난 2월 미국 조지아 주에서 조깅을 하다 백인 부자에게 피살당하게 된 흑인 청년의 일도 있었다.

 

차별과 분리가 만연했던 시기를 지나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선출된 것과 같은 역사적인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많은 이들은 그 사건을 기반 삼아 평등하고 조화로운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피부색을 핑계로 비상식적인 구분 짓기를 하려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미국에 만연하고, 이를 통제하는 법 또한 미비하다. 영화 그린북은 이 시점에서 돌아봐야 할 아픈 과거의 기록이다. 그 때를 기억하며 비윤리적 차별의 탄성에 끌려가지 않도록 우리는 되짚고 다시 나아가야한다.

 

 

[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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