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20.05.18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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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희미해지는 것들을 끈질기게 추적해 기어코 관계 맺게 해주는 르포르타주, 몰랐던 현실을 마주보고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관계 맺게 해 줄 두 권의 르포르타주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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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아주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또 어느 누구도 괴롭힐 힘을 갖지 못한 사람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인용된 시몬 베유의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현장 실습생의 죽음’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한 줄의 이름으로 축약된 김동준 씨, 이민호 씨, 홍수연 씨, 김동균 씨, 문송면 씨, ‘-양’, ‘-군’들의 삶을 한참 늦어서 마주 보았다.


면면에 깃들었던 웃음과 절망, 생활을 고단하고 기쁘게도 만드는 노동, 모든 가능성을 납작하게 누른 적재프레스 같은 세상을 실감했다. 남겨진 사람들이 만든 슬픔의 공동체에 감탄하다가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구조를 탓하고 방안을 미루고 조금 동요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나는 수많은 김동준들을 죽게 한 사회와 닮아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는 일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앞에 손쉽게 무력해지는 나와 내 공동체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다.

 


청(소)년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인간도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소모품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의 몸짓이다. 이미 끝난 일을 기억해서 무엇을 바라느냐는 말에 이 책은 답하고 있다. (최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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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성착취 피해 여성의 폭력의 기록을 담은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20년간 성노동에 종사를 했던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논픽션이다. 읽는 내내 눈과 마음이 아팠다.


공고한 카르텔 안에서는 자유도 선택도 무의미하다는 사실 뼛 속 깊이 깨달았고, 상대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 성매매 여성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폭력을 감내하며 살고 있는지 면면이 알게 되었다.


더 잘 살아서, 가난에서 벗어나 부양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성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한 선택은 거대한 권력 구조 안에서 짓밟힌다. 그저 물건 마냥 취급되어 쳇바퀴 돌듯이 업소를 전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나는 책을 덮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이 여성은 성매매에서 벗어난 지금도 무자비하게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때문에 운다. 나는 그저 이 여성의 용기를 똑똑히 바라보는 일밖에 할 수 없는 것에 화가났다.


성매매 여성 대한 편견도, 그 일을 그저 선택한 직업이라는 가벼운 말도, 즐기는 거 아니냐며 뭐가 잘못되었냐는 무례하고 멍청한 지적도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벽에는 장기매매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전화번호를 적어오지 못해서 머릿속으로 외워 집에 돌아와 수첩에 적어놓았다. 다음 날 장기를 팔면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장기매매 스티커에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장기를 팔아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마저도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팔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전부 팔아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은 나 스스로를 더 원망하게 만들었다. 부모 잘못 만난 죄, 강간을 당한 죄, 임신을 해서 차인 죄, 모든 것이 내 죄였다. 더 비참한 것은 내일이 없는 이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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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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