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화예술의 도시 볼로냐가 인증하는 일러스트를 어른이의 관점으로 보다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전시]

열린 이미지 속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전시관람
글 입력 2020.04.2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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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특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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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지난 2000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2006년엔 유네스코 ‘음악의 도시’로 선정되었던, 문화예술이라는 씨앗을 틔우기 좋은 비옥한 환경을 지닌 매력적인 도시 볼로냐에서 매년 개최되어 왔다. 기원전 3000년 에트루리아 문명을 싹틔우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을 소유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삶의 질이 높은 이들이 모여든 이 도시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일러스트 원화전을 개최해온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이 전시가 유독 눈길을 끄는 요소는 아동 도서, 동화에 들어가는 삽화 일러스트를 선정해왔다는 점이다. 모든 일러스트 과정이 수월하진 않겠지만, 필자는 아동 도서 일러스트는 더욱이 많은 것을 고려해야하는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매체가 고려해야 하는 점은 어린이들은 아직 날 것 상태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전시에 선정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자질로 ‘열린 이미지’를 제시해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지를 크게 보았다는 점도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창작물로서 수많은 항목을 검토받고 선정되었을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속 일러스트들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나 인상깊었던 것은 일러스트에서 보여지는 편견 없는 시선이었다. 흔히 필자를 포함한 어른들은 어린이들은 그저 순수하고 좋은 것만 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가치관을 좁히는 것이라는 관계자 인터뷰를 보고 필자 또한 옅게나마 지니고 있던 편견을 인지할 수 있었다. 전시된 일러스트들의 주제는 다양했지만, 서슴지 않고 현대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크리피한 이미지를 사용하는 일러스트 등 아동 도서 일러스트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도들이 인상깊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을 둘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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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이 자신들이 키우는 반려 동물들에게 이국적인 상상 속 동물 역할을 하도록 하여 집 전체를 동물원으로 만든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일러스트 작품이다. 어린이들은 반려 동물뿐 아니라 자신들 또한 두꺼운 코트를 입고 곰 흉내를 내는 등 정말로 온 집안을 상상력을 통해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한 상상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껴볼 수 있다. 집안의 식물은 정글이 되고 여우는 늑대가 되고 강아지는 사자가 되는 말도 안되는 일을 어린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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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상상력을 자극하는 또다른 작품이 있다. 어린이 동화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백설 공주’를 해체적인 느낌의 조형미와 색체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언뜻 보면, 벽지 무늬 같기도 하고, 토끼를 따라가 굴에 들어간 엘리스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백설 공주’이야기에 대한 이미지를 단순한 조형으로 해체한 이 작품은 빌 게이츠의 말처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해력을 시험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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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필자의 눈길을 이끈 것은 바로 이 ‘외계 국가’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지하철에서 휴대폰의 작은 화면만이 세상의 마지막이라도 되는듯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들여다보는 승객들을 다소 크리피한 방식을 이용해 비판하고 있다. 마치 태초의 지구에서나 살았을 법한 미생물로 승객들의 얼굴을 표현하여 더 이상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는 의지도, 타인에 대한 관심도 없는 현대인들을 진화적 퇴화 생물처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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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전시의 시그니처 작품과도 같은 마에다 요시유키의 ‘각도 안에 숨겨진 물고기’ 작품이다. 간단 간단하게 자를 대고 그린 것만 같은 그림 속의 물고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 속에 각도를 숨겨두었다.


삼각형 몸매를 지닌 물고기들은 피자 한조각이 되기도, 고양이 귀가 되기도, 꼬깔콘의 머리가 되기도, 화살표가 되기도 한다. 필자는 이 작품을 접하고 필자의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각도들이 숨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각도들을 숨죽여 들여다 보다 보면 놀랍게도 새로운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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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뿐인 세상에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 때 흑백의 어둡고 음울함이 싫었던 누군가가 빨간 사과를 그린다. 흑백이었던 사과는 그림 속에서 빨간 색으로 칠해졌다. 너도나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흑백 세상에 색체가 입혀진다. 현대인들은 ‘왜?’라는 말을 잘꺼내지 못하는 전염병에 걸린 것 같다.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상함을 느껴도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색체 없는 세상이 이상하지만 아무말도 꺼내지 않는 세상에서 먼저 붓을 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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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안에는 몇 십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 걷고 있는 사람….. 이들을 꼼꼼히 살펴보다 보면 문득 이 안에 몇 십가지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마다의 일정과 사연을 가지고 잠시 한군데에 모여 있는 사람들. 군중이라 불리는 이들 개개인은 각자 어떠한 이유로 이곳에 모여들게 되었을까? 그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좀 더 재밌게 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전시와는 다른 재미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전시에서 관람객이 더욱 녹아들 수 있었던 포인트 두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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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바로 이 ‘스템프 투어’이다. 전시 등의 문화예술을 활발히 관람하는 이른바 Z세대들의 흥미를 충분히 끌어들이는 요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맛집 도장 깨기 하듯, 전시장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스탬프를 찍어오면 소소한 보상으로 엽서가 제공된다. 모든지 직접 오감을 이용해 체험하고 그것을 체험해보았다는 ‘인증’을 남기고 싶어하는 Z세대 관람객들에게 스탬프 투어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더불어, SNS에 스탬프가 찍힌 도장판을 인증하는 관객들의 행위는 또다른 관람객들을 이끌어 들이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마케팅 효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스탬프 투어는 전시를 다녀온 이후에도 스탬프가 찍힌 용지를 들여다보며, 전시에서 느꼈던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리되지 못한 기억들은 자연스럽게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필자 또한 애써 시간을 들여 전시를 보고 오고도 어떤 전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때가 있어 아쉬웠던 경험이 있다. 스탬프 투어는 전시 관람 이후에도 이를 정리하고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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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따라 벽에 걸린 작품들을 보다 보면, 전시장 곳곳에 이렇게 전시용 도서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경우, 일러스트 작품만 전시해 두는 것이 아닌, 이렇게 직접 그 일러스트가 들어간 도서를 관람객들에게 제시한다. 전시용 도서뿐 아니라, 직접 열람까지 해볼 수 있는 도서가 뒷 편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직접 도서를 펼쳐 일러스트를 확인해볼 수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정체성을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상기시켜 준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이 그저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닌, 도서에 삽입되는 일러스트들임을 느끼면서 관객들은 더욱 생생하게 전시를 관람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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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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