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학잡지라고 겁내지 말아요 - 스켑틱 Skeptic Vol.21

글 입력 2020.04.0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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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없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 내가 잘 모르거나 그간 관심을 별로 갖지 않아서 배경지식이 없는 그런 분야 말이다. 그럴 때는 상당히 난감해진다. 왜냐하면 모든 비판적 사고는 텍스트에서 하는 말의 요지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해당 주제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데, 내 지식이 백지에 가깝다면 아무 비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허둥지둥 텍스트를 흡수하기 바쁠 따름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본투비 문과생’으로서 과학이나 수학과는 학창시절부터 담을 쌓고 살아왔던 사람이다. 내신 성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이겨내야 했던 ‘난관’이었을 뿐, 설마 내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자의적으로, 본격적으로 과학책을 읽을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나라고 과학 교양서를 전혀 들춰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분야보다 빈도가 확연히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섣불리 일을 벌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에도 아트인사이트와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이런 양질의 잡지를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이번에도 내 리뷰는 ‘알못’이 하는 리뷰가 될 운명이지만, 사실 이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는 건 별로 없어도 역사, 철학, 종교, 과학 무엇이 되었든지 궁금한 건 참 많은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여러 독서 유튜버들에게서 이 잡지 <스켑틱>을 소개받고 흥미를 가지게 된 이들도 꽤 많을 것으로 본다. 나 역시 북튜버 김겨울 님의 추천 영상을 보고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비록 이렇게 리뷰를 쓸 입장이 될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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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내가 읽고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기술할 의무가 있다. 모든 세부적인 아티클을 다 다룰 수는 없기에, 큰 줄기를 따라가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어떤 지식과 생각거리를 얻어갈 수 있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NEWS & ISSUES  :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


 

News & Issues 코너에는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하나는 “종교는 어떻게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가” 를 주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자주 들어봤거나 혹은 전혀 낯선 종교들, 그러니까 사이언톨로지, 이슬람교, 힌두교, 일부 기독교 종파들과 그들의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골치 아픈 건강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당장 할례와 같은 비상식적인 종교 관습이 존재한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악습은 어느 종교에나 존재하며, 그것이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비판이 주요 골자이다.

 

또 다른 글인 “인공지능으로 본 영화 속 성별 편향” 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성별 편향 검증 방법인 ‘벡델 테스트’를 보완한 인공지능 테스트를 제안한다. 특히나 마지막 단락에서 영화의 미래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벡델 테스트와 달리 인공지능을 통한 분석은 다차원적이며 빠르고 정확하다. 이 떄문에 인공지능을 통한 영화분석 기술들은 넷플릭스와 같이 디지털화된 영화 소비 플랫폼과 결합해 단순히 영화의 등급을 평가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 자첼르 바꿀 가능성이 있다.


-28p, 이병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부교수


 

이러한 두 편의 글에서 알 수 있듯 <스켑틱>은 멀게만 느껴지는 담론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또한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Cover Story : 코로나19,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해



이번 호의 메인 토픽이라고 할 수 있는 코로나19, 그리고 전염병에 대한 글들이 다섯 편 실려 있다. 이 구역은 <스켑틱>에서 가장 흥미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코로나19로 일상이 마비된 상황에서, 도대체 이놈의 전염병은 왜 등장할 때마다 모두가 처음인 것처럼 허둥지둥대는지, 이를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구역이다. 개인적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예측하는 통계를 접했을 때는 수식 폭격을 견뎌내지 못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현 상황을 친절히 분석하고 있다.

 

“전염병과 사회적 혐오의 관계”를 다룬 글이 매우 재밌었는데, 이는 아마 내 평소 궁금증과도 연관이 있는 주제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왜 우리는 벌레를 보고 역겨움을 느낄까? 학습된 반응이라기에는 정말이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지는 그 혐오감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글에 따르면 이는 그 벌레들이 우리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질병의 징후인 온갖 분비물들에 본능적인 역겨움을 느끼는 것도 생존을 위해 진화한 우리의 면역계일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사람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 남아 있는 과거의 잔재를 앞으로의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문제다.


 


Column : 과학의 이름으로 돌아볼 수 있는 지금의 이야기들



메인 토픽 뒤에 연속적으로 실려 있는 칼럼들 중 특히나 인상깊게 읽은 두 편의 글이 있다. 하나는 “우리 안에 천사와 악마는 없다” 라는 글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악하다고 하고, 반대로 이타적인 사람이 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타적인 행위는 생존에 불리한 행위가 아닌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글에서는 우리가 선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회적 본능을 설명하는 것으로 답한다. 타인을 도움으로써 서로간에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본능은 또한 내집단과 외집단을 차별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다행히 우리는 그런 ‘우리’의 테두리를 유동성 있게 조절할 수 있다. 선악 판단 역시 인간의 평화로운 생존을 위해 진화된 기제라는 것이 참 재밌지 않나.

 

사회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의 칼럼 역시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성기능 장애가 여성에게 더 많다는 연구의 진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흔히 객관적 근거의 절대기준처럼 여겨지곤 하는 통계 조사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여성 성기능 장애’로 통칭되는, 지나치게 모호한 용어가 이전에도 그랬듯 의약품 판매를 위해 쓰이는 실태이다. 이를 통해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응답률이 과연 진실을 보장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FOCUS : 신과 악의 공존, 정답은 없다지만



마지막에 실려 있는, 신의 존재론에 관한 논쟁은 굉장히 흥미진진했지만, 한편으로 나의 수준에서 이해하기 수월한 담론은 아니었다. 그래서 신이 있다는 걸까, 없다는 걸까? 과연 자연과학이 신의 이야기를 다룰 수 있고, 신학이 과학의 이름을 빌려 신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우리를 둘러싼 드넓은 우주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러한 우주의 창조자로서의 신이 만약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의 의문이 커져가는 것과 반대로 지식인들은 열띤 토론을 이어간다. 신의 불투명성 논증, 진보적 무신론과 신-옹호파 무신론 등의 이론이 오가고 이들은 정말이지 진지하다. 문득 이 세상의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탐닉하는 철학, 신학, 과학은 전부 별개의 학문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사람이라는 동물이 의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바로 학문인데, 이들에게 신에 대한 논증이 중요한 것 역시 이런 의미에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

 

<스켑틱>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인상을 요악하자면, 마치 훌륭한 세미나에 참석한 기분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더 뻔한 비유로는 만찬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 책은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인 코로나19를 메인 토픽으로 시작해, 나조차도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저명한 과학자들(스티븐 핑커, 김상욱 등)의 칼럼이 이어지고, 신과 악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논쟁으로 마무리되는 커다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방대하고 고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더불어 이 잡지가 과학, 정확히는 과학적 회의주의를 다루면서 충분히 나 같은 독자들에게도 읽힐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지나치게 복잡한 이론적 배경지식 없이도 심도 있는 과학 아티클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제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이라고 겁먹지 말고,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각주로 달린 논문을 찾아읽는다면 어떤 과학 교양서보다 많은 지식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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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켑틱 21호
- Skeptic Vol.21 -


엮음 : 스켑틱 협회 편집부

출간 : 바다출판사

분야
기초과학/교양과학

규격
170x250mm

쪽 수 : 268쪽

발행일
2020년 03월 06일

정가 : 15,000원

ISBN
977-2383-9840-00-01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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