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금자씨와 마츠코의 '가족 형성 실패' 경험,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영화]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글 입력 2020.03.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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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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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는 2005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계의 걸작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인 2007년에 개봉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하 <마츠코>로 표기)도 일본 영화 작품들 중 주목 받는 수작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워낙에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대사는 모두 꿰고 있을 정도이고, <마츠코>는 독특한 색감의 영상미와 파격적인 서사가 선사하는 정서적 충격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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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아이유'의 '블루밍'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하는 집은

<마츠코>의 집을 오마주한 것이다.

 

 

언뜻 봐서는 그다지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작품을 나란히 견주어 보면, 그것들이 지닌 공통분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두 작품 모두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교도소에서 13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33세의 ‘금자’의 이야기가, <마츠코>에서는 주인공 ‘마츠코’의 사후에 그녀가 1947년에 태어나 2001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녀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또한 두 여성 인물은 영화 속에서 큰 불행을 겪게 되는데, 그 불행이 ‘가족 형성 실패’ 경험으로부터 초래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가족 형성 실패 경험이란 말 그대로 그녀들이 가정을 꾸리려고 시도했거나 그래야 마땅한 조건 속에 놓이게 되지만, 그것이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그 가족 형성 실패 경험은 두 여성이 가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는 것을 전단계로 두고 있다. 비보호의 상태에서 가족 형성까지 실패한 두 여성은 인생의 나락을 걷는다.


금자와 마츠코가 걷는 불행의 길은 서로 닮아있지만 다른 결말을 맺는다. 이 글에서는 두 여성 인물이 겪는 유사한 경험을 고찰하고 그 이후의 행보에서 발생하는 차이점에 대해 비교 분석할 것이다.

 

 

 

가족 형성 실패의 전단계: 비보호 상태로의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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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코는 카와지리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아픈 여동생 ‘쿠미’에게 가족의 관심을 빼앗긴 채로 자라난다. 정확히는 ‘빼앗겼다고 느끼며’일 것이다. 아픈 쿠미에게 우선적으로 가게 되는 애정과 관심에 마츠코는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며 성장하고, 그 결과 마츠코는 성인이 돼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된다.

 

마츠코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한 중학교의 교사가 된다. 교사로 부임하며 마츠코는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동료 남자 교사와 애정전선을 형성하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으로 대우받기도 한다. 그런데 학교 수학여행 때, 그녀가 차곡히 쌓아온 좋은 평판은 완전히 뒤집혀 버리게 된다. 그녀의 제자 ‘류’가 저지른 절도를 자신이 뒤집어 쓰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일로 인해 학교에서 해고까지 당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마츠코는 청천벽력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과 이제껏 집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함께 폭발하여 여동생에게 분풀이를 하다가 그녀를 죽일 뻔하고, 그 날로 집을 완전히 나가게 된다. 아무리 그녀가 집 안에서 소외감을 느껴왔다지만 집이 없는 생활은 차원이 다른 비보호의 상태였다. 누군가와 살지 못하면 유흥업소밖에 몸을 맡길 곳이 없는 세상에서, 마츠코는 작가 지망생 ‘야메가와’를 만나 그와 위태로운 동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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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는 <마츠코>에서처럼 그녀의 전 생애가 다루어지지 않고 몇 개의 회상 장면을 통해 그녀의 사연이 간략히 제시된다. 영화에서 나오는 회상 장면 중 가장 과거의 시점은 그녀가 고등학생일 때이다. 고등학생 때 그녀는 임신을 하여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교생이라는 신분으로 그녀와 만났던 ‘백한상’에게 전화하여 임신 사실을 알리며 그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의아한 점은 그녀는 미혼모가 될 처지에 이르렀을 때 백한상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했다는 점이다. 그녀가 백한상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엄마 집은 좀 그래요, 그렇다고 아빠한테 갈 수도 없구요.”라고 말하는 걸로 비추어 봤을 때 금자의 부모님은 이혼했거나 별거를 하고 있을지언정 부재한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도 금자는 백한상에게 의탁하기로 결정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건대 금자와 부모님 사이에 유대 관계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금자는 임신임을 깨달은 동시에 비보호의 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백한상에게 찾아가며 불행이 시작된다.

 

마츠코와 금자는 둘 다 본격적인 불행이 시작되기 전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기 힘든 ‘비보호 상태’에 돌입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특히 그 비보호 상태가 ‘탈주’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두 작품이 겹쳐 있는 부분이다. 마츠코는 자신을 보호해주던 집안으로부터 탈주함으로써, 금자는 이전에 부모와 함께 살았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이전에 존재했을 그녀의 안정된 소속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남으로써 비보호의 환경으로 입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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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탈주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두드러진다는 것은 중요한 교차점이다. 마츠코의 탈주는 유년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데서 생겨난 애정 결핍에서 초래한 것이었다.


불행의 씨앗이 되었던 해고 사건은 제자 류가 씌운 누명 때문이었지만, 그것을 해명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 이유는 그녀가 아버지를 웃게 만들기 위해 습관적으로 지었던 우스꽝스런 표정 때문이었다. 그것과 더불어 여동생 쿠미를 향했던 비정상적인 질투 역시 탈주의 주된 원인이었으므로, 그녀가 밟기 시작한 불행의 절차에 아버지가 원흉이었음은 자명한 사실인 듯하다.

 

금자도 ‘미혼모’가 될 처지에 놓여 삶의 위기를 겪은 것은 자신이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역할을 해야 할 남자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회상 씬 중에 금자가 임신한 상태로 백한상과 통화하며 “걔는 덩치만 컸지 아빠 노릇하려면 멀었어요.”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또래 남학생이 일을 저지르고 회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족 형성 실패와 그 이후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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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코는 작가 지망생인 야메가와와 동거를 시작한다. 야메가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마츠코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분풀이를 하는 일이 잦았지만, 마츠코는 그런 그일지라도 열과 성을 다해 돌보고 지지한다. 그녀는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그도 그녀를 사랑해주기를 항상 소망한다.

 

하지만 마츠코의 헌신적인 사랑에 죄책감을 느낀 야메가와는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된다. 마츠코가 자신을 위해 남동생 ‘노리오’에게까지 손을 벌리고, 결과적으로 돈은 얻게 되었으나 결국 동생에게 완전히 의절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락이라도 닿던 가족과의 관계까지 포기하고 야메가와를 지원했던 마츠코는 이 일을 겪고 굉장한 실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야메가와의 자결로 가족 형성 실패를 경험한 마츠코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끊임없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으며 가족 형성을 시도한다. 그녀가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녀가 동거하거나 교제한 남자는 무려 네 명이다. 30년이라는 세월 중에 네 번이라는 숫자는 그다지 크지 않게 느껴지겠지만, 그녀가 도중에 살해 혐의로 교도소에서 복역한 8년이라는 시간과 그녀가 마지막으로 교제했던 류와 절연하고 나서 상실감에 빠져 집에서 은둔한 나머지 일생을 제외하면 남는 시간은 약 9년 남짓이다. 9년이라는 시간 안에 4번의 만남으로 본다면, 그녀가 얼마나 만남을 갈구하고 그것을 이어가는데 절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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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금자의 행보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백한상과 동거하며 살아가다가 백한상이 양육비를 벌자는 빌미로 아이를 유괴하자는 계획에 동참하게 되고, 결국 백한상이 강사로 있는 학원의 학생 어린이를 유괴하는데 공범이 된다. 그러나 유괴된 아이를 백한상이 귀찮다는 이유로 죽여 버리고, 자신의 아이를 백한상에게 인질로 잡힌 금자는 결국 유괴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당하게 된다.

 

금자는 마츠코와는 달리 백한상에게 배신을 당한 시점부터 곧바로 그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교도소에서 지내는 13년 동안 철저하게 복수 계획을세운다. 복역을 끝마치고 출소하고 나서의 삶도 온통 백한상을 잡아들이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녀가 교도소에 있으면서 친해진 다른 수감자들과 그녀가 일하는 제과점에서 가까워진 근식 등의 인물은 그녀가 복수를 실행하는 데 쓰이는 장기말에 불과하다.

 

결국 그녀는 계획대로 백한상을 납치해 한 폐교에 감금하게 되고, 그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유괴했던 아이 외에도 더 많은 아동 희생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금자는 과거 자신을 담당했던 형사인 ‘최 반장’의 협조 아래 피해자 유가족들을 폐교로 소집하고, 백한상이 아이를 납치하고 촬영했던 영상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분노를 고조시킨다. 결국 백한상은 머리끝까지 분개한 그들의 손에 처참히 고문당하다가 죽게 된다.

 

 

 

운명의 분기점: 가족을 형성해야했던 최초의 추동력


 

마츠코와 금자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가족을 꾸리는데 실패하고 불행의 길목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 불행의 길은 상반된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마츠코의 길은 그녀가 계속해서 가족 형성을 시도하며 반복되는, 어찌 보면 그녀가 자초한 불행이었고, 금자가 선택한 길은 가족 형성을 재시도한다는 선택지 없이 오로지 피의 복수가 있을 뿐이었다. 두 인물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일까 고심해본 결과, 나는 그 이유를 그녀들이 애초에 가족을 형성하려고 했던 최초의 이유에서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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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코의 남성을 향한 강한 애착, 자신의 전부를 갖다 바치는 사랑 방식은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아버지와의 애착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그녀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반사적인 행동으로 굳어질 정도로 아버지를 웃게 만드는 것에 집착했으며, 평소에는 사랑해마지않는 동생을 아버지만 엮이면 원수처럼 대할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였다.

 

훗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향 집에 찾아간 마츠코는 아버지의 낡은 수첩에 적힌 것을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실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이미 그녀의 행동과 사고는 마음 속 깊이 고착화되고 내재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격을 결정한 요소에 대해 인지한다고 해서 바로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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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금자의 모든 불행은 자신이 품은 태아를 향한 책임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식을 외면할 수 없어 의탁할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도움을 구한 대상이 운이 나쁘게도 백한상이었다. 잘 사는 가정의 아이를 유괴해서 돈을 뜯어내자는 계획에 어렵지 않게 동조한 것도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백한상 대신 감옥에 들어간 것도 자칫하면 그의 손에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가 죽임을 당할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백한상과 가족이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대도, 도움을 얻어 자립할 능력이 생기면 금자는 자신의 딸과 가족을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 같은 한 인간으로 인해 그 목적을 상실해 버리고, 자신이 자식에게 지지 못한 책임은 복수라는 형태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금자의 복수 행위는 사실 속죄 행위에 가깝다. 자신의 공모로 유괴되었던 아이와 유가족에 대한 속죄이자, 자신의 부재로 멀리 떠나보내진 자신의 딸 ‘제니’에 대한 속죄이다. 그녀가 계획에 없이 그녀의 딸을 만나러 미국까지 향했던 것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모성이 발현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가족을 다시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죄의식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자는 ‘mom’이 한국어로 뭐냐는 제니의 질문에 ‘금자씨’라는 엉뚱한 답을 알려 준다. ‘어머니’로 불리기를 거부한 것이다.

 

 

 

마치며


 

마츠코와 금자는 젊은 나이에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택한 첫 번째 선택지―즉, 가족 형성의 시도―로 인해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츠코는 좌절을 겪은 후 계속해서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남성과 애정의 관계를 맺으려 시도하였고, 금자는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을 상실하고 오직 복수의 칼날만을 갈게 되었다. 그들은 첫 번째로 실패를 겪기 전까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지만 이후로는 다른 비극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그 분기점을 그들이 최초로 가족을 형성하고자 했던 이유로부터 발견하였다.

 

마츠코와 금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족 형성의 추동력을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그녀들의 상처를 더 정확하게 조명할 수 있다. 마츠코는 가부장제의 가족 구조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최고로 여겼었기에 그것의 결핍을 용납할 수 없었다. 금자는 의도치 않게 어머니가 되었지만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손을 더럽혔고, 진범의 피로 그것을 씻고자 하였다.

 

그녀들의 행동 이유를 깊이 파악하지 못하면 <친절한 금자씨>는 잔혹한 이야기로만 여겨지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답답하고 괴상한 이야기로만 다가올 수 있다. 이 글에서 두 작품 간의 ‘가족 형성 실패’라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인물의 행보를 비교한 것 또한 창작자의 의도대로 결론을 이끌어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비교를 통해 인물들의 기저에 깔린 사고에 대해 상상하고 분석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작품에 대한 더 깊은 여운을 남겨줄 것이다.

 

 

참고 문헌

이용미, 「영화에 드러난 여성원형의 표상과 젠더」(2017)

최병덕, 「‘교활한 금자씨’의 우아한 잔혹극」(2007)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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