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뜻함과 다정함,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전시]

글 입력 2020.03.2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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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오랜만에 나서는 집 밖이었는데 날씨가 좋아 기분이 한껏 들떴다. 예술의전당 앞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나 외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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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사람이 꽤 많아서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전시관에 입장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꼼꼼히 체크하고, 손 세정제도 비치해두는 등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한 여러 준비를 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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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는 마치 어린이들을 위한 테마 파크처럼 꾸며져 있었다.


나와 동행한 친구만 아이들 틈에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내부에는 아이보다 어른이 더 많았다. 어른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데 오히려 작은 아이가 울고 있어서 상황이 조금 웃기게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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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곳곳에 있는 스탬프를 찾아 미션을 완료하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종이를 들고 전시관에서의 모험을 시작했다. 조금 다리가 아프고 힘들 때, 이 종이에 도장을 몽땅 채우겠다는 목표 의지가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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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의 초입에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 대한 소개를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 별명을 지닌 도시 볼로냐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하여, 이 원화전이 세계 어느 도시에서 며칠 동안 이루어 졌는지도 지도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또, 원화전에 참가했던 작가의 작업 과정도 직접 볼 수 있어 신기했다. 다음 관은 볼로냐 일러스트상 2018 우승자인 Vendi Vernic의 작품을 다루고 있었다. 작은 관객들을 배려한 것인지 다음 관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아주 작은 문이 뚫려 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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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di Vernic의 원화를 보며, 일러스트 위에 하얀 종이를 덧대고, 그 위에 그림을 수정하여 그린다는 것도 알게 되어 신기했다.


세밀한 획과 거침 없는 붓의 흐름이 느껴지는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책의 실물도 볼 수 있었는데, 일러스트 원화를 보는 것과 책으로 인쇄된 그림을 보는 것의 느낌이 사뭇 달라 이 점도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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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일러스트의 작가가 인터뷰한 내용도 화면에서 송출되고 있었다. 자연과의 만남을 중시하며 책의 스토리보드를 구상하는 장면, 작가가 고려한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어 유익했다.


작가가 잔디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영상에 포함되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여 기억에 남는다. 영상을 본 후, 그의 의도를 알고 그림책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다양한 매체로 일러스트를 소개하고자 한 면이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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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갔던 친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 그림이라고 답했다. 유 텅 타이 작가의 <푸루루>.


유 펑 타이가 대학 시절 들었던 즉흥 연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푸루루 라는 분홍색 괴물의 이야기이다. 푸루루와 우주 캐릭터 쿠쿠의 우정을 다룬 작품인데, 우주를 좋아하는 내 친구에게 큰 영감을 준 모양이다.


왜 그 그림을 좋아하냐고 캐물었더니 친구는 그림이 단순하면서도 둘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가 너무 귀엽고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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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작품은 김슬기 작가의 <모모와 토토>이다. 저마다 가진 고유의 색깔로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아무생각 없이 귀여운 그림체에 반해 보다가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글로 써 놓으면 상투적이기 그지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림을 통해 받아들이게 되니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아끼는 것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더라도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메시지를 잊고 살아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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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물과 동물을 그린 작품이 많았는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아나 자바돌라프의 <귀뚜라미의 힐링>이다. 거칠면서도 부드럽게 부서지는 귀뚜라미의 고독과 안정감이 잘 전달되었다.


일러스트라고 하면 무조건 원색의 밝은 이미지만 떠올렸는데 이렇듯 흑백으로 섬세한 감정을 묘사하는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 기둥 곳곳에 심사위원의 관점이 써있었는데, 그 중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나 일러스트에도 죽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떠오른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몰라야 하는 주제, 감정은 없다. 오히려 이렇게 고독감, 우울감 등의 다양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더 깊고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아이들이 자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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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장점은 다양한 문화권의 그림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일러스트 작가들의 그림에서, 내가 속해있는 문화권 외에도 접하고 싶은 문화권, 그리워 하는 문화권을 찾아볼 수 있다.


안나 데스니츠카야의 <시베리아에서 온 지나>를 보자마자 작년에 탑승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떠올랐다. 더듬더듬 읽어나갔던 러시아어, 갑자기 나타난 5월의 눈 덮인 언덕. 기차역에서 봤던 작고 귀여운 강아지.


원화전 덕분에 지극히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던 내 인생에도 추억할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단지 그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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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관을 지나 일러스트레이션 출판물이 즐비한 코너에 도착했다. 앞서 본 과정을 통해 이렇게나 많은 책들이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 권 한 권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가 흔히 어린이 동화책이라고 생각해 오던 획일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험적이고 기발한 소재로 그림을 그려낸 출판물도 많았다. 직접 서점에서 사기 어려운 해외 일러스트 출판물들을 펼쳐보고,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좋았다.


외국어를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출판물들을 통해 기분좋게 언어를 학습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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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에서 발견한 익숙한 풍경. 펭우 작가의 <귀여운 섬>이라는 작품이다. 그가 제주도 여행을 하며 그린 그림인데,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제주도도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맑은 느낌이었다.


바다 내음이 나는 듯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함께 갔던 친구와 지난 해 다녀온 제주도 여행을 떠올리며, 그 때의 여유로움을 조금이나마 다시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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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을 지나면 기념품 샵이 나온다. 일러스트들이 수놓인 기념품을 보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도장을 모두 찍어 <쾅쾅 스탬프 투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선물을 받았다.


어릴 적 포도송이 칭찬 스티커를 가득 채우던 추억이 떠올랐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모모와 토토 스티커, 그리고 <동물원>의 메인 일러스트 엽서도 구매했다. 스티커는 노트북에, 엽서는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 두었는데 볼 때마다 원화전에 가서 느꼈던 가슴 따뜻함이 떠오른다.


감흥이 크게 남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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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밖으로 나오면 동화책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는 보림출판사의 <책을 품은 벽>이 나온다. 보림출판사는 한국 최초로 최종 수상을 이뤄냈다.


원화전에서 다뤄진 그림 외에도 다양한 일러스트가 포함된 동화책이 많았다. 한국의 미를 담은 동화책도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장르의 한국 동화책이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기대보다도 훨씬 기분 좋은 다정함과 따뜻함을 가진 전시였다. 그저 귀엽네! 하고 지나치기 보다는 일러스트 하나 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생각하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전시장을 나서면 마음에 있던 큰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을 것이다.

 

자연과 동물, 상상과 설화 등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다채로운 주제의 창의적인 일러스트를 다루고 있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서 잊었던 동심과 인생의 가치를 다시금 새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일을 살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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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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