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사랑하는 따뜻함 :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영화]

글 입력 2020.03.1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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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하고 푸른 토마토는 포스터의 반을 채울 정도로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다소 오래되어 보이는 이 사진은 1992년 개봉한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포스터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이 영화를 알게 되었고 매력적인 영화 제목과 포스터 탓에 메모까지 해둔 후 틈이 나자마자 바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지인에게 정말 감사하는 말을 전하고 싶다.

 


줄거리

 

항상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과 양로원에 몸져 누워있는 숙모를 뒷바라지 하며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든 애블린. 신물 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녀는 고질적인 식성으로 몸매를 망쳐버린다. 어느 날 그녀는 양로원에서 만난 80세의 노파 니니가 들려주는 알라바마주의 휫슬 스탑의 얘기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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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지 않은 이야기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개봉한 영화를 보려니 걱정이 되었다. 종종 오래된 영화를 보게 되면 현재의 사회적 인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서사는 당장 오늘 다시 개봉한다고 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니 오히려 오늘날의 여느 영화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정도로 멋지고 당당하며 사랑스러웠다.

 

노파 니니가 등장하는 순간. 어떤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감에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그렇게 나는 에블린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에블린이 이야기를 듣는 시점은 1980년대이며, 니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배경은 1920년대이다. 두 시대 모두 경험해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향수를 느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거와 복식의 형태였다. 이 영화에는 높은 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무로 지어진 집과 흙바닥 그리고 풀과 나무가 눈에 띈다. 등장 인물들이 입은 옷은 레트로 느낌을 물씬 풍긴다.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문화 생활과 식생활을 포함하여) 그 시대만이 품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따뜻하고 아름다운지 나도 니니의 이야기 속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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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그리고 차별


 

1980년대에 제작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시대를 앞선 영화였다. 직접적인 표현이나 언급은 없었으나 페미니즘과 동성애적 요소가 등장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드레스를 벗어던지는 어린 잇지는 영화 내내 바지만 입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야기 속 루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에블린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다가 이 영화의 개봉 연도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성 서사의 이 영화는 2시간 내내 흔들림 없는 아주 강한 여성 간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잇지와 루스가 함께 만든 휘슬 스탑 카페는 유토피아였다. 영화를 보며 눈길이 갔던 또 다른 인물은 흑인 빅 죠지와 홈리스 스모키였다. (물론 그레이와 프랭크처럼 차별을 하는 이들이 종종 등장하긴 했지만) 휘슬 스탑에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없었으며, 약자에 대한 배려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말 그대로 이상적이었다.

 

현대에는 이러한 소수자와 차별에 대한 문제가 개선된 것은 맞다. 하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니 휘슬 스탑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유토피아'로 비유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보여주는 여성 간의 연대와 공동체의 가치는 그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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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이야기에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등장하는 인물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너무 사랑스럽고 이들의 관계는 참으로 단단하다. 태어나고 성장하며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것. 또 사랑과 진실 그리고 믿음, 공동체의 연대까지. 영화 한 편으로 나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마주칠 바로 그것들을 마주하고 어루만졌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영화를 찾은 것 같다. 어떻게 이리도 마음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잔한 물결 같은지. 그 물결의 편안함에 몸을 기대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 이런 영화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나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아직 식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내내 따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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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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