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

시적이고 회화적인 사진 - 이정진 개인전 <VOICE>
글 입력 2020.02.2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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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보통은 카메라로 찍어서 반질반질한 필름에 프린트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필름의 표면은 빛에 반사될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며 아름다운 색이 사진 가득히 채워져있을 수도, 흑백으로 색다른 매력을 줄 수도 있다.

 

PKM갤러리에서 두 달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열리는 이정진 개인전 는 총 25점의 사진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한지 아날로그 수제 프린트와 디지털 방식을 결합한 작가의 표현 기법이 돋보인다. 오돌토돌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은 테두리는 특유의 흥취를 관람객에게 선사한다. 또한, 서울의 겨울 한가운데 있는 듯한 갤러리의 위치와 외관이 작품 감상에 분위기를 더해준다.

 

갤러리에 들어가면 사방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흑백 작품들에 먼저 압도된다. 고요와 한적을 한껏 머금고 있는 한지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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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ce06, 2019

 

 

가장 마음에 들어왔던 작품이다. 처음으로 파도가 흑백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검게 변했고, 거품은 여전히 희다. 만약 흑백의 파도가 존재한다면 더 비극적이고 소리가 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 오른쪽에 걸려있는 또 다른 작품은 무엇을 찍었는지 불분명하다. 안개가 낀 것처럼 윤곽선은 흐릿하고 빛과 그림자는 자로 잰 듯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바다를 위에서 찍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숲을 아주 가까이서 찍은 사진이었다. 수많은 잎과 가지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언젠가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파도소리처럼 들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바다인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숲인 이 작품을 보니 그때의 경험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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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ce02, 2019

 

 

세상에서 가장 소리가 없는 자연은 바로 구름이 아닐까. 작품의 제목과 가장 대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구름이 주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안개나 구름이 우리에게 주는 메아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또, 작가는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 등의 많은 생각을 제시해주는 작품이다.

 

PMK갤러리는 본관 2층으로 올라가 뒤로 돌아가면 별관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신관으로 계속 이어진다. 본관에는 'VOICE' 연작이 있지만, 별관에는 또 다른 'OPENING' 연작이 전시되어 있으니 잊지말고 방문해야 한다.

 

 

opening21.jpg
opening21, 2016

 

 

별관의 작품들은 세로로 또는 가로로 길다는 것에서 빠르게 특이점을 갖는다. 특히 세로로 긴 사진 작품은 낯설고 족자를 떠올리게 한다. 도르르 말아서 쉽게 휴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시각적으로 갇혀 있지 않으며 오히려 열리고 무념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느낌을 위해 좁은 세로 프레임을 선택했다고 한다. 세로로 선 작품은 관람객이 서 있는 모습 앞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것 같다. 나의 그림자만큼 볼 수 있는 작품. 풍경 사진이지만 많은 것을 담지 않고 아주 일부만을 보여준다는 것이 재미있다. 눈밭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시선이 마치 관람자가 넘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KakaoTalk_20200222_160359903_04.jpg

 

 

처음 말했던 것처럼, 이렇게 한지에 먹이 번진 듯 정돈되지 않은 테두리가 감상을 돋구어 준다. 이곳의 제목은 '보이스'이지만, 누구보다 고요한 작품들로 채워져있다. 이제 그 고요함들이 던지고 있는 '목소리'들을 잡아내야하는 것은 관객의 몫일 것이다. 작품은 명상적이기도, 영원성을 담고 있기도, 시적이고, 회화적이다. 우리가 고요함을 넘어 작품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많은 것을 초월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전시 정보]

이정진 : VOICE

2019.01.15 - 2020.03.05

PKM&PKM+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7길 40)

관람료 무료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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