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각을 깨우는 : 겟 아웃(Get out), 어스(Us), 미드소마(Midsomma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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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감각을 깨우고 두뇌를 자극하는 영화를 봤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영화 중 가장 먼저 개봉한 영화였던 겟 아웃을 가장 늦게 보게 되었다. 이전에 정말 인상적으로 본 두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나도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내 취향을 찾았다.
워낙 세 영화 모두 해석이 다양하고 그 해석을 너무 재미있게 잘 써놓은 글들이 많아서 그러한 해석보다는, 모두 말로 형용할 수 없음에도 이상하게도 서로 닮은 점이 많은, 영화의 성격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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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포 영화를 다루고 있음을 먼저 알립니다.
흔히 공포영화라고 하면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와서 깜짝 놀라게 한다던가 귀신이 등장한다던가 하는 것을 떠올리곤 했기 때문에 세 영화의 장르가 '공포'라는 것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포의 사전적 의미는 '두렵고 무서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공포보다는 미스터리함에서 오는 불안함과 싸함에 더 가까웠다. (어쩌면 두 감정이 공포의 넓은 범주 안에 포함되어있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세 영화가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물음표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함과 함께 '왜일까?', '저건 무슨 의미일까'와 같은 궁금증이 끊이질 않는다. 지금까지 봐왔던 수많은 영화들을 모두 기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아 자리를 지키는 영화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들이거나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어 생각하게 만들고 이러한 이유들 덕에 여운이 길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엄마, 아빠, 딸, 아들
그리고 다시
엄마, 아빠, 딸 아들...
가장 먼저 본 영화는 어스(Us)였다. 함께 영화를 보자는 친구의 제안에 따라가서 본 게 다였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극장을 나서서도 알 수 없는 싸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내가 뭘 본 걸까' 하는 생각에도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적어놓은 영화 해석을 보는데 그게 그렇게 흥미로울 수 없었다.
어스는 조던 필 감독의 작품인데, 같은 감독의 작품인 줄 모르는 상태로 영화 겟 아웃을 보며 참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했었다. 장면 하나하나에 '감독 조던 필'이라고 쓰여있는 것 마냥 어떻게 이렇게 완전히 다른 듯 비슷한 영화를 만들어내는지 놀라웠다. 영화가 해당 감독의 고유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디자인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도 그렇고 글을 쓸 때도 그렇고 디자이너, 작가의 이름이 없는 상태로 사람들이 그 작품만을 보고 창작자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나로서는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지 감독에는 관심이 없던 나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이름을 남긴 감독이다.
사실 겟 아웃을 본 후에는 영화 어스가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처음 마주하게 된 것에 대한 충격과 신선함은 상당히 컸지만, 몇몇 코멘트들처럼 겟 아웃만큼의 개연성이나 스토리는 어스가 담고 있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스를 먼저 본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90년에 한 번, 9일 동안 열리는
미드소마에 초대된 6명의 친구들
선택된 자만이 즐길 수 있는 충격과
공포의 축제가 다시 시작된다.
두 번째 영화는 미드소마였다. 대낮의 공포라고 요약되는 미드소마의 포스터나 예고편을 보면 장르를 잘못 써놓은 걸까 싶을 정도로 밝고 아름답다. 영화를 보면서도 이렇게 밝은 분위기에 공포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드소마는 공포 그 이상을 보여준다.
세 영화 중 가장 정신적 충격이 컸던 영화이다. 싸함을 넘어서서 상식 밖의 것들이 범람한다. 앞선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더 강렬한 충격을 주는 그런 영화다. 어두움에서 비롯한 뻔한 두려움과 공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드소마는 모든 것을 대놓고 보여준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에게 추천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미드소마를 다루며 떠오르는 세 영화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 이야기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책, 영화 등 그 종류와 무관하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이입을 하기가 힘들다. 덕분에 SF나 판타지류는 어지간해서는 보지 않는다.
이 영화들을 보면서도 머리 한 편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이 있을까'라는 작은 생각이 들었지만, 함께 '어 뭐야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이 머리를 점점 지배했다. 그중 미드소마는 메타픽션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마치 내가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만큼, 그럴듯한 현실감이 일말의 비현실감과 함께 나를 더 무너뜨리고 불안하게 했던 것이다.
흑인 남자친구가 백인 여자친구 집에
초대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마지막 영화는 겟 아웃(Get out). 이 글을 쓰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포털의 조던 필 감독의 시놉시스를 누가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스도 그렇고 매우 심플하고 요약적이다. 포스터를 보고 드는 생각은 세 영화 중 포스터와 내용의 무드가 가장 이질적인 것이라는 것. 공포영화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포스터를 보면 무채색인 탓인지 귀신이 떠오른다. 포스터에 컬러감이 있었으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심미적인 측면에서)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와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감히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는 끝없는 의문을 만들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또 다양한 이의 해석을 찾아보며까지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리고 이에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아주 큰 역할을 한다. 그 표정과 목소리에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또 소름이 돋을 만큼 이 영화에 등장한 모든 이의 연기가 완벽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위 사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두 개 중 하나. 해당 배우의 연기를 보는데 왜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지 그리고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며, 이러한 생각과 동시에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그저 딱 한 두 시간의 상영 시간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러닝 타임 이외에는 영화가 살아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영화를 현재 보고 있음을 떠나서 내가 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해석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읽을 때 영화는 한 번 더 살아 숨 쉬게 된다는 것이다.
아주 주관적인 생각임에도 불구함에도 공포영화를 보고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도 참으로 신기하다. 영화가 내어주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때론 온몸의 감각을 일으켜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그 영화를 더욱더 영화답게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는 미드 소마의 감독 아리 에스터의 작품인 '유전'을 볼까 한다.
[정두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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