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끝없는 과학적 상상 -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과학과 역발상의 만남
글 입력 2020.01.08 17:0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편견이 있다. 어쩌면 사실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학을 못 한다. 못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문제의 정답이 정확하게 나올 때의 쾌감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하지만 반대로 정답이 절대로 나오지 않을 때의 스트레스도 굉장하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과학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외우는 걸 잘하지 못해서 싫어하는데, 과학은 외울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뭐와 뭐가 더해지면 무슨 색이 된다거나, 인체의 어느 부위에서 어떤 상황일 때 이런 호르몬이 분비된다거나 하는.
 
SF 소설을 좋아하는 것과 과학적 이론을 이해하는 건 조금 다르다. SF소설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상상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과학적 근거를 사용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과학적 근거를 완전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없다. 과학적 사실을 완벽히 이해하고 인지해야만 읽을 수 있는 SF 소설이라면 차라리 SNF라고 적어두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과학 실화. 사실 SF 소설에서 과학적 전문 용어를 몇 페이지에 걸쳐 길게 나열하며 고증을 지킨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그 부분만 설렁설렁 읽으면 되니까. 그런 이유로 과학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SF 소설은 즐겨 읽는 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으니 누군가는 분명 나와 반대의 이유로 SF 소설을 좋아할 것이다. 과학과 수학을 좋아하고, SF소설에 나열되어있는 논리정연한 과학적 사실에 편안함을 느끼며 반대로 고증이 잘못되어있으면 괜히 신경 쓰이는 누군가.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이런 두 마리의 독자를 모두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설에서는 이야기를 쓴 계기가 되는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고, 뒷설에는 소설의 내용과 과학적 사실을 연결해 설명한다. 거기다 생각 외로 앞설과 뒷설이 흥미롭다.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면 되니 시험을 위해 과학 교과서를 달달 외울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2019-12-11 14;58;09.jpg

 
 
제목이기도 한 단편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에서는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한다. 초등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과학 이야기 같은 제목의 책에 수록되어있을 것 같이 쉽고 간단한 설명으로 설명 덕분에 소설만큼이나 흥미롭다. 그동안 ‘양자역학’을 몇 번 들은 적 있지만 과학보다는 철학의 영역에 가깝다고 느꼈다. 상자에 갇힌 고양이는 상자가 열리기 전까지 죽은 것이며 동시에 산 것이라는 말은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이 모두 멈춘 걸지도 모른다는 말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책에서는 실제로 그러한 입자가 존재한다고 설명하며 왜 양자역학이 철학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인지 차근차근 읊어준다. 읽을 때는 정확하게 이해했는데 막상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아무튼 그런 게 있대, 하고 넘기게 될 정도로 얄팍하게 쌓인 지식이지만. 그뿐만 아니라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이 실험이 본래 슈뢰딩거가 코페하겐 해석의 황당한 면을 반박하기 위한 예시였다는 사담은 눈을 뜨이게 한다. 한 학문을 반박을 위한 예시가 되려 그 학문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양자역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면 각자의 시선으로 과학적 원리, 사실, 이론 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과학적 원리가 가득한데 과학적 상상은 더 무궁무진해서 지루하지가 않다. 오히려 이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고, 더 보고 싶어 안달난다.
 
<튜링 히어로>에서는 튜링 테스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튜링 테스트란 기계에 지능이 있을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다. 인간과 기계가 서로 다른 방에서 다양한 질문과 대화를 할 때, 인간이 다른 방에 있는 기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끔 속인다면, 기계에 지능이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작가는 이에 역발상을 더해 기계와 인간을 구별하는 테스트에 오작동이 난 사건에 관해 풀어본다. 인간은 우연히 기계라는 오해를 받고 모든 인류의 적이 되며, 반대로 모든 기계의 구원자가 된다. 살기 위해 기계인 척하면서 기계의 편에 선다는 결말로 끝나는 글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인간은 언제까지 기계인 척 살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떤 선택을 할까. 인정을 버리지 못하고 기계 대신 인간을 살릴 수도 있을 것이고, 기계를 도와 인류를 없애고 기계의 행성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인형들의 천국>에서처럼.
 
 

geometry-1044090_960_720.jpg

 
 
<유로피언>에서는 목성 위성인 유로파에 사는 생명체가 처음으로 얼음 밖으로 나가게 되고, 거기서 지구인을 만나게 되는 상황을 표현한다. 실제 목성 위성인 유로파와 토성의 위성 엔켈라두스는 두꺼운 얼음벽 아래 바다가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져 있으며, 갈라진 얼음 틈 사이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사진으로 포착되기도 했다.
 
첫 탐사에서 아주 우연히 지구인을 만난 유로피언은 그 이후 천천히 지구와의 교류를 시작한다. 소설은 유로피언과 지구인이 공동 개발한 수중 기지의 연설문 형식으로 진행되며 호기심을 자극하고, 무한한 경이를 같이 느끼도록 유도한다. 아폴론이 달로 갔던 그때, 아주 우연히 외계인을 만났다면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미 지난 과거이니 영영 알 수 없으나 <유로피언>을 읽고 있는 동안은 그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굉장히 충격적이면서도 가슴 벅차다.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가장 큰 충격을 준 소설은 가장 처음에 실린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이다. 이 소설은 영생에 관한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불멸을 종류별로 나눈 뒤, 그중 한 가지 불멸을 누리게 된 인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시각인 데다가 짧은 이야기 속에 나름대로 반전이 있어 오래 기억난다.
 
뒷설에서 작가는 사람이 용기를 얻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돌진하는 이유는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일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니까 다양한 불멸 중에서 늙어 죽는다는 선택지가 사라진다면 그때도 모두가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이순신 장군의 명언 중에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각오하고 그 이상의 것을 위해 싸운다면 승리하여 이기지만 반대로 죽음이 두려워 몸을 사린다면 결국 모두 패배해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소설은 바로 이런 상황을 설명한다.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영생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굳이 죽고자 위험에 달려들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니 그들은 위험이 없는 곳으로 회피하고 결국에는 죽은 듯이 살게 된다.
 
죽고 싶지 않아서 죽은 듯이 산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반면에는 막상 나라고 해서 다른 선택을 할지 의문이 든다. 사후 세계는 미지의 공간이고,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불멸의 생을 살게 된 인류에게 여전히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소설 속 세계에서 죽음이란 여전히 완전히 정복한 존재가 아니다. 이 생각을 하고 나니 뒷설에 있는 것처럼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엘프 군단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싸움이나 전쟁을 하지 않으면 영생을 사는 존재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robot-3010309_960_720.jpg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에 실린 여덟 편의 글 중 몇 편은 소설이라기엔 짧은 감이 있다. 그 때문인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후의 이야기가 끝없이 궁금해진다. 특히 앞서 말한 <튜링 히어로>도 그렇다. 뒷설에 적혀있듯 무궁무진한 이야기로 진행될 수 있으니 그 끝을 함께 보고 싶은 욕망이 든다. 그러나 이런 짧은 단편은 각자의 앞설, 뒷설과 만나 작가의 사고를 더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현대에 많이 화자 되고 논란되는 과학적 사실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알려준다.

책을 덮자마자 소설 이상의 상상이 무궁무진하게 늘어진다. 애나는 결국 주사를 맞았을까? 수천 년이 지난 이후 박해받은 마투의 주장이 다시 세상을 뒤흔들 날이 올까? 유로피언과 지구인의 향후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까?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있을까? 마이사가 선제공격을 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상상을 키운다. 뒷이야기를 혼자 상상할 때면 작가와 달리 과학적 사실을 첨가할 수 없지만, 나의 상상에 과학적 근거가 전혀 안 들어갔다고 하기도 힘들 것이다. 비록 내가 모르고 있거나, 오류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책을 읽고 나니 과학이 마냥 어렵고 거리감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은 줄어든다. 이렇게 되니 편견을 하나 다시 지워야겠다. 과학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지금껏 마음 편하게 즐길 과학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전문 김혜원.jpg




[김혜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5741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