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노래하다 : 수림뉴웨이브 2024 - 獨波(독파) [공연]

민요 공미연
글 입력 2024.04.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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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우리나라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의 경우, 아주 편안하고도 익숙한 이 나라를 잠시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네가 온 나라에서는 어떤 음악을 만들어? 너의 나라는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어?"

 

이 질문을 받는 순간만큼은 내가 감히 우리나라를 대표하게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단어를 고르고 골라 겨우 대답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때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무조건 우리나라 문화예술부터 공부해야겠다- 하고.

 

짧은 인생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말에는 틀린 것이 없다.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좋을지 모를 때는 일단 무작정 보고 듣는 것이 좋더라. 의욕은 이미 충분하니 이제 보러 갈 공연만 찾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반가운 문화초대 알림이 왔다. 우리나라 국악에 대해, 그리고 국악을 하는 현대 음악가들에 대해 알리기 위해 진행되는 수림뉴웨이브 2024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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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뉴웨이브는 전통 창작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예술가에게는 창작실험의 장을, 관객에게는 우리 음악의 새로운 발견을 선사하는 전통예술 공연제다. 2024년의 주제어는 독파(獨波)로, 홀로(獨) 자신만의 흐름(波)을 추구하며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예술가 20인의 음악과 인생 이야기를 다룬다.

 

해당 공연은 두 시기로 나누어 진행되며, 1차는 2월 22일부터 4월 25일까지, 2차는 8월 22일부터 10월 24일까지 진행되어 스무 번의 목요일 저녁, 스무 명의 전통예술가를 김희수아트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3월 28일에 공연장을 찾은 나는 여섯 번째 독파, 경기소리꾼 공미연의 민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목소리를 악기 삼아 만드는 음악에는 익숙하지만 민요 공연을 보러 가는 건 처음이기에 미리 조금의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민요(民謠)는 민중 사이에 불려 내려온 전통적인 노래다.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는 비전문가 평민들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목소리에 의존하여 내려오다가 후대에 와서야 기보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보도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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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최소한의 지식만을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관람 에티켓 안내가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에게 추임새라는 말이 익숙할 것이다. 지금은 감탄사와 같은 의미로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사실 추임새는 판소리와 같은 전통 공연에서 관중들이 장단에 맞추어 내는 소리를 의미한다.


민요 공연에서는 가만히 앉아 듣는 것보다 이 추임새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매너라는 말과 함께 활발한 호응을 부탁받았다. 언제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모르기에 직접 무언가를 외쳐보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노래 뿐 아니라 주변에서 외치는 얼쑤~, 좋구나! 등의 추임새를 들으며 흥이 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 이미 살아온 미래 : 공연 프로그램 ~

 

1. 달과 별에 하는 말

2. 제비가

3. 금강산타령, 경기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4. 그리움 살아서 갈길이 - 배따라기 中

5. 돌이킬 수 없는 마음, 回心(회심)

6. 민요는 알고 있다 (쭈카쭈카 쭉·잼잼도리·떳다 비오 떳다·대문놀이·손치기 발치기)

7. 그리고, 이면가락에 더하여 그리다

8. 머리 끝에 오는 잠(전래자장가)

 

 

매 회차마다 한 명의 전통 음악인에게 집중하여 알아보는 프로그램답게, 수림뉴웨이브의 각 공연에는 저마다의 제목이 붙는다. 소리꾼 공미연은 자신의 공연 제목 '이미 살아온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을 제시했다.

 

첫 번째 의미는 공연 리플렛에 적혀 있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결성이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민요지만,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공미연은 현재의 마음을 담아 부른다. 그 마음의 가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앞으로도 쭉 바뀌어 갈 테다. 과거에도 존재했던 가락을 통해 무한히 새로운 감정을 전해갈 것이기에 "이미 살아온 미래"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두 번째 의미는 공연 중에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소리꾼 공미연의 인생 그 자체였다. 이미 살아온 날들 중에 이미 많은 날들을 민요와 함께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서도 민요는 빠질 수 없을 것이기에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제목에서부터 민요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온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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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시작된 무대에서도 소리꾼 공미연의 살아가는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샛노란 한복에 꽹과리 하나를 들고 등장한 그녀는, 오늘도 공연을 무사히 해낼 수 있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첫 번째 노래 '달과 별에 하는 말'을 선보였다.

 

'그리움 살아서 갈 길이'는 배가 풍랑을 만나 난파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담아낸 무대였고, 이어진 '돌이킬 수 없는 마음 - 回心'은 기존 부모님에 대한 애달픈 마음을 담은 동희스님의 회심곡을 공미연만의 해석을 더해 재구성한 곡이었다.

 

모든 무대는 국악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자는 의미에서 마이크와 스피커 없이 진행되었다. 생생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가락을 따라 길고 긴 가사를 노래하면서도 눈빛 연기에 손짓까지 곁들이는 모습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멜로디가 느껴지기도 하고, 읊조리는 듯 들리지만 운율이 느껴지기도 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가 그동안 노래와 랩, 연극 등의 이름으로 나누어 생각하던 예술의 형태를 한 번에 보는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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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뉴웨이브가 가지는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토크 콘서트의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오늘의 말 거는 사람', 즉 진행자가 존재하며 관객의 입장에서 '오늘의 예술가'에게 다양한 질문을 건넴으로써 보다 깊은 이해를 돕는다. 현장에 있는 관객들은 배부받은 QR코드를 통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직접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때 누군가 민요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소리꾼 공미연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처음부터 국악을 하려는 마음으로 배운 건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재미를 붙이고 국악 고등학교에도 진학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나에게도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공미연 씨가 소리를 계속하게 만든, 민요만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일까? 운이 좋게도 내 질문에 대한 답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민요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져,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노래이기에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매력으로 제시했다.

 

민요의 가사를 집중해서 들어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와 동시에, 굳이 애써 가사를 알아들으려 하지 않아도 누구나 흥겹게 즐길 수 있는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민요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번이고 말했듯이 민요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나에게도 정말 그러했다. 노래 같기도 하고, 낭독 같기도 한 소리는 그 리듬감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한편, 목소리로 전해지는 텍스트에 가만히 집중해 보면 모든 노래 '소망과 염원'의 한 형태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좋은 날이 되기를 비는 소망, 그리워하는 이를 보고자 하는 염원,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 전혀 특이하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감응할 수에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앞으로 민요가 더 사랑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다음의 대답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소리꾼으로서의 결연한 다짐과 함께 어쩐지 책임감도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더 많은 분들이 민요의 매력을 느끼실 수 있게, 제가 더 좋은 소리를 들려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제 우리나라의 음악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정말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지만, 우리 전통음악 중에는 소박하고 일상적이지만 그렇기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노래가 존재한다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모든 독자들에게도 한 번 권해보고 싶다. 서양 음악에 익숙해져 있어서 생소할 것만 같지만, 막상 들어보면 정감이 느껴지는 우리 민요와 국악을 알기 위해 한 걸음만 내디뎌 보시라고. 우리의 음악이 더 사랑받으려면, 당연히 우리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수림문화재단이 준비한 올해의 독파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들러보셨으면 좋겠다. 한 번 그저 어렵고 낯선 옛 음악이 아니라 누군가의, 나의, 내 친구의, 내 가족의 이야기에 가볍게 귀를 기울인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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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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