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헬조선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 - 개인주의자 선언 [도서]

개인주의자가 된다는 건
글 입력 2020.01.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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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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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신 문유석 작가님의 판사라는 직업이 이 책의 기대지평이나 신뢰도에 영향을 주게될까? 판결을 내리는 ‘판사’라는 직업은 공정함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냉철함, 논리적, 비판적, 분석적 이미지도 함께이다. 판사가 쓴 글은 한국사회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에 기대 ‘선언’을 하는 이 책의 제목은 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그는 <미스 함무라비>(2018년 5월 21일~7월 17일, JTBC)의 원작 소설 작가이다. (「개인주의자 선언」보다 늦게 나온 책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력은 그의 책을 집어들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판사로서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균형잡힌 시각, <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검증된 글솜씨는 여전히 그의 책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는 힘이다.




개인주의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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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며 ‘개인주의’를 말하는 판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판사는 냉철하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억울함을 해소하고 품어주는 존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아마 나 역시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개념에 대한 혼재에서 자유롭지 못했나보다.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 내지 편견이기도 하지만 판사와 개인주의 (프롤로그에서 ‘인간 혐오’라고 까지 밝히는) 사이의 간극은 책에 대한 관심을 자아내는 또 하나의 요소일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렇게 밝힌다. ‘나는 분명 내 삶이 우선인 개인주의자이며 내 방식의 행복을 최대한 누리며 살다 가고 싶은데, 개인과 개인이 모여 사는 ’사회‘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이다. 개인주의자와 사회는 또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개인주의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계약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불행해진다고 말하며 개인을 주체로 놓으면서도 연약하고 무력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집단’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개인주의를 유아적 이기주의, 고립주의와 구분하고, 헌법 질서의 근간을 근거로 내세우니 설득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집단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그의 논리는 합리적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이 집단에 잠식되는 경우에도 역시 행복할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 균형이 중요하다. 그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이른바 개별화된 한명 한명의 개인이 존재하는 집단을 지향하는게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개인주의는 집단을 무시하고 개인의 이익만 주장하는 이기주의,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기를 강요하는 전체주의와 구분된다.


작가가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뒷담화와 공격적 열등감과 관형과… 로 표현하는 “한국사회에서 견뎌야하는 것“에 덧붙여 말해보자면, 한국사회의 집단주의는 일면 획일화에 지나지 않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으로 하나될 때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고 그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가치만을 요구할 때 그건 폭력이 된다.

 

 


개인'들'



개인은 동시에 자신의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 문유석 판사에 따르면 그것은 개인의 권리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힘만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는 나만의 행복을 위해 사회의 문제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이 링에 올라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의견이 존중받고 이를 토대로 발전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대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들이 나서야 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뿐 아니라, 개인주의자는 또 다른 개인을 발견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절반이상의 내용이 타인과 사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기현상은 판사라는 직업적 특징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판사로써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만나면서 감수성이 발달하고, 자연스럽게 ’현재가 두터워진’ 결과다.


이것을 저자가 판사라는 직업의 특권 내지 특수성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를 인간혐오라고 까지 말하고, 일반적으로 큰 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집단의 규칙조차 귀찮게 여기는 그가 ‘타인의 발견’이후에 변화한 것은 우리가 타인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삶 주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특별히 에필로그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건은 ‘세월호’사건이다. 우리가 판사가 아니더라도, 눈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면 이 세상에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자가 세상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언제든 나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행복을 위해 집단과 올바르게 관계하고, 또 다른 개인을 발견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이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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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그리고 우리



문유석 판사는 꽤나 운이 좋은 개인주의자인 것 같다. 에피소드 ‘개인주의자의 소소한 행복’에서 밝히는 것처럼 직업에 열중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와 함께하는 행복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와 달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3부의 제목처럼 세상의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책의 목차 순서처럼 나로 시작해도 분명 타인을 발견하고 세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집단을 위한 개인이었던 스스로를 분리해내고, 나와 너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세상에 선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개인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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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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