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과학과 역사지식으로 꿰매 완성한 퀼트 - 도서 '미래의 기원'

글 입력 2024.01.31 14: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quilt-1574956_1280.jpg

 

 

문명 속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가 어떤 기원에서 발생한 생물인지 망각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자의식, 언어, 문화는 인간을 생물이 아닌 어떤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삶 대부분의 시간 동안 '생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는 자의식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노력(아이러니한 표현이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유기체로서의 자신을 생각하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나는 인간이 이룩한 눈부신 지적 문명에 침을 뱉는 행위를 경멸한다. 지식과 문화, 그것들은 인간이라는 생물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진화의 산물이다. 유기체로서의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인간의 이성과 삼성을 무시해버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맥락에서만 인간을 이해한다면, 인간은 너무나 지루하다. 인간의 사고능력은 인간이라는 생물의 생명력을 보여주지만, 그 기원을 완전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생물체로서 가진 생생한 욕동과 신비로운 기원이 문화라는 살에 파묻혀 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찝찝하다.

 

나는 살을 걷어내고 그 속을 보길 바란다. '나'가 아닌 하나의 생물로서의 '우리'를 발견하고 싶다. 뻔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충동을 가진 존재이며, 그 충동을 어떻게 승화해가고, 어떻게 실수를 거듭하고, 눈부신 업적을 이룰 수 있었는지. 우리는 왜 이렇게 자기 자신을 유지하려고 하며, 어떤 문명을 만들어가야 했는지. 우리는 왜 어떤 것을 잊으려고 하고, 어떤 것을 기억하려고 하는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 강렬한 생명의 충동은 어느 부분에서 기원했으며,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인간은 이 질문들에 크고 작게 대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성을 통해 생물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갈릴레이, 뉴턴, 다윈, 고생물학적 발견, 프로이트, 니체, 컴퓨터 공학,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수많은 지식은 현대인에게 전례 없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오늘 리뷰할 책 <미래의 기원>은 '문명인의 인간'도 아닌, '생물의 인간'도 아닌 '인간 자체의 기원'에 대해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여러가지 인간의 모습을 다양하게 자극해 감수성과 지식 간 묘한 균형을 잡는 책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생물의 대서사시를 설명하기 위해 끝없이 정보를 전달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왠지 에세이같은 감성도 불러일키는 독특한 매력의 책이다. 이 책이 교양 과학서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그렇다고 하겠지만, 한 명의 감상자로서는 이상하게 하나의 로맨틱한 시처럼 전달되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감상의 영역이고, 이 책 자체는 충실히 교양서의 형식을 취한다. 책의 논리는 잘 정리되어 있고 저자는 자신의 주제를 드러낼 때를 제외하고는 객관적인 서술구조를 유지한다. <미래의 기원>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우주와 원소, 생명체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중심으로 전개되고, 2부에서는 인간의 진화와 문명의 발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부는 현대를 지배하는 주요 사상의 두 축과 AI 기술의 발전과 같은 미래산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토록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각 장에서의 읽기 경험이 제각각이다. 1부는 과학적 지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책의 정보 집약률이 높다. 이 섹션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논리가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는 점에 있다. 무엇보다 책의 일러스트가 내용을 잘 보조하고 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인데, 중간중간 저자의 생각이 약간씩 드러나는 부분이 이 책을 좀 더 가볍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리의 존재가 모두 우주에서 기원했다는 내용이다. 생명체를 이루는 원자도, 시간도 우주에서 기원했다. 사주와 점성술과 같은 로맨틱하고 신비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시간, 공간, 원자들이 여러 법칙과 힘으로 역동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은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신비롭게 들렸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과 인간정신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논리와 우연의 작품인가.

 

2부 이후부터는 개인적으로 평소에 익숙한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어 빠르게 읽혔다. 2부는 초반을 제외하고 주로 역사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마 반대로 1부에서 과학 지식을 가진 사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은데, 가볍게 치고나가는 부분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좀 더 설명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은 부분이 있었다.

 

2부와 3부를 읽어가면서 주로 느낀 것은, 이 책을 쓰려고 했던 의도가 내가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거대하다는 점이다. 사실 한 명의 독자로서 '미래의 기원'이라는 이름과 저자의 이력을 통해 처음 기대했던 것은 '어떤 기술-주로 미래산업-'에 대한 기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의도했던 것은, 단순한 기술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아득한 네 가지 힘을 통해 존재하지 않았다가 원자의 결합을 통해 비로소 존재했던 기원으로서의 인간이 미래에 어디에 도달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매우 방대하다. 그리고 그 방대한 만큼 다양한 지식을 빠르고 가볍게 치고 나간다. 나를 포함해 많은 독자들이 읽으면 읽을수록 제목의 의미를 납득하게 될 것이다. 이 주제의 방대함이 또 독특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책이 건들이는 방대한 범위에 생물의 역사에 대한 감수성이 빼곡히 차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5년 동안 틈틈이 썼음을 이야기 한다. 저자의 집필 의도와 광범위한 주제를 고려했을 때, 이 책을 쓰는 행위는 매우 피곤한 것이었을 것이다. 조사해야 할 양도 많고, 교양서로서 쉽게 요약해야 하는 부분도 많다. 애당초 유래를 알 수 없는 빅뱅에서 결합한 원자 결합이 도구-유사자아를 가지게 될지도 모를-를 사용하는 하나의 인간이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각 장에 메모처럼 내용을 요약해가면서 3부까지 내용을 끌고 가는 모습은 저자가 생명, 과학, 역사에 어떤 애정을 가졌는지 상상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책의 구성이나 '우리 개인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기술한 부분에서는 왠지 학창시절 열정적인 선생님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미래 예측 부분에서는 너무 모범적인 결론에 이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꼿꼿해 보이는 태도마저 책 전반에서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묘한 감수성과 맞물리게 되니 또 이상하게 정말로 진심 어린 조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원래 정론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유독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과학이야말로 가장 로맨틱한 문학처럼 읽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열된 정보가 가리키는 방향은 유연하고 생명력 넘치는 세계다. 이 책도 교양과학서지만, 이상한 감동을 주는 서사시로 받아들여진다. 수많은 정보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꿰맸고,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마치 작은 구슬을 하나하나 꿰매서 하나의 목걸이를 만든 것처럼, 이 책은 좋은 문학과 마찬가지로 감동을 준다. 나는 꼼꼼하게 꿰매진 이 책의 부드러움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가 대중들에게 건넨 그 정성만은, 이 책이 주는 교양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소중히 찾아 보관해야할만한 것이다.

 

 

미래의 기원_표1.jpg


 

[이승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2.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