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삶에 뿌려둔 웃음 조미료,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
글 입력 2019.12.0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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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해학과 풍자의 민족이라고 했던가. 조금 어처구니없지만, 어느샌가 수긍하게 되는 거지들의 논리는 우리에게 상쾌한 웃음을 가져다준다. 조선시대 남사당패들의 공연을 보는 관중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웃음을 해방시키고, 각종 볼거리에 눈을 춤추게 하는 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단순히 우리 것이기에, 우리 소리라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그들의 소리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팬이 되지 않고서는 못 베긴다. 조선시대에도 팬클럽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난 그들의 1호 팬을 자처했을 텐데.

 

판소리에 대한 이미지는 그랬다. 지루하고, 고어가 섞인 소리들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고, 흥이 나지도 않는. 그래서 사실 공연을 보기 전부터 두려웠다. 지루하면 어떡하지, 내가 이번을 계기로 판소리와 더욱 멀어지면 어떡하지. 그렇지만 제목부터 말하고 있다, ‘판’소리가 아니라 ‘딴’소리 판을 열 것이라고. 예상을 깨고 나온 딴소리들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대사와 맛깔나는 음의 줄타기는 흥을 돋운다. 음이 만들어내는 팽팽함과 느슨함은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클라이맥스로 질주하는 롤러코스터에 관객들을 태운다.

 

조선시대판 블랙코미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지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들이라 혀를 찬다. 그렇지만 딱 한 소절만 들어보면 안다. 어처구니없어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은 사실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줄 때 나오는 해소의 웃음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진짜 늦은 거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먼저 죽는다’ 기존 속담을 비틀어 만든 유머스러운 문장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질 때가 있었다. 기존 속담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된 이 문장들은 그냥 웃어넘기기엔 너무 정곡을 찌른다. 어처구니없다 생각한 것이 우리 삶과 정확히 들어맞는다면, 사실 우리 삶 자체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문장들은 거지 사당패가 몰래 우리 삶에 뿌려둔 웃음 조미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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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가 박을 타자 이게 웬걸? 가족들이 함께 먹을 쌀을 간절히 바란 것과는 정 반대로 거지 떼가 나온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지들은 말 그대로 ‘들어주기’만 하겠단다. 흥부는 너무 서럽다.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든데, 이 어처구니없는 논리에 대꾸할 힘조차 없다. 흥부는 소리친다. “나를 그냥 죽여라! 죽여라 이놈들아!” 그런데 이 거지들, 흥부의 심정을 이해하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거지들이야말로 흥부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들인 걸까. “죽는 것이 소원이셨군요?” 소원을 이루어주지는 못하지만 아주 확실하게, 완전 제대로 듣는 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분을 토하는 흥부의 소원을 이토록 잘 들어주는 이들이 또 있을까. 흥부를 상여에 태우고 그들은 쉼 없이 노래를 부른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가족 따위 무슨 소용인가. 잘 먹고, 한바탕 잘 놀다 가면 그만. 흥부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노래가 흐르면 흐를수록 어리둥절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와 삶인 것을 느낀다. 사회 속에서 배제된 거지들의 목소리야말로 이 사회에 필요한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피어난다. 사회 구축과 함께 재단되어버린 딴소리들이 우리 마음을 끄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서 잘려버린 다른 반쪽을 찾으려는 자연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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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들의 공연 센스가 장난이 아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이들은 점점 흥이 난다. 함께 손뼉 치고, 얼쑤! 잘한다! 그래! 장단 맞추면서 무대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거지들은 한 명씩 데려다가 상여에 태우고 춤판을 열어준다. 모두가 웃는 얼굴로 올라탄 상여는 마치 놀이기구 같다. 아니 죽음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 될 수 있었나? 한바탕 놀다 가는 생에 미련은 없다. 삶과 죽음이 마치 여한 없이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된다. 이때 죽음은 오히려 즐거운 것이 된다. 잘 놀았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을 기약하며 잘 쉬면 된다.

 

사물놀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두드려지는 소리에 내 마음도 두드려지고, 북과 꽹과리 위에서 마구 튀겨진다. 공연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흥이 오른다. 공연의 막바지쯤에는 다들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고개를 앞뒤로 끄덕거리면서 손뼉을 친다. 조용히 해야 하는 대부분의 무대와는 결이 좀 다르다. 여기저기서 장단을 맞추고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손뼉을 친다. 서로가 서로의 흥을 더 돋운다. 여기는 거지들의 딴소리 판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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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이 감탄스럽다. 마당놀이, 줄 뛰기, 부채, 기다란 천.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조차 거지스럽다(?) 땅 위에서 줄타기 하는 거지와 손에 색색의 천을 묶어 등장하는 이들. 거지들이 진지하게 묘기를 선보이는 모습. 거지와 진지함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웃음이 튀어나오지만 그들이 선보이는 시각적 즐거움은 눈물 나게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것을 나는 도대체 왜 몰랐을까. 이 공연이 더 많이 무대에 올랐으면, 더 다양한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매력을 알고 난 뒤에 이들의 더 많은 것을 사랑하고 알아가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뼈 속까지 한국인인가 보다. 한과 울분과 웃음이 동시에 흐르도록 길을 터주는 이 무대에서 해방감을 마음껏 느꼈으면 한다.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과 모든 소리, 대사, 탈, 이야기, 부채와 바람. 빠질 것이 하나 없다. 조명으로 연출되는 무대는 볼거리가 쏠쏠했다. 밥그릇이 되는 악기들, 치던 북을 등에 메고 자라가 되는 그. 판소리를 이끌어 가는 이들이 간간이 들려주는 유머들, 술병 난 용왕, 물속에서조차 제대로 헤엄치지 못하는 자라. 이 모든 웃음이 시각적 언어와 잘 버무려져 뇌에 쾌감마저 준다.

 

이렇게 ‘무사태평하게 살아도 돼’ 라는 웃음 섞인 위로와 돌직구를 날리는 이들. 그 많던 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었던 걸까. 그리고 깨닫는다. 저들과 나는 원래 하나였음을. 분리된 것은 다시 붙으려 발버둥 친다. 거지 거지 그런 거지. 밥 먹는 것이 제일 즐겁다. 세상 뭐 있나? 한 판 놀다 가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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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춘향가의 판을 깨다

깽판전문 광대거지들이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 소리꾼의 판에 난입한다. 암행어사가 아니라 아맹거사로 자칭한, 거지 중에 상거지 몽룡이 수절을 지키려던 춘향 앞에 나타나 사랑구걸 대신 밥구걸을 하고, 이에 당황한 춘향은 곡절이나 들어보자고 광대 거지들을 다그친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몽룡이와 광대거지들이 딴소리 판을 펼친다.

 

2장. 심청가의 판을 깨다

전국봉사대회가 벌어진 황궁에 봉사로 위장한 광대거지들이 잔치에 몰려들어 숟가락을 얹는다. 장님행세가 발각되어 쫓겨날 무렵, 심청황후와 심봉사의 눈물겨운 재회가 펼쳐진다. 옆에서 지켜보던 광대거지들이 효도의 부질없음을 논하면서 깽판을 놓는다. 눈뜬 봉사들이 다시 장님으로 돌아가고 거지들은 혼란을 틈타 도망간다.

 

3장. 적벽가의 판을 깨다

적벽대전에서 대패를 한 조조의 군사 앞에 며칠을 굶은 광대거지들이 지나간다. 입대하면 밥을 준다는 이야기에 단번에 조조군이 된 광대거지들은 적장인 제갈공명을 만나게 되고, 대의와 명분을 부르짖는 상대에게 엉망진법을 한수 가르쳐준다.

 

4장. 수궁가의 판을 깨다

수궁의 축성을 축하하는 잔치에 흥을 돋우기 위해 모인 광대거지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다. 이에 불만을 가진 광대거지들이 앙심을 품는데... 마침, 술병으로 간이 상한 용왕의 상태를 살피는 자리를 꾀어내어 가짜 약을 팔기 시작한다.

 

5장. 흥보가의 판을 깨다

대박을 꿈꾸며 박을 타던 흥보 앞에 나타난 광대거지들. 소원을 이뤄주지는 않고, 듣기만 한다는 말에 흥보는 망연자실해진다.

 

6장. 다시, 춘향가의 판이 시작되다

광대거지들의 딴소리 사연을 다 들은 춘향은 몽룡과의 해후를 택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택하고, 몽룡과 광대거지들 역시 제 갈길로 향한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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