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그의 취향을 찾아서,

글 입력 2019.10.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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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취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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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특정 상황을 1시간에서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으로 강조한다. 서로 달리 살아온 인물들이 부딪히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 부딪힘에서 특별함이 나온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던 늦여름에 한 사람을 알게 됐다. 친한 사이도, 오래 알았던 사이도 아니다. 짧은 만남을 기약해둔 앎이었다. 처음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얘기하는 날이 잦아지면서 그의 이름 석 자가 유난히 이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대 중반의 끝자락에 사람 이름에 반하는 경우도 생겨버렸다. 그 많던 이상형과 조건들은 어디로 갔는지 이름 석 자에 마음이 열렸다. 특이한 첫인상을 가지게 된 만남은 나를 영화 각본가로 만들었다. 그의 직업과 관련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용기 내 ‘펜 선물’은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괜찮다고 했다. 나는 기뻐서 생각해두었던 ‘펜’ 이미지를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 예전에도 선물을 고를 때 나만의 기준으로 선물을 했던 버릇이 남아 있던 터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단편 영화가 시작된다. 그는 내게 자신이 어떤 ‘펜’의 취향을 좋아하는지 종종 말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펜’ 이미지와는 다른 요구에 처음엔 당황했다. 선물하는 사람의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닌가 하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확실히 말하는 태도가 시원했다. 5가지 이상 되는 조건에 가장 유사한 펜들을 사진을 찍어 보내곤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 상대의 취향이 정반대에 있음을 알게 됐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펜’에도 각자의 다름이 묻어났다.

 

그의 취향이 담긴 펜을 찾는 과정은 내 익숙함을 버리는 시간이었다. 문구 매장에서 실용적 기능을 중시하는 나와 달리, 조건에 맞는 펜은 고급 필기류 매장 쪽이었다.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을 그곳에 발을 들였을 때 다른 세상에 잠시 온 기분이었다. 직원분께 ‘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묻는 내 모습도 낯설었다. 그리고 그에 응하는 직원분의 친절함도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몇 번의 방문 끝에 구입할 펜을 결정할 땐 그 상황에 적응한 내가 있었다. 투명한 유리장 안에 가지런히 진열된 펜을 보며 여러 조건들을 두고 같이 상의하는 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에게 도움이 되는 선물을 주고자 한 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 그동한 정해왔던 경계선의 바깥으로 나갔다. 나와 다른 취향을 보며 내가 가진 취향이 더욱 선명해졌다. 자기 취향이 왜 좋은지 이유까지 말하는 얘기에서 내 취향의 이유도 돌아보았다. 만약 그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면 더 넓은 세상을 알지 못했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경청의 훈련이 선물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했다.

 

상대의 취향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왜 그런 취향을 좋아하게 됐는지, 그 취향에 담긴 그 사람의 가치관, 이상 등 다양한 얘깃거리를 서로 나눌 수 있다.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얘기가 있듯이, 서로 다른 취향의 사람들도 충분히 그 가치를 나눌 수 있다. 영화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에는 30세 이상의 어른들만 참가하는 ‘밤 연회’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미나미 이치에는 이 날만을 위한 맞춤 정장을 손님들에게 선물한다. 미나미 이치에가 손수 만든 정장을 입은 손님들은 일상과는 다른 반짝임으로 서있다. 미나미 이치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제작 의뢰를 한 손님과 그 얘기를 옷에 겸손히 담아낸 만남의 작품이다.

 

영화로 바뀌는 만남에는 상대방의 독특함과 마주하는 시간이 전제한다. 단순한 부딪힘이 아니라 서로의 반짝임을 혹은 다른 빛들을 발견하는 건 흔치 않다. 우연히 만난 그와의 늦여름의 대화는 내게 일상의 만남을 영화로 만들 비밀을 알려주었다. ‘펜’ 선물을 하며 주고받은 대화 속에 그의 취향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 스스로가 좋았다. 새로운 것을 보고, 찾아가고 생각한 발걸음은 나라는 사람과 그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펜’을 선물한 이후로, 늦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될수록 시간이 이 만남을 어떻게 이끌지 모른다. 평이한 삶에 영화를 선물한 그에게 감사하다. 나와 다른 이들의 취향을 발견하는 발걸음을 난 알았다.

 

 

[한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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