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녕 푸 전(展), 오리지널 푸의 감성 속으로 [전시]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2020.01.05)
글 입력 2019.09.0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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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귀여운 곰돌이 푸가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 찾아왔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푸의 모습은 원작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푸의 모습은 푸의 라이선스가 디즈니로 넘어가고 나서 디즈니에서 가공한 모습들에 가깝다. 디즈니에서는 1966년부터 곰돌이 푸의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기 시작하고 곰돌이 푸는 디즈니의 대표적인 캐릭터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데, 이는 1924년 곰돌이 푸의 원작자 A. A. 밀른이 곰돌이 푸를 처음 잡지에 발표한지 40년 이상 지난 뒤의 일이다.

원작 곰돌이 푸는 A. A. 밀른의 스토리와 E. H. 쉐퍼드의 삽화로 이루어지는데, 《안녕 푸 전(展)》에서는 디즈니에 합류하기 이전 곰돌이 푸의 이야기와 그림들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빨간 티셔츠 상의에 아랫배가 과장되게 볼록한 이미지로 익숙한 ‘디즈니 곰돌이 푸’의 이미지가 아닌, 원작 곰돌이 푸의 오리지널 드로잉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도 하다. 이번 전시를 끝으로 드로잉작품들은 소장가들에게 돌아갈 예정이기 때문에 이번 《안녕 푸 전(展)》은 국내에서 푸의 오리지널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원작 푸의 전시를 공유하며, 독자들도 오리지널 작품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길 바란다.


[크기변환][회전]밀른 표지.jpg
쉐퍼드가 디자인 한 표지

디즈니식 푸.jpg
디즈니 스타일로 그린 푸와 친구들



1. 배경 – 100 에이커의 숲


곰돌이 푸 이야기는 ‘100 에이커의 숲’이라는 배경에서 전개된다. A. A. 밀른의 손에서 곰돌이 푸가 처음 탄생할 때부터 작품의 배경으로 선정되었던 이 100 에이커의 숲은 최근 디즈니의 극장판 곰돌이 푸에 이르기까지 90년 넘게 푸와 친구들의 생활 공간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흥미롭게도 A. A. 밀른은 본인과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산책 코스였던 애쉬다운 숲을 모티브로 100 에이커의 숲을 창작해 냈다고 한다. 곰돌이 푸 문고판이나 애니메이션 모두 시작 부분에 100 에이커의 숲의 지도가 표시되는데, 이 지도에 나타나는 곰돌이 푸와 친구들의 집의 디자인이라든가 숲 속의 지형지물들 모두 밀른이 자신의 산책길에서 목격한 풍경들을 토대로 탄생하였다.

실제로 밀른은 삽화가인 쉐퍼드에게 애쉬다운 숲의 지도를 보내주었고, 쉐퍼드가 직접 숲속의 대상들을 스케치해 내면서 곰돌이 푸의 배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곰돌이 푸의 스토리 속에서 핵심적인 장소인 강과 나무다리 역시 실제 숲속의 풍경들에서 가져온 장소들이다. 이러한 장소들은 푸와 친구들의 천진하고 무구한 이미지와 어울려 동화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독자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엉뚱한 사건사고들이 개연성 있게 발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다.

 
[크기변환]1000acre forest.jpg
 
[크기변환][회전]피글렛의 집 스케치.jpg
쉐퍼드가 스케치한 (위에서부터)
100에이커 숲과 피글렛의 집



2. 캐릭터의 의인화 - 여린 마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곰돌의 푸의 등장인물들인 푸와 친구들 역시 실존하는 대상들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하였다. 작가 A. A. 밀른은 자신의 아들이 가지고 있는 동물 인형들을 그대로 캐릭터로 탄생시킨다. 곰돌이 푸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간인 크리스토퍼 로빈은 밀른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푸와 그의 친구들인 피클렛, 티거, 래빗 등은 모두 크리스토퍼 로빈이 가지고 있던 곰, 돼지, 호랑이, 토끼 인형들을 모티브로 만들어 낸 캐릭터인 것이다.

본 작품에서 전시된 드로잉들 중에서는 스토리가 완전히 정착되기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 그림에서 크리스토퍼 로빈이 푸를 생명력 없는 인형 다루듯이 끌고 다니는 모습들도 나타나,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통해 캐릭터를 창작해 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 흥미롭다. 특히 오리지널 드로잉에 나타나는 푸의 모습들 중에는,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복슬복슬한 곰인형 같은 모습이 많이 드러나며, 다른 캐릭터들 역시 단순한 봉제 인형처럼 묘사된 그림들이 많이 나타난다. 곰돌이 푸가 실제 발표되기 전까지 밀른이 아들의 인형들을 각각 등장인물로 완성시키기까지의 변천이 잘 드러나 곰돌이 푸의 팬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크기변환]인형.jpg
각각 이요르, 캉가와 루
푸, 티글렛, 티거의 모티브가 된 인형들


한편 밀른이 곰돌이 푸에 등장하는 각 캐릭터들에게 부여한 성격 역시 주목해서 볼 만한 부분이다. 푸는 우둔하지만 친구를 사랑하고, 피글렛은 소심하고 겁이 많다. 티거는 늘 자신감이 넘치지만 늘 사고를 치며 다니고, 이요르(당나귀)는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스토리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자 본인만의 특징적인 성격을 통해 다른 캐릭터들과 확실히 구별되며, 개개인의 성격으로 인해 100 에이커의 숲에는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한편 이 속에서도 절대적으로 악한 역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곰돌이 푸의 스토리의 핵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모두가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도 늘 생동감이 끊이질 않게 된다.

예를 들어 푸는 마음씨가 착하지만 꿀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기 때문에 친구들을 곤경에 빠뜨리게 된다. 그런데 사건이 해결되는 양상을 보면, 꿀에 정신이 팔려있던 푸는 뒤늦게 친구가 곤란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며 최선을 다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둔한 푸는 사건을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일 뿐 온전하게 사건을 해결하지는 못하고, 화가 났던 친구들은 이런 푸의 정성을 알아차리고는 마음이 풀어지는 것이다.

결국 선한 인물들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사건은 끊이지 않지만, 그 선한 마음들 덕분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차리고 배려하며 다시 숲속의 평화는 찾아온다. 그러다가 또 사소한 일들 때문에 다시 사건이 발생하기를 반복하며 곰돌이 푸의 스토리는 진행된다. 곰돌이 푸의 매력은 - 의인화된 캐릭터들이 각각 불안한 자아를 가졌고 그래서 공동체 속에는 사건사고가 도사리지만 - 그들이 여리고 선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사건이 반복되는 불안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종국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
 
민간 신앙도 아닌 하나의 이야기가 100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탄생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전달한 감동이 2020년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에까지 유효하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곰돌이 푸의 기저를 이루는 ‘평화로운 숲속 마을’과 ‘선량한 인물들’이라는 동화적인 요소가 처음 탄생한 당시 남녀노소에게 모두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세계대전을 겪으며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쟁 속에서 체제를 견고히 만들기 위해 국가는 이성과 합리성에 호소해야 했고, 절대적인 악을 설정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방식의 논리는 단순하고 견고하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를 이겨내며 지냈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감성이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밀른과 쉐퍼드의 동화가 환영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동화는 절대적인 존재, 악한 마음이 부재하는 세계를 그리며 여린 존재들의 세계가 늘 사소한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만, 각자가 스스로의 인간성을 지키며 선한 마음으로서 세상의 불안을 타개해나가는 구도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체제의 승리가 아닌 ‘인간성의 존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곰돌이 푸가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우리의 세상이 여전히 전쟁 중인 상태와 다름없다는 점을 암시해 준다. 세계대전이 모두 끝나고 냉전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체제를 발전해나가면서 양심(良心)과 감성은 여전히 중시되지 못했고, 사람들은 총알 한 발 날아다니지 않는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다시금 미니멀리즘이 각광을 받는 것은 소유와 경쟁에 지친 인간들이 비로소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데에서 비롯되며, 이는 세계전쟁 속에서 실존주의 철학이 주목받게 된 계기와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는 곰돌이 푸의 명언은 우리에게 더욱 큰 울림을 주게 되는 것이다.


[크기변환][회전]집 내부 스케치.jpg
무너져 내린 집의 모습을 삽화로 그리기 전에 밀른과 쉐퍼드가 집을 어떻게 그릴지 그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의한 내용, 일반적인 동화들과 달리, 작가와 삽화가가 거의 동등한 위치에서 협의하여 동화의 내용과 삽화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안녕 푸 전(展)》은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곰돌이 푸의 최초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곰돌이 푸의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 우리가 평소에 잊고 있었던 - 가치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성인이 되면서 곰돌이 푸의 스토리나 에피소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관객들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은 미리 곰돌이 푸를 애니메이션이나 동화를 미리 한두 편 감상해보거나, 전시회에서 제공하는 사운드 가이드를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곰돌이 푸를,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값진 한 존재로서 인식하며 본 전시를 향유하기를 추천한다. 한편 전시에서는 작가인 밀른과 삽화가인 쉐퍼드가 서로 상세하게 협의해가며 작품을 완성해나간 편지와 미발표 드로잉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작가들의 세밀한 노력들에 대해 알아가며 전시를 감상하는 것 역시 전시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디즈니식(式) 애니메이션으로 가공되기 전의 오리지널 곰돌이 푸의 투박하고 순수한 매력을 만나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독자들 모두 꼭 누리기를 바란다.


[크기변환]goodbye.jpg
 




안녕, 푸 展
- Winnie the Pooh : Exploring a Classic -


일자 : 2019.08.22 ~ 2020.01.05

시간
08.22 ~ 11.30
오전 10시 ~ 오후 8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7시)

12.01 ~ 01.05
오전 10시 ~ 오후 6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5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티켓가격
성인(만19~64세) : 15,000원
청소년(만13~18세) : 12,000원
어린이(36개월 이상~만12세) : 9,000원

주최
국민체육진흥공단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주관
소마미술관
바이스, 디커뮤니케이션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사본 -에디터.jpg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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