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의미한 싸구려 흉내, 키치 [시각예술]

그저 패션 용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거운 '키치'
글 입력 2019.08.1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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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등장하는 키치(Kit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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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패션의 대명사 모스키노(MOSCHINO)의

2019년 F/W 컬렉션



뉴트로 감성이 한창 유행하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올해 유난히 ‘키치하다’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띄는 것 같다. 2019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트렌드 ‘뉴트로(Newtro)’는 오래된 것을 새롭게 즐긴다는 의미로, 뉴트로 문화의 메인이 되는 과거의 문화들은 키치로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뉴트로뿐만 아니라 ‘키치하다’라는 표현은 디자인이 개입되는 분야라면 어디든 등장하는 형용사다. ‘키치’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선명한 색감과 상업적인 이미지, 촌스러우면서도 트렌디한 키치 특유의 분위기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키치의 시작, 그리고 그 의미



키치라는 단어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값싸게 만들다’라는 의미의 독일의 메클렌부르크 방언 ‘verkichen’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이를 방증하듯 키치라는 단어는 ‘(인기는 있지만) 질 낮은 예술품’, ‘저속한 작품’, ‘천박한’ 등으로 정의된다.


저급한 예술을 뜻하는 키치라는 용어는 19세기 말에 등장해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사회문화적, 예술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키치는 알맹이가 없는 싸구려 예술을 뜻하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키치를 명확한 하나의 의미로 단정 지을 수 없다.


키치는 미학적 가치가 부족한 예술뿐만 아니라 예술을 대하는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키치맨’이란 힘들이지 않으면서 예술을 향유하려 드는 쾌락주의적인 사람들을 뜻한다. 예술의 수준과는 별개로 키치맨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이 곧 키치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나아가 의도적으로 키치 특유의 형식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창출해 내려는 움직임도 등장했다. 이렇듯 키치는 이미지와 태도, 내용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정체성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오늘날의 키치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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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 <Swan(Infltable)>, 2011-2015
mirror-polished stainless stell with transparent color coating
82.5 x 92.3 x 65.8 cm



즉 키치는 하나의 사조가 될 수도 있지만 단순히 어떤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키치는 단연 후자다. 우리가 키치를 논하는 대상은 키치의 원래 의미인 ‘싸구려 예술’이 아니다. 키치하게 보이도록 고도로 의도된 디자인, 그리고 주제들이다.


내가 키치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접한 곳이 패션 혹은 현대미술 작가와 관련된 글들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속 빈 강정과 같은 본래 의미의 키치는 일상 속에서 숨 쉴 뿐이지 고급스러운 패션 잡지나 값비싼 현대미술에서 찾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키치가 과거에 비해 큰 변화를 겪었다는 것은 20세기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정의 내린 키치의 의미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키치란 미완성적이고 값싸며 겉보기에는 쓰레기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키치는 실제로 싸구려인 예술이었지만 지금의 키치는 ‘싸구려처럼 보이려고 하는’ 예술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초기의 키치와 오늘날의 키치가 공유하는 것은 오직 이미지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지점에서 캠프와 키치의 차이를 언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캠프든 키치든 대부분 키치라는 용어로 통용된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를 키치의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의 키치, 결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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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 <Great Gigantic Pumpkin>
2013, urethane paint, 2.45×2.6m



어마어마한 가격대를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가 키치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작가들이 키치 미술로 동시대미술계를 들썩이게 하는 21세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키치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비평가들이 부정적으로 정의 내렸던 키치는 원조의 위상만 굳건히 했고 이에 따라 ‘저급’ 문화와 ‘고급’ 문화 사이의 경계마저도 더욱 뚜렷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경계는 당연하게도 흐려졌고 키치는 취향의 일종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의도적으로 대중문화의 상업적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문화적 위계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은 대부분 고급문화라는 점이다. 키치를 좇는 갖가지 패션 브랜드, 대중문화를 표방하는 수많은 시각예술은 결국 어떤 취향이던 선택할 수 있는 고급문화의 특권을 보여 준다. 이것이 곧 현대 문화 속 키치의 역설이 아닐까?


그럼에도 키치는 그저 상업문화의 산물로만 여겨졌던 것들에 새롭게 주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지대한 의미를 갖는다. 전에 없던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미적 가치를 발굴하는 것 혹은 지금까지 존재해 온 이미지에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것, 이중에서 정말로 신선한 것은 오히려 후자이기 때문이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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